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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Mar 07. 2024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점점 찌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다

대학원에 입학할 무렵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본래 문화유산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했었지만, 동영상 제작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유튜브는 석사과정과 병행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 태그만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번 꼴로 미술사를 공부한 내용과 답사한 유적지(유물) 사진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올렸다. 처음엔 간단하게 올렸는데, 자꾸하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사진을 고르는 시간도 길어지고, 설명도 점점 자세히 올리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쏟는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팔로워도 늘어났기 때문에 한동안은 재미있었다. 힘든 대학원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주로 미술사나 문화재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내 계정을 팔로우하였다. 나도 그들의 계정을 둘러보고 유익하다 싶으면 맞팔로우를 했다. 나중엔 인스타그램이 나의 활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런 계정들을 알아서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팔로우한 계정들은 대부분 박물관 학예사, 타학교 미술사 대학원생, 고고학과 대학원생, 문화재 해설사 등이었다. 꾸준히 활동하니 예전 친구나 군대 동기, 직장 동료 등도 우연히 알게되어 팔로우를 하였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많이 올라왔다. 멘탈이 약한 나는 그런걸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곤 하였다. 나열해보면 대충 이런 것들이다. 



1. 다정한 연인들의 사진. (우리 정말 행복해요~ 라며 염장질)

2. 해외여행 사진.

3. 인플루언서들의 강연 사진. (바빠죽겠어요~ 라고 써놓았지만 사실은 나 이만큼 잘나가)

4. 자식 자랑하는 사진. (내 새끼 참 이쁘죠? 라고 염장질....)

5. 결혼 사진. 신혼여행 사진. (1의 연장선)

6. 취업됬다는 내용의 사진(그래 축하한다)

7. 문화재쪽에 관심 많은 미성년자들이 해외 유적 답사하는 사진(그래. 부잣집에 태어난걸 축하해)



이 중에서도 내 마음을 심하게 후벼팠던 것은 1, 3, 4, 5, 7..... 따져보니 거의 다 해당되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특히 3과 7을 보고 씁쓸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3은 은연 중에 박물관 학예사보다는 문화재 강사나 해설사를 희망하기 때문인 것 같고, 7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격지심 때문이다. 이젠 하다못해 어린애들 한테도 열등감을 느끼는구나. 내가봐도 참 심각한 수준인걸 알겠다. 


3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한참 뒤쳐지는 느낌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기에 더욱 그렇다. 저들도 내 또래 같은데 벌써 자리잡아서 저만한 인기와 수입을 누리고 있다. 나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내 몸하나 건사 못하는 신세이다. 이래가지고 결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걸 보면 괜시리 잘다니던 회사 관두고 대학원에 갔던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든다. 벌써 대학원은 졸업해서 석사를 땄으니, 이런 소모적인 생각은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걸 안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걸까?


글로 써놓고 읽어보니 참 찌질한 인간이 내가 아닌가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게 아니다. 저들도 그냥 자랑하려는 목적에서 올렸을 뿐, 악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 이 모든게 내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 마음이 안좋고,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그래서 과감하게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하였다. 아예 계정까지 지워버려야 마음이 편하겠지만, 피드에 올려놓은 사진과 설명들을 지우자니 아까워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다시 인스타그램을 할지도 모르니 일단은 계정을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뭐, 다시 하더라도 애인이든 일이든 뭔가 자랑질할만한게 생기면 할거다.


인스타그램을 접는 대신 한동안 묵혀둔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였다. 앞으로 이곳 브런치에 문화재 사진과 설명을 올릴 것이다. 브런치는 자랑하는 성격의 플랫폼이 아니므로 좋아요 같은거 많이 안받아도 상관없다. 구독자가 많이 없어도 된다. 그냥 내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는다는 느낌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발행한 글들이 많이 쌓이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단행본도 한권 낼 수 있지 않을까. 어짜피 인스타그램은 글자수 제한이 있어 긴 설명을 올리기 힘들고, 유저들도 이미지 소비만 할뿐 글은 잘 안읽는다. 글쓰기에는 브런치가 인스타그램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불교미술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문구가 하나있는데, 요즘들어 그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자성미타(自性彌陀) 유심정토(唯心淨土)


쉽게 말해 내 안에 아미타부처가 있고, 내 마음이 극락정토라는 뜻이다. 선종 승려들이 수행을 할때 지침으로 삼았던 문구이다. 내 마음만 잘 다스린다면 애써 먼 곳에서 아미타불과 극락을 찾을 필요가 없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마왕이고,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 모든게 마음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본의아니게 인스타그램을 하며 자성마왕(自性魔王) 유심지옥(唯心地獄)을 몸소 실천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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