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관람후기
전염병인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일상이 마비되어 있는 상황이다. 2월말이 되자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를 기점으로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각종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았다. 공부를 위해 자주 이용하던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 마저 문을 닫았다. 그 후 정부와 의료진, 전 국민들의 노력 덕분에 확산세가 줄어들어 다소 완화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다. 박물관과 도서관도 제한적이지만 운영이 재개되었다(현재는 다시 문을 닫은 상황이다).
그 동안 집 앞의 공원에 나가서 잠깐 산책하고 생필품을 사러 다니는 것 외에는 가급적 집에 있었더니 너무 답답한 것도 있고 유물 관람하면서 공부도 할겸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몇차례 다녀왔다. 때마침 현 상황에 걸맞는 전시가 무료로 진행중이어서 관람하고 왔다. "조선, 역병에 맞서다" 라는 제목의 이 기획은 과거 전염병에 맞섰던 조선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전시였다. 규모는 상당히 작았다.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 맞춰서 급조된 특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역병으로 받은 피해, 두번째는 역병 대처법, 세번째는 역병으로 인해 만들어진 문화이다. 큐레이터는 조금 다르게 기획한 것 같지만 편의상 멋대로 분류해 보았다. 소규모의 전시이긴 해도 모든 유물을 소개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대표적인 몇가지만 소개하겠다.
위의 초상화는 1774년 현직관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시험인 등준시의 무과합격자 18인을 기념하여 제작한 초상화첩이다. 두 인물 가운데 왼쪽 초상화의 주인공은 얼굴에 흉터가 많은데 이는 어렸을때 두창을 앓고서 생긴 흉터이다. 두창(마마)은 두창바이러스가 원인인 급성 발열성 발진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전염성과 사망률이 매우 높아 한때 전 세계 인구 사망원인의 10%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 병을 앓고 나면 회복되더라도 저렇게 곰보자국이 남는다고 한다. 초상화첩의 18인 가운데 3인이 저런 흉터가 있다고 하니 두창이 얼마나 흔한 질병이었는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 아래 백자로 만들어진 묘지명은 선조의 12번째 왕자인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이다. 이 아이는 1632년 3살이 되던 해에 두창에 걸려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왕실에서도 전염병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옆의 서책에는 정경세(1563-1633)가 두창으로 돌아간 장남 심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 적혀있다.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고 춘추관 검열에 임명되었을때 한양에 두창이 유행하였기에 올라오지 말 것을 권하려다 관리된 자의 도리가 아닌것 같아 올라오게 하였다가 변을 당하였다면서 이 모든게 아버지인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의 명의 허준은 신찬벽온방이라는 의서를 편찬하는데, 이는 온역이라는 전염병을 막기 위한 의서이다. 그 내용은 지금의 의학지식과는 상당히 달라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조정에서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음을 엿볼 수 있다.
1798년 정약용이 지은 마과회통이다. 이 책은 마진(홍역)에 관한 종합의학서로, 조선과 청나라의 마진에 관한 이론을 정리한 일종의 종합 백과사전이다. 실제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임상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지석영은 두창을 치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서양의 종두법을 배워서 널리 보급했다. 이 방법은 두창에 걸린 소에 생긴 고름딱지를 사람에게 주사하는 것이다. 일종의 백신요법이다. 소의 고름딱지를 사람에게 주사한다는 것이 조금 거시기하긴 하지만 효과가 있었다. 이를 우두종법이라고 부른다. 이 방법으로 인해 두창은 성공적으로 예방되었다. 좌측의 서적은 그가 지은 우두신설이다. 우측의 사진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의원들이 사용했던 의술도구들이다. 특히 종두법에 사용했던 도구들도 있어서 눈길을 끈다.
위의 그림은 호구거리라는 굿을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호구거리는 두창에 걸린지 13일째 되는날 마마신을 공손하게 돌려보내며 하는 굿이다.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옛 사람들은 이렇게 굿을 해서 마마신을 잘 보내드려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16세기의 문장가인 이문건(1494-1576)도 손자가 두창에 걸리자 굿을 했다고 하니 보수적인 유학자들에게도 전염병은 극복하기 어려웠던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좌측의)대신마누라는 무당이 모시던 스승이 죽어서 된 신 혹은 영험있는 무당이 죽어서 된 신을 뜻한다. 마마배송 굿을 할때 신을 보내드리고 굿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우측의)약사여래상은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불상을 뜻하는데, 중생들의 질병을 고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여겨져 널리 신앙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역병을 퍼뜨리는 귀신(여귀)이 있다고 믿었기에 이들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을 별도로 마련하여 제를 지냈다. 이를 여단이라고 한다. 여단은 지방관이 파견되는 읍치에 필수적으로 설치되었다. 전라도 무장현의 지도에도 이런 여단이 그려져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종두법이 효과를 본 덕분에 (한국에서는) 1959년을 끝으로 두창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1979년에는 예방접종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그해 WHO는 두창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코로나도 두창처럼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기왕이면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