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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ul 30. 2020

꽃비가 내리네 : 영천 은해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매년 괘불 한점을 선정해서 전시한다. 불교회화실의 한쪽에는 2층과 3층에 걸친 벽면이 있는데 이 공간은 괘불 전시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괘불전시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에 괘불이 걸리면 2층에서 참배객의 시선으로 고개를 들고 바라본 다음 3층으로 올라가서 부처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다. 거대한 괘불을 정면에서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또 괘불이라는게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사찰에서 어지간히 큰 행사가 열리지 않는 이상 보기가 쉽지 않다. 매년 괘불을 선정해서 전시해주는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감사를 표한다.(통도사 박물관에서도 매년 괘불 전시를 한다는데 가본적이 없어서ㅠㅠ)


올해 이곳에 걸린 작품은 팔공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은해사의 괘불이다. 이 괘불에 그려진 부처를 보고 있으면 부드러운 표정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편안하고 정감어린 기분이 든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치 티없이 순수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성실하고 마음 따뜻한 우리네 아버지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여래의 이런 표정을 흔히 원만하다고 표현한다. 조선시대 불화라도 어떤 상은 이목구비가 날카롭게 표현된 탓에 보고 있으면 불편한 기색이 드는 작품도 더러 있지만, 은해사 괘불 속 부처는 말 그대로 부처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온화함이 느껴진다. 순진한 조선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았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삼배를 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배경에 그려진 꽃밭과 꽃비, 비행중인 극락조, 입고 있는 가사의 채색도 강렬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온화하다.(사진1)

사진1. 괘불 속 여래의 얼굴은 별다른 근심이 없는 듯 온화하고 순수해보인다. 가사와 배경의 색감도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화려한 멋이 있다.


괘불의 조성배경



이 괘불의 높이는 약 11.5미터, 너비는 약 5.5미터이다. 상당히 거대한 규모인데 주로 영혼을 천도하는 수륙재나 영산재와 같은 의식에 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천도 의식에는 참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좁은 법당에서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법당 바깥쪽 괘불지주에 대를 세운 다음 여기에 괘불을 걸어서 끌어올린 후 식을 진행한다. 괘불대에 괘불이 걸리는 순간, 법당 마당은 불국토가 되는 것이다.(사진2)

사진2. 공주 마곡사에서 괘불을 걸고 의식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                                


조선 후기에는 이런 불교 의식을 정리한 의식집이 여럿 발간 되었는데, 이런 의식에는 부처를 모셔오는 절차가 반드시 들어가 있다.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강림해야 망자의 영혼을 구제해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괘불이 많이 그려졌다. 법당 안의 탱화를 꺼내와서 걸어도 되긴 하지만 인파가 많으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커다란 괘불의 조성이 별도로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에 괘불이 존재한다면 과거에 사세가 꽤나 번창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괘불을 그리는 불사는 만만치 않은 공력이 소요된다. 바탕이 되는 천을 구하는 일부터가 녹록치 않다. 그림을 그리는 화승도 한 두명 가지고는 어림없다. 이들이 사용하는 안료와 먹고자는데 들어가는 비용 등을 생각하면 꽤나 많은 물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신심이 두터운 신도들의 시주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신분이 낮은 계층이 주요 신자였으므로 신도수가 많지 않은 이상 불사할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괘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은해사 괘불은 일전에 살펴보았던 부석사 오불회 괘불과는 다르게 여래 한분만이 홀로 서있다. 아래쪽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위에는 천개가 드리워져 있으며 극락조가 날아다니고 꽃비가 내리고 있다. 괘불 속 여래는 어떤 분일까? 극락세계에 주재하시는 아미타 부처님? 현세에 나타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 아니면 다른 세계의 부처님? 과연 누구일까?


박물관에서 펴낸 도록과 함께 관련 자료를 몇개 읽어봤는데 석가모니불이라는 견해와 아미타불이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는 중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박물관 도록에서도 어느 한쪽이라 단정짓지 않은채 양측의 주장을 모두 소개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불이라고 지칭하는 쪽은 주로 도상의 표현을 근거로 들었는데, 꽃비가 내리는 모습이 법화경에 나오는 어느 한 구절을 표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신 뒤 결가부좌 하시고 무량의처삼매에 드시니,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때 하늘에서는 만다라 꽃, 마하만다라 꽃, 만수사 꽃을 내려 부처님 위와 대중들에게 흩으며,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 법화경, 서품 -


아미타불이라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는 아미타경의 한 구절과 괘불이 조성될 당시 은해사는 아미타 부처를 주불로 모시는 도량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종의 극락왕생을 축원하였던 왕실원찰 은해사의 주불전은 극락보전인데, 여기에는 아미타삼존도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도에 그려진 여래는 괘불 속 대상과 매우 흡사할 뿐더러, 괘불과 같은 해에 그려졌다. 또 은해사 소속 암자인 백흥암에도 비슷한 양식의 불화가 그려졌는데 역시 아미타불이다(사진3). 특히나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도는 괘불 조성에 참여했던 처일 스님이 그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미타경에서 나오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저 불국토에는 항상 하늘의 음악소리가 나고 땅은 황금으로 되어 있으며, 밤과 낮으로 여섯 번 하늘에서 만다라 꽃비가 내리느니라. (중략) 저 국토에는 온갖 기묘한 여러가지 색의 새들이 있는데,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와 가릉빈가와 공명조와 같은 여러 새가 밤낮으로 여섯번 아름답게 온화한 소리를 내느니라."

