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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Dec 15. 2019

부석사의 회전문

문화재를 복원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왕문 뒤편으로 거대한 석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굉장히 높아서 올려다보기도 까마득하다. 그 위에는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회전문이 자리하고 있다. 회전문이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의 문물과 풍속을 기록한 향토 지리지인 재향지에서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한다. 1849년 안정구라는 인물에 의해 편찬된 이 서적은 2009년 소수박물관 주도로 번역이 완료되었다. 이 책을 구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번역 내용을 고전번역원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길래 찾아보게 되었다. 부석사와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금당(金堂) 서쪽에 취원루(聚遠樓)가 있는데 돌계단을 깎아질러 높이가 10여 길이나 된다. 남쪽을 바라보면 온 산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데, 시력이 좋으면 3백 리는 바라볼 수 있다. 취원루 북쪽에 장향대(藏香臺)가 있고, 금당 동쪽에 상승당(上僧堂)이 있고, 금당 뜰에 광명대(光明臺)가 있고, 그 앞에 안양문(安養門)이 있다. 문 앞에 법당(法堂)이 있는데, 법당의 왼쪽은 선당(禪堂)이고 오른쪽은 승당(僧堂)이다. 그 앞에 종각(鍾閣)이 있으며 역시 널찍하고 시원하다. 종각 아래에 또 대여섯 곳의 당실(堂室)이 있는데, 회전문(廻轉門)ㆍ조계문(曹溪門)이 있다. 그 앞에 큰 계단이 있다. 높이가 4~5길은 되고 길이가 1백여 보는 된다. 큼직한 돌을 층층이 쌓아 깎아지른 듯하고 옆으로 이어져 대(臺)를 이루어 온 절간이 그 위에 실려 있다. 귀신이 이룬 듯한 것으로 역시 장관이다.

또 그 아래 수십 보쯤에 일주문(一柱門)이 있고, 그 아래 1리쯤에 영지(影池)가 있다. 절의 누각이 모두 이 연못 속에 비친다. 조전(祖殿) 서쪽에 영산전(靈山殿)이 있고, 또 그 서쪽에 은신암(隱神菴)이 있다. 은신암 동쪽에 큰 돌이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몇 길 되고 위에는 10여 명이 앉을 만하다. 은신암 동서에 대(臺)가 있는데, 안계가 탁 트인 것이 이 산에서 가장 뛰어난 곳이다. 그 아래 골짜기에 극락암(極樂菴)이 있다. 조전 동쪽 골짜기에 동전(東殿)이 있고, 동전 뒤에 국사비(國師碑)가 있다.  


 ----------------------------------------------- 중략-------------------------------------------------------------------


이 자료에 근거하면 현재 천왕문 자리에는 원래 일주문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실 본인도 부석사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일주문 다음에 당간지주가 나오길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현재 남아있는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당간지주 대신 일주문이 보편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폈으므로 부석사의 토지 역시 신라나 고려 때보다는 축소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주문의 원 위치는 당간지주 뒤편 어딘가 일 것인데, 지금의 천왕문 자리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언급해본다. 




현재 회전문은 아래 사진처럼 두 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어마 무시한 석축 위에 서있다. 그전에는 아무것도 없이 석단만 휑하니 있다가, 201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사찰에서 새로 복원하는 건축물들은 기존의 사찰 분위기와는 다른 어색한 느낌을 풍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회전문은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듯하다. 부석사 측에서 상당히 신경을 써서 복원을 진행한 느낌을 준다. 


2018년 한국의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최초에는 이보다 많은 고찰들이 목록에 올랐으나 최종 심사에서는 빠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현대에 들어와 마구잡이 식으로 불사를 하는 바람에 기존에 존재하던 사찰의 분위기가 많이 깨져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석사의 회전문 복원은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복원이라기보다는 중건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이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원형을 알 수 없으므로 더 크고 화려하게 짓고자 하는 유혹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욕망을 절제하고 훌륭하게 중건을 해내신 부석사 스님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회전문은 양 옆으로 부속 건물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부석사의 행정을 처리하는 관리사무소 용도로 쓰이는 것 같다. 사대부 가옥의 솟을대문과 유사한 구조로 지어졌는데, 부속 건물들과 바로 붙어 있지는 않고 약간의 공간을 두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회전문으로 올라가기 전 대석단을 관찰해보면 약간의 차이가 보이는데, 현대 들어서 새로 쌓은 것과 기존 것의 차이다. 새로 쌓은 것은 큼지막한 돌 위주로 쌓았는데 옛 것마냥 견고하다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아래 사진에서도 석축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래쪽 석축은 왜 다시 쌓은 것인지 모르겠다. 과거에 한번 무너졌다는 말인데, 도대체 왜?


계단을 올라가서 옆을 보니 상당히 높아서 후덜덜한 느낌을 받는다. 자칫 실수해서 넘어지면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회전문 양 옆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담장 같이 꾸며놨는데 소박한 게 보기에도 좋고 난간 역할도 한다. 계단으로 올라오면서 보면 문의 격식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것을 언급하는 고건축 용어가 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 



문턱이 이렇게 있다. 휘어진 나무를 써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한 모양새다.



문 바깥으로 범종루가 보이는데 지붕과 기둥이 만드는 프레임으로 인해 마치 액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막상 가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회전문 내부는 천왕문과 유사한 구조로 만들어놨다. 향후 이곳에 무언가를 모시려고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부석사 관계자가 아니라서 알 수 없다. 이곳에 사천왕을 모시고 저 아래 천왕문에는 인왕상을 모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하다.



천장을 보니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고 단청이 되지 않아서 원목의 느낌이 살아있다. 작년 겨울까지는 이랬었다.



올해 10월에 다시 가보니 단청이 모두 끝나 있었다. 현재는 이런 모습이다.



문화재 복원은 한번 잘못되면 되돌릴 수 없다.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부수고 다시 복원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특히나 건축의 경우 잘못 복원되면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상당한 불쾌감을 주고, 주변에 있는 문화재의 가치까지 깎아내린다. 그러므로 애초에 자신이 없다면 후세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여러 곳을 답사 다니면서 잘못 복원된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보았다. 특히나 정치인들의 치적쌓기 용으로 복원이 진행되는 경우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초입에 있으니, 그에 걸맞게 문화재 행정 또한 선진국 수준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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