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화장실에서...?
이전에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에 대해 글을 썼다. 그러나 그 외에도 화장실에 여러 귀신들이 있는 것이 떠올라, 화장실에 있는 귀신에 대해 조금 더 써보고자 한다.
'머리를 감을 때 귀신이 머리카락 수를 센다. 빨리 감지 않으면 귀신이 머리카락 수를 다 세고, 잡아간다.'
'밤 12시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다.'
두 번째는 왜 귀신 얘기에 엮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밤에 칼을 물고 거울을 봤을 때 나타나는 게 과연 사람일까, 귀신일까? 물론 미래의 배우자가 진짜로 등 뒤에 나타나는 것도 여러모로 곤란하지만, 진짜 사람이 나타나면 이건 괴담이 아니라 현실의 공포 사건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이 괴담에 등장하는 귀신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게다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감고 있을 때에나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것이다. 이 괴담의 핵심은 산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머리카락을 세서 잡아가는 것일 텐데, 몸을 곧게 세운 사람의 머리카락을 세다간 눈을 마주치기 십상이다. 그러면 귀신도 당황스럽고, 사람도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굳이 머리를 감는 동안에 나타나서 머리카락을 세는 걸까? 일단 머리카락을 물에 적시면 서로 달라붙어서 세기 어렵다. 게다가 머리를 감느라 샴푸를 사용하면 거품에 가려진다. 머리를 감는 내내 두피를 문지르고 헤집다 보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뒤섞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무수히 많은 머리카락을 다 세는 일이 가능하긴 할까? 차분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모두 세는 것도 한참 걸린다. 게다가 중간에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것도 큰 문제다. 귀신이 되면 머리 감는 사람의 머리카락 수 정도는 완벽하게 셀 수 있는 건지. 너무 별 볼 일 없는 능력 아닌가? 헷갈리지 않고 셀 수 있더라도 다 세기 전에 사람이 화장실을 나가면 세나 마나 똑같다. 왜 하필 머리카락을 세는 걸까.
무언가를 세는 존재는 또 하나 있다. 야광귀라는 귀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마당에 체를 걸어놓는다. 그러면 체에 난 구멍을 세다가 잊어버리고, 또다시 세는 것을 밤새도록 반복하는 귀신'이 바로 야광귀다. 야광귀는 사람의 신발을 가져가기 위해 왔으나 체의 구멍을 세는 데에 정신이 팔린다. 이런 선례가 되는 설화와 비교해 보자. 이 괴담의 귀신 또한 비슷한 이유일까? 사람을 잡으러 왔다가 숙여진 머리의 머리카락을 본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 하나하나 세다가 샤워가 끝날 때까지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굳이 씻고 있는 사람을 잡아가서 무슨 이득을 보길래 잡아가는 걸까? 덜 씻어서 더럽고 축축하기까지 한 사람을 잡아가서 어디에 쓰려고?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머리카락이 목적인 걸까? 하지만 머리카락이 목적이라고 하면 탈모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목표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있는지 세려고 하는 걸까. 탈모에 한을 가진 귀신이라니. 게다가 샤워를 끝내면 잡아가지도 않는다. 남의 머리카락은 가지고 싶지만, 대놓고 사람을 공격해서 끌고 갈 능력은 없다. 무방비 상태의 사람과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고, 그 무방비한 시간이 다 지나가면 해치지도 않는다. 얼마나 빈약한 힘을 가진 귀신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탈모 귀신은 이름만 들어도 별 볼 일 없게 느껴진다.
그렇게 사람을 잡아간다고 치자. 어떻게? 잡아간다고 하면 보통 물리적으로 끌고 가는 이미지다. 좁은 화장실에서 끌고 가는 행위가 쉽게 이루어지기나 할까? 문을 건너고 방을 건너서 현관문을 지나야 한다. 혼자서 머리도 감을 수 있는 사람을 끌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끌고 가서는 어떻게 할까. 머리카락을 자른다. 아니면 괴담이니 머리를 통째로 가져갈 수도 있다. 산 사람의 머리카락을 귀신의 머리에 심는 것보다는 머리를 가지는 편이 훨씬 간단할 테니까. 하지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탈모 귀신에게 그만한 힘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머리카락 귀신은 산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대들 힘도 없는 귀신인 데다 벗어나는 조건도 간단하니 정말 무섭지가 않다.
이 괴담이 진행되는 장소가 꼭 화장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화장실이라고 명확하게 지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 핵심조건 중 하나이니 거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화장실의 세면대 위에 거울이 있고, 그 거울은 인물의 형태를 넉넉하게 비출 수 있는 크기다. 그러니 이 귀신 또한 화장실에 있다고 가정한다.
괴담의 구조는 간단하다. 칼을 문다. 밤 12시에 거울을 본다.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다면 그것은 예언이나 다름없다. 간혹 미래를 예언한다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12시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1000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날에 이 행동을 하더라도 볼 수 있는 확정적 예언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그렇게 될 일도 없는 데다 조건에 섬뜩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일은 예언 따위가 아니라 괴담으로 분류된다.
이 괴담의 또 다른 핵심 조건은 칼을 입에 무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조건이다. 간혹 '입에 문 칼을 놓치면 미래에 만날 배우자의 얼굴에 상처가 생긴다.' 같은 내용이 더 붙기도 한다. 그래서 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에 힘을 줄 수도 있지만, 그전에 당사자가 떨어지는 칼에 다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굳이 칼을 물어야 하는 이유는 왜일까? 칼은 잘 쓰면 이롭지만 조금이라도 잘못 쓰면 아주 위험한 도구다. 동시에 웬만한 가정집에선 구비하고 있다. 누군지 모를 귀신의 사인에 이런 칼이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원한을 가지고 자신과 동일한 수법으로 길동무를 만들려는 걸까.
그 와중에 어떻게 미래의 배우자를 보여주는 걸까? 아무래도 그럴듯하게 둔갑하거나 눈속임을 하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말한 '입에 문 칼을 놓치면 미래에 만날 배우자의 얼굴에 상처가 생긴다.' 이 조건이 만족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해당 배우자가 복수심을 가지고 '네가 그랬지'하고 화를 낸다.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가 어떻게 그 괴담 탓인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다가 다쳤는가, 와는 관계없이 상대가 과거에 실행한 괴담 탓으로 돌리는 것도 대단한 마음가짐이다. 애초에 상대에게 괴담의 결과 같은 얘기를 하지도 않을 텐데. 결과를 이미 아는 채로 무작정 남의 탓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뿐이다.
거울에 비친 배우자의 형상이 귀신이라 추측하는 이유다. 적당히 아무 모습으로나 꾸며내서 산 사람을 속인 후에 이를 기억해 둔다. 그리고 미래에 똑같은 모습으로 산 사람의 앞에 나타난다. 왜? 이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괴담을 실행하는 것은 보통 학생들일 것이다. 그 나잇대에 원한을 가진 이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몇 년, 몇십 년씩이나 시간을 들여서 해치고자 하는 이유는 왜일까. 물론 그 학생 스스로가 원한을 살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조상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고, 그에 따라 지속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렸으니 몇 년, 몇십 년쯤 더 기다리는 것도. 화장실이라는 장소에 콕 박혀 있는 것도 상관없다. 귀신이란 원념만 남기 쉬운 존재니까.
화장실은 저도 모르게 무방비해지기 쉬운 곳이라, 유난히 관련된 괴담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화장실에 뭐가 나온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다. 화장실에 관련된 괴담과 귀신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