- 아미타경 - 


사진3.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든 동영상에 세 불화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서 복사해왔다. 세 불화에 등장하는 여래는 비슷한 화풍에 같은 초본을 사용한 듯 거의 흡사하다



상세히 살펴보기


괘불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가서 들여다보면 또다른 세계가 보인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고 노력은 했으나 카메라가 좋지 못하여 선명한 화질을 구현하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맨 위에는 천개라고 하는 장엄물이 표현되어 있다(사진4). 이는 원래 국왕이 햇볕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씌웠던 일산이 변형된 것으로, 불교미술에 차용되어 여래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성인은 제왕과 같은 위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묘사가 가능한 것이다(부처=전륜성왕). 사찰의 법당에 가면 불상의 머리 위로 보개라고 하는 또다른 작은 지붕 모양의 천장이 장식되어 있는데 같은 기능을 한다. 천개에는 각종 영락이 달린채 드리워져 있어서 화려하기 그지 없다.

사진4. 머리 위에 그려진 천개의 모습. 화염보주로 장식된 여의와 각종 구슬로 장식된 영락이 드리워져 있다.


천개 주변으로는 새들이 6마리 날고 있는데 극락조라고 부른다. 부리에는 꽃을 하나씩 물고 있으며 공양을 하려는 것인지 고개가 전부 여래를 향하고 있다. 꼬리는 수컷 공작새와 비슷한데 날개나 머리 등은 제각기 다르다.(사진5)

사진5. 여러마리의 극락조들. 사진기 성능이 더 좋았더라면 선명하게 찍었을텐데 아쉬워라...


머리와 얼굴 부위를 자세히 보면 머리 위로 살이 솟아오른 육계와 그 꼭대기의 계주가 보인다. 육계 꼭대기의 계주는 붉은색의 구슬 형태로 표현되었는데, 여래의 상서로운 기운이 머리 꼭대기에 맺힌 것을 나타낸다. 머리와 얼굴 주위로는 신성함을 의미하는 원형의 광배가 녹색바탕으로 그려져 있다. 이마라인과 눈썹은 녹색의 선으로 그려졌다. 미간에는 미세하게 백색의 선으로 백호가 그려져 있다. 수염 역시 녹색의 선으로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귓불 역시 32상 80종호에 맞게 길게 늘어진 형태로 그려졌다.(사진6)

사진6. (왼쪽)얼굴의 각 부분 설명과 눈썹사이 미간에 위치한 백호.(오른쪽)


존상은 붉은 색의 가사와 옅은 녹색(연두색)의 하의를 착용하고 있다. 가사에는 금색의 줄무늬가 그어져 있는데 천조각을 꼬매서 만든 분소의를 표현하려고 했나보다. 금색의 줄무늬를 확대해보면 이렇게 녹색으로 구획이 그어져 있고 그 안에 붉은 색의 꽃잎이 그려져 있다. 대형불화이지만 의외로 정성을 많이 들여서 그렸다. 가사의 가장자리에는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확대해서 보면 초록과 파랑의 물결이 넘실대는 듯하다. 하의 부분도 확대해보면 연꽃이 선묘로 그려져 있다.(사진7, 8)

사진7. 붉은 색 가사와 옅은 녹색의 하의를 착용한 모습. 가사에는 바느질로 기운 부분을 나타낸듯 금색 줄무늬가 표현되었다.


사진8. (왼쪽)금색 줄무늬 확대한 모습. (가운데) 가사자락의 가장자리 꽃문양 확대한 모습. (오른쪽)녹색하의에 선묘로 간략하게 그려진 연꽃 문양


양발은 이렇게 연꽃을 밟고 있으나 연꽃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 발과 연꽃잎 사이에는 짙은 녹색의 연근(?) 마냥 무언가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 때문에 아래의 연꽃 잎이 상하지 않는다. 붓다의 성스러움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장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사진9). 주위로는 온통 꽃밭이다. 그 위로는 꽃비가 떨어지고 있다. 꽃잎이 풍성하고 탐스러운 쪽은 모란 꽃으로 보이며, 나머지는 연꽃으로 생각된다.(사진10)

사진9. 발주변 꽃밭과 왼발 오른발이 연꽃을 밟고 있는 모습.
사진10. 떨어지는 꽃비들. 왼쪽 사진은 모란, 우측 사진은 연꽃&모란.



괘불의 테두리에는 범자가 적힌 진언이 빙 둘러가며 그려져 있다. 진언은 주술적인 의미를 갖는데, 

본인도 자세히 모르는 관계로 이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괘불 테두리에 그려진 진언. 밀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맨 아래쪽 여백에는 괘불에 관한 정보가 담긴 화기가 적혀있다. 따로 화기란을 만들어 적지 않고 분홍색 바탕에 먹으로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적었다.



건륭 15년(1750년) 4월 일

화원 보총

화원 처일

괘불의 화기. 생각보다 정보가 많이 없다. 괘불 조성 시기와 화승들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


괘불 아래에는 괘불을 보관하는 괘불함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함에 설치한 경첩도 아직까지는 잘 붙어있는 모습이다. 괘불의 건너편에는 은해사 극락보전에 봉안됬었던 염불왕생첩경도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과거 한차례 도난 당했다가 다시 회수한 귀중한 작품이다. 도난을 당하면서 화기가 훼손되었으나 이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1750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괘불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작품이니 함께 관람하면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괘불함과 염불왕생첩경도




괘불을 소개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려보았으나, 현재까지 조회수가 1도 없다. 흥행에는 실패한 동영상이지만 혹시나 도움이 되는 분이 계실까 하여 여기에 소개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hOCThzSQ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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