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에 내재된 삼신불 사상
앞서 응암 선사가 기문에서 언급한 삼신불 개념의 이해가 선행되야 통도사 괘불탱의 도상도 읽을 수 있다 말씀드렸는데요. 마침 통도사에 삼신불을 봉안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대광명전(大光明殿)입니다. 이는 '위대한 빛의 전각'이라는 뜻으로, 주존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관련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화엄경』에 등장하는 주존불로서, 석가모니불이 깨달은 진리인 법(法)을 인격화한 존재입니다. 다시말해 법(法)이 곧 비로자나불이며, 비로자나불은 곧 진리입니다. 진리는 우주 도처에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형체가 없기에 중생들은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비로자나불의 이러한 측면은『화엄경』에서 직접 설법 하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비로자나불은 삼매에 들어 오색찬연한 광명(光明)만 내보이며, 설법은 보현을 비롯한 여러 보살들이 비로자나불의 삼매에 들어갔다 나오며 대신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별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석가모니불이 깨달은 법(法)이 곧 비로자나불입니다. 그래서 둘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를 지닌 수행자 싯다르타는 피나는 수행으로 법(法)을 깨우치며 석가모니불이 되었습니다. 달리 말해 '수행자 싯다르타가 비로자나불과 하나되며 석가모니불로 탄생했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통도사 대광명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두 손을 모은 비로자나불상이 수미단(불단)에 앉아있고, 후불벽에는 삼신불(三身佛) 탱화가 걸려 있습니다. 보통 불전(佛殿) 내부의 불상과 후불탱화는 신앙적으로 상호 연관되는데, 통도사 대광명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삼신불화(三身佛畵)에서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두 부처가 함께 등장하는 배경이 이해 되실겁니다. 남은 의문은 좌측의 노사나불입니다. 그런데 이 노사나불, 가만히 보니 괘불탱화의 본존과 많이 닮았습니다. 둘 다 보관과 화려한 수식으로 장엄한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노사나불은 수행에 따른 과보(일종의 결과)로 부처가 된 존재입니다. 조금 어렵나요? 한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어떤 수행자가 출가하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이 수행자는 거친 환경에서 피나는 수행을 계속합니다. 고되고 힘든 수행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수행자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이 지속적으로 축적됩니다. 예를들어 마음이 점차 평온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점점 커지는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죠. 마침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수행자는 결국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수행에 따른 내공이 증장되면 이는 수행자의 내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긍정적 영향을 공덕(功德)이라 합니다. 계속된 수행으로 쌓인 공덕은 과보로 작용하여 마침내 부처를 탄생시키죠. 모든 부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아미타불, 약사불 등 모두가 그러하며, 석가모니불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수행에는 중생을 위하는 이타행도 포함됩니다. 경전에는 석가모니불의 수많은 전생담이 전해지는데, 대부분 이타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수없이 많은 전생을 거치며 헤아릴 수 없을만치 큰 공덕을 쌓은 석가는 마침내 부처가 됩니다. 이렇게 부처가 된 존재를 노사나불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니 삼신불은 모두 석가모니불이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불이 깨우친 법(法)이요, 노사나불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이 쌓은 공덕(功德)입니다. 그래서 세 부처는 겉보기엔 별개의 존재 같아도, 따져보면 하나의 부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부처를 이루는 요소지요. 그렇기에 불교는 이 세가지 존재를 부처의 몸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법의 몸이라는 의미에서 법신(法身), 노사나불은 공덕으로 받은 과보의 몸이라는 뜻에서 보신(報身), 석가모니불은 실제 인간의 몸(육체)을 지녔기에 화신(化身)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세 부처를 삼신불(三身佛)이라 일컫습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광명전 수미단에는 비로자나불상 1구만 있는데, 후불벽에는 삼신불 탱화가 걸린 것입니다. 불상은 하나, 불화는 셋이어서 의아하게 생각한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위의 설명으로 의문이 풀리셨으리라 봅니다.
여지껏 삼신불이 무엇인가 알아봤습니다. 이제 다시 괘불을 보며 도상을 파악해봅시다.
화면에 등장한 본존은 (보신)노사나불의 복식을 착용 하였습니다. 화려한 보관과 불신(佛身)에 달린 각종 장식들은 본존이 노사나불임을 알려줍니다. 하지만「개성괘불기」현판에 따르면 본존은 장육금신화상(丈六金身畵像), 즉 (화신)석가모니불입니다. 앞서 삼신(三身)은 일체(一體)라고 설명드렸죠? 그러니 보신불(報身弗)은 곧 화신불(化身弗)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판의 내용은 일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석가의 일생을 묘사한 8폭 불화, <팔상탱八相幀>에서도 확인됩니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후기 팔상탱화에는 고행 끝에 정각(正覺, 깨달음)을 이룬 석가세존의 첫 설법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의 일생을 잘아는 불자라면 녹야원(사슴동산) 설법을 떠올리실겁니다. 그러나 실은 그 이전에 치러진 비공식(?) 설법이 한건 있습니다.
