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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Oct 26. 2020

달나라 토끼가 절구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적 들었던 말 가운데 달에 살면서 절구질하는 토끼 이야기가 있다. 흥미롭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꾸며낸 거짓말이다. 달에는 대기가 없기 때문에 운석이 떨어져 생긴 대규모의 크레이터에 마그마가 분출하여 넓은 평원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생긴 평원을 지구에서 바라보면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인다. 과거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여기에 물이 차있어서 어둡게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를 바다라 불렀다. 

사진1. 달에 있는 무수한 바다들(좌)과 그 표면의 모습(우)



밤하늘에 육안으로 달을 관찰하면 바다가 만드는 음영 때문에 어떤 모양처럼 보이는데, 문화권마다 이를 다르게 인식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토끼라고 보지만 유럽에서는 게라고 보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두꺼비로 본다.

사진2. 문화권마다 다르게 보는 달의 모습



동양과 서양은 달의 모습을 다르게 인식 했을뿐만 아니라 달 자체에 관한 생각도 많이 달랐다. 서양인들은 전통적으로 달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보름달이 뜨면 그 영향으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안좋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인식은 영어 단어에 남아있는데, "Lunatic" "Bule Moon" 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전자는 라틴어 Luna에서 파생된 것으로, 미치광이라는 뜻이다. 후자는 한달에 두번 뜨는 보름달을 일컫는 것인데, 영어를 어느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Blue"에 내포된 부정적인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달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단어인 것이다. 

사진3. 이것이 진정한 블루문?


서양인들은 왜 이리 달을 안좋게 생각할까? 아마 그들의 문명이 농경이 아닌 유목과 수렵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에 비해 척박한 토양과 기후는 그들로 하여금 농업 보다는 유목이나 상업에 더 힘쓰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기마유목문화를 그들 문명의 기반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남의 땅에 쳐들어가 약탈하는 행위도 주요한 경제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보름달이 뜨는 밤은 상대방의 진영을 기습하기 좋은 상황이다. 어둡지만 보름달이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므로 아군의 군사행동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보름달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농업 문명이었던 동양에서는 달을 농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가지고 달력과 24절기를 만들고 한해의 풍흉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만물이 음양으로 되어있다고 여겨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 여겼다. 달은 대표적인 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과거 여인네들이 달밤에 물을 떠놓고 치성을 드리거나, 보름달이 뜬 밤에 함께 모여 강강수월래를 즐기는 등의 행위는 이러한 인식의 결과물이다. 정월대보름과 추석이 중요한 명절로 여겨지는 것도 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토끼가 달에 산다고 하는 전설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사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전래와 관련이 깊다. 불교 이전에는 달에 두꺼비가 산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두꺼비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중국의 요임금 시절, 옥황상제의 10명 아들들이 모두 태양이 되어 동시에 하늘로 떠올랐다. 원래는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가며 떠올라야 하는데 제 딴에는 장난을 치느라 그랬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작물들이 모두 타죽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요임금은 활의 명수였던 "예"라는 신에게 해를 없애달라 부탁을 한다. 예는 기대에 부응하듯 신들린 활솜씨로 9개의 해를 모두 맞춰 떨어뜨린다. 


세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나 막상 그렇게 되니 옥황상제가 발끈한다. 본인의 아들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괘씸죄로 예와 그의 아내였던 "항아"를 신에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으로 살게된 예와 항아는 인간처럼 늙어가게 된다. 늙어 죽는게 싫었던 항아는 서왕모에게 부탁하여 불사약을 2개 구해온다. 남편인 예와 하나씩 나눠먹으면 둘다 불사의 몸이 되어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2개를 동시에 먹는다면 다시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시 신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항아는 불사약 2개를 먹고 혼자 신이 되어 남편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예는 홀로 인간세상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을 버리고 홀로 신이된 항아는 괘씸죄로 달에 갇혀서 두꺼비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누가 이렇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아마 옥황상제가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불교 전래 이전에는 예와 항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두꺼비가 달에 산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두꺼비가 그려진 달의 모습이 남아있다. 

