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휴지 파란 휴지 이야기

희한하고 괴상한 화장실 귀신

by ZW

화장실 하면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가?

그중에서도 화장실에 얽힌 괴담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을 것이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변기에서 귀신이, 혹은 귀신의 손이 튀어나와 빨간 휴지를 줄지, 파란 휴지를 줄지 물어본다는 괴담이다. 오래전에 유행했다가 현재는 사그라든 괴담이지만 '빨간 휴지, 파란 휴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누구나 바로 알아들을 이야기다. 그만큼 유명하고 간단하며, 딱 학생들이 좋아할 정도로 괴상하고 섬뜩한 이야기다. 이번에는 이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괴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왜 빨간 휴지 파란 휴지일까

이 괴담은 화장실을 찾은 사람에게 빨간 휴지, 혹은 파란 휴지를 고르도록 선택지를 제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휴지를 고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어서 간단히 검색해 봤다. 그러자 빨간 휴지를 선택하면 피를 쏟으며 죽거나 불이 난다는 등 붉은색이 연상되는 방식으로 사망한다. 반대로 파란 휴지를 고르면 파란 귀신 손에 붙잡혀 끌려들어 간다, 혹은 목을 졸려 파래져서 죽는다 등 푸른색이 연상되는 방식으로 사망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나왔다. (이외에도 다른 방식들이 더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위 방식들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다.) 이를 보면 휴지의 색깔은 사망 방식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굳이 빨강과 파랑이었을까? 다른 색의 휴지는 없었던 걸까? 어느 휴지를 골라도 결국 죽는다면 귀신은 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일까?


휴지의 색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빨강과 파랑의 연상 이미지가 확연히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빨강 하면 불, 열기, 열정 등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면 파랑은 물, 냉기, 정적 등 비교적 냉랭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반대되는 색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새겨진 이미지가 이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지에 따른 사망 방식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피를 쏟는다, 불이 난다. 이 방식들은 조용하다기보다는 역동적이고, 여러 소리와 요소가 섞이며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커지는 느낌이다. 화장실 내부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끌고 들어간다, 목을 조른다. 이 방식들은 정적을 동반한다. 주변에 큰 흔적을 남기지도 않고, 요란한 소리가 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리를 막는 듯 피해자로부터 나올 소음을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는 사람에게 휴지 줄까? 하고 묻는 것은 친절한 행동이다. 만약 귀신이 정직하게 휴지를 준다면 이 이야기는 섬뜩한 괴담이 아니라 괴상한 미담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귀신은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중에서 고르게 하고는 죽여버린다. 왜 굳이? 휴지가 필요했을 뿐인 사람은 휴지도 없고 목숨도 사라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괴담의 배경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괴담은 과거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미 일본 관서지방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괴담이 한국까지 퍼져서 정착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튀어나오는 귀신이라니, 어쩌다가 이런 터무니없는 괴담이 생겨났을까? 왜 하필 화장실에서 휴지를 주겠다며 대답을 요구하는 귀신이 나오게 된 걸까.


괴담이라고 하면 보통 어두운 밤에 홀로 있는 상황을 가정한다. 이 괴담 역시 밤에 혼자 화장실에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을 것이다. 캄캄하고 조용한 상황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와중에 화장실에 간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려면 집 밖, 외부로 나가야 했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꽤나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안은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해도 외부 자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을 노리고 튀어나오는 귀신이 있다면? 정말 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괴담을 지어낸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점이 많다.


#귀신도 먹고살기 힘들다

귀신은 언제 나타날까?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것을 알아챈 순간일까, 화장실 사용 전일까, 도중일까, 아니면 이후일까? 보통은 화장실에 갔을 때, 혹은 사용 도중이라고 알려진 듯하다. 하지만 사용 도중에 나오는 것은 너무 멋없지 않나? 물론 기절할 정도로 놀랄 것 같지만 그래도 황당하다. 분뇨 가득한 곳 아래에서 기어올라오는 귀신이라고? 심지어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도중에? 귀신이 아무리 어디든 박혀있을 수는 있다고 해도 보는 눈이 있을 텐데 말이다. 공포 조성만을 위해 그런 곳에서 튀어나온다니 참 귀신도 먹고살기 힘들다. 차라리 화장실 벽 너머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쪽이 더 편할 것이다. 그렇게 나와서 하는 말도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이다. 그 아래에서 가지고 있었던 휴지라니 정말 사양하고 싶다. 실제로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보통 한국 귀신은 명확한 원한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이 죽은 방식 그대로 귀신의 형태를 띠거나, 죽은 장소에 달라붙어 지박령이 되는 등 죽음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한을 품고 그 자리에 남아 산 사람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화장실 귀신에게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저 화장실을 사용했을 뿐인데 귀신에게 죽어버렸다. 당연히 한을 품고 귀신이 되지 않을까? 화장실 귀신은 방금 자신이 죽인 사람의 귀신과 같은 화장실에 박혀서 원망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상황이지 않나? 그럴 거면 왜 죽이는 걸까? 외로워서? 그냥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귀신이 하나 더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푸세식 화장실에 갇혀서! 죽은 사람의 원한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가 화장실 귀신이라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밤에 혼자 화장실에 오는 사람에게만, 취약한 상황에 놓인 개인만을 공격하는 거라면 귀신도 선택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아닌가? 괴담의 배경을 생각해 보면 공격당하는 개인은 어린 학생들이다. 반대로 귀신을 퇴마 할 수 있는 상대가 들어와도 같은 질문을 할까? 푸세식 화장실 특성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성인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와도 튀어나올까? 아닐 것 같다. 귀신은 공포를 기반으로 하는 존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철저한 강약약강이다. 별 볼 일 없으니까 혼자 남겨진 미성년자만 골라서 죽인다고 보면 무섭기는커녕 황당하기만 하다. 뭐 이런 귀신이 다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학생들이 오래전에 지어낸 괴담이니 공포 요소만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웃기겠다, 싶어 이번 글을 작성해 보았다. 요즘 화장실에 이런 괴담이 생기면 '물을 내리면 안 되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기에, 다소 억지스러운 점도 옛날 괴담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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