이 비공식 법회는 세존이 깨달은 직후 적멸도량(寂滅道場)*에서 3ㆍ7일(21일)간 진행되었으며, 일반 중생보다 근기가 높은 대보살 및 천룡팔부(天龍八部)**를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때 세존은 보신 노사나불(報身 盧舍那佛)의 모습으로『화엄경』을 설하였습니다. 이후 세존은 노사나불 대신 중생에게 친숙한 화신 석가모니불(化身 釋迦牟尼佛)로 변한뒤 녹야원으로 이동, 그곳에 머물던 다섯 비구에게 최초 설법을 합니다.
*적멸도량(寂滅道場) :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
**천룡팔부(天龍八部) : 불법(佛法)을 지키는 여덟 신장.
통도사에서 1775년 제작한 <팔상탱> 중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의 화면 상단을 보시면, 보신 노사나불이 여러 보살과 신중들에 둘러싸인채 설법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아래사진). 그리고 화면 하단 향우측에는 녹야원에서 다섯비구를 상대로 설법하는 화신 석가모니불이 있습니다. 불화 한 폭에 보신불과 화신불을 함께 그려넣음으로써 두 부처는 별개가 아닌 동일한 존재라는 인식을 드러내었죠. 이러한 양상은 다른 사찰의 팔상탱화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조선 후기 불교계 전반에 삼신(三身) 불신관(佛身觀)이 저변화 되었음이 확인됩니다.
전반적인 복식 외에도 유심히 보셔야 할 포인트가 두군데 있습니다. 첫번째, 보관 중앙의 화불입니다. 짙은 청색의 연꽃 대좌 위에 화불 5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아쉽게도 모두 옷자락에 손을 숨기고 있어 정확한 존명 파악은 불가능 합니다. 다만 일부 연구자는 중앙에 위치한 화불을 비로자나불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근거는 현판 기문이지요. 만약 정말로 이 화불이 비로자나불이라면, 이는 본존에 내재된 근원이 법(法)임을 암시하는 셈입니다. 다만 비로자나불이 아니어도 대세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어짜피 모든 부처는 비로자나불과 한 몸이니까요.
두번째 포인트는 두 손에 지물로 든 연꽃입니다. 이러한 연꽃 모티프는 선종(禪宗)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염화시중(拈華示衆) 일화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법화경』을 설하던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춥니다. 이윽고 땅에 떨어진 연꽃 한송이를 집어서 가만히 들어보입니다. 좌중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요. 이때 말없이 빙긋이 미소짓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가섭존자입니다. 이는 훗날 석존이 말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法)을 전했다는 대표적 일화로 회자되었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해당 일화는 특히 선종에서 중시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종에서 추구하는 수행관인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관련 있습니다. 불립문자는 문자화된 경전에 의지하는 대신 수행자가 스스로 수행을 통해 깨우쳐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다만 수행자의 역량에만 의존하면 헤맬 수 있으니 이끌어주는 스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요. 이러한 배경에서 염화시중(拈華示衆) 일화는 선종에서 크게 각광받았고, 각종 의례나 불교미술의 모티프로 활용되었습니다. 통도사 괘불의 연꽃 지물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연꽃 지물은 본존이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이라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만일 지물이 없었다면 본존의 도상은 보신(報身) 노사나불로서의 성격이 더 강조되었겠죠. 그러나 조선후기 집필된 각종 불교 의식집들은 괘불 의례의 주존을 석가모니불로 명시하였습니다. 물론 불신관(佛身觀)***을 따져보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일체화 된 존재이지만 그래도 확실한게 좋겠죠. 불신관에 익숙치 않은 일반 신도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요. 통도사 괘불탱 도상에 연꽃 지물이 포함된 까닭은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불신관(佛身觀) : 부처의 몸에 대한 사고
지금까지 두 편의 글을 통해 통도사 괘불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상당히 난해한 교학적 내용이 포함되어 이해하시기 다소 어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저로서는 가능한 쉽게 이해시켜드리고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만일 여기까지 읽으셨는데도 잘 이해가 안되신다면 그것은 부족한 제 필력 탓입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추가적인 궁금증이 있는 분께서는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1. 문화재청ㆍ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정밀조사보고서 2 : 통도사 석가여래 괘불탱』, 2016.
2. 국립중앙박물관, 『꽃을 든 부처 : 보물 1350호 통도사 석가여래괘불탱』, 2006.
3. 이종수・허상호, 「17~18세기 불화의『畵記』분석과 용어 考察」,『佛敎美術』 21, 2009.
4. 한정호, 「통도사 괘불탱 연구」, 『석당논총』 39,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