사진4. 두꺼비가 그려진 달의 모습. 쌍영총 고분벽화



대승불교에서는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가 행하였던 보살행을 다룬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그 중에 토끼와 관련된 이야기가 한편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떤 수행자가 숲속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숲 속의 동물들에게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바를 매일 들려주었다. 그러자 동물들은 감격해하며 마음 속으로 그를 따랐다. 그는 숲 속에서 나무 열매 등을 구해 먹으며 지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자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숲으로 옮겨가고자 하였다. 이에 원숭이와 여우, 수달, 토끼는 먹을 것을 구해오기로 하였다. 원숭이는 맛있는 과일을 가져왔다. 수달은 큰 물고기를, 여우는 인간 마을에 내려가서 밥과 미숫가루를 구해왔다. 토끼는 이렇다할 재주가 없어서 그때까지 음식을 구해오지 못하였다. 토끼는 고민을 거듭하다 불을 피워놓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신공양을 하기에 이른다. 수행자는 뒤늦게 토끼의 일을 알게 되었으나 토끼는 이미 타서 죽고 말았다. 토끼의 의로운 행동에 감격한 수행자는 이 일을 교훈으로 삼고자 토끼의 모습을 달에 새겨서 볼 수 있게 했다. 이때 수행자는 사실 제석천이 변한 모습이고, 토끼는 전생의 석가모니불, 원숭이는 전생의 사리불 존자, 여우는 전생의 아난 존자, 수달은 전생의 목건련 존자라고 전한다.   


사진5. 인도 첸나이 박물관에 보관된 전생담 관련 부조. 가운데를 보면 모닥불에 뛰어드는 토끼가 보인다

  

이러한 붓다의 전생담은 불교의 동점과 함께 한반도까지 전래되면서 각 지역의 토착 설화와 결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살이 붙거나 빠지면서 변형되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계수나무 밑에서 불사약을 찧고 있다는 토끼의 스토리가 탄생한 것이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이러한 관념은 민간에도 널리 퍼지게 되어 불교 뿐만 아니라 민화의 소재나 도자기의 문양, 건축의 장식 등 여러가지 문화적 요소로 활용된다.

사진6. 도자기의 문양, 가사장식 문양으로 쓰인 토끼의 모습
선암사 원통전 정문의 월상 장식, 민화의 소재로 쓰인 토끼



지금은 아이들도 믿지 않는 유치한 수준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 불교적인 가치관이 담겨있는 것을 알고나니 불교가 우리 민족 문화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같은 내용으로 만든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ViI7ZuRxIA


사진 출처 

1. https://namu.wiki/w/%EB%8B%AC%EC%9D%98%20%EB%B0%94%EB%8B%A4 (왼쪽)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C%9D%98_%EB%B0%94%EB%8B%A4(오른쪽)


2. http://kids.donga.com/mobile/?ptype=article&no=90201409120486


3. https://www.ntdtv.kr/news/society/%EC%98%A4%EB%8A%9821%EC%9D%BC-%EB%B0%A4-3%EB%85%84%EC%97%90-%ED%95%9C-%EB%B2%88-%EB%9C%A8%EB%8A%94-%EB%B8%94%EB%A3%A8%EB%AC%B8-%EB%A7%88%EC%A7%80%EB%A7%89%EC%9C%BC%EB%A1%9C-%EB%B3%BC-%EC%88%98.htm 


4.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ropro&logNo=22019728808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5.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4213 


6. https://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5092&nodeId=NODE03970751(도자기)


http://kmfas.com/default/m3/menu2.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1&topmenu=3&left=2&mode=lectureInfo&&com_board_search_code=&com_board_search_value1=&com_board_search_value2=&com_board_page=&9(민화)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6474(선암사 원통전 토끼 장식)


http://m.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67(가사에 수놓인 토끼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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