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어릴 때, 늘 12시 이전에 반드시 자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12시나 12시 이후의 시간대를 가정하는 괴담들은 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특히 새벽에 일어난다는 텔레비전 괴담에 대해서는 말만 들어봤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테지만, 그때는 정말로 믿었다. 텔레비전 괴담은 이런 내용이었다.
'새벽에 텔레비전의 화면조정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귀신이 나온다.'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릴 때는 그 화면조정 중이라는 화면과 소리가 무서워서 정말 귀신이 나올까 봐 오래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전의 전화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텔레비전에서 왜 귀신이 나오는 걸까?
화면조정 시에 뜨는 쨍하고, 검고 흰 여러 색으로 찬 화면은, 말 그대로 화면에 나타나는 색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흔히 3 원색이라 불리는 빨강, 초록, 파랑과 이 각각의 색을 합쳐서 만들어진 노랑, 마젠타, 시안, 그리고 검정과 하양이 가장 눈에 띈다. 화면에 이 색들이 멀쩡하게 잘 뜨는지, 밝기는 적당한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이런 화면을 사용한다고 한다. 혹은 노이즈 가득한 화면이 띄워진다.
정말 화면조정을 위해 잠깐 트는 경우는 제외하고, 이런 화면이 새벽 시간에 나올 때는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에 나온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전파를 잡아내서 화면을 송출해야 하는데 이런 전파가 없으면 대신에 화면조정을 틀어주는 것이다. 새벽 시간대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프로그램 편성을 하지 않으니 이 화면조정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어릴 때에는 삐- 소리나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소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공포심이 들어 듣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기에 여기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붙여진 걸까?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오는 귀신이라면 이미 유명한 귀신이 하나 있다. 영화 링(1998)에 나오는 사다코 귀신이다. 작중에서 비디오를 재생하면 이 사다코가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것에서 시작해 텔레비전 밖까지 손을 뻗어 튀어나온다. 선례에 해당하는 공포 영화가 있으니 이런 괴담이 생겨난 걸까? 하지만 이 괴담은 사다코 귀신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다코는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다가온다는 전조 현상이 있지만, 이 괴담에서 등장하는 귀신은 전조 현상이 없다. 화면조정과 노이즈 소리를 계속 볼 경우에 나타난다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가능할까?
실체가 없는 귀신이 텔레비전이든 어딘가에서 튀어나온다. 그건 그 물체 자체에서 튀어나온다기보다는 통과해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새벽 시간에 텔레비전의 화면조정을 오랫동안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전등을 끈 상태일 것이다. 전등을 켠 상태라면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지 않더라도 다른 할 일을 할 수 있다. 굳이 화면을 계속 주시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불을 끈 상태에서 화면조정을 보고 있다면, 텔레비전의 정확히 어디에서 귀신이 튀어나오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두운 와중에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오면 놀라기 바쁠 테니까. 귀신은 그저 텔레비전을 통과해서 나올 뿐인데, 주변이 어둡다 보니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애초에 전파로 전송될 수 있으며 전자기기에 튀어나오는 귀신이라면, 귀신보다는 인터넷 바이러스에 가깝지 않을까? 인터넷 바이러스가 텔레비전에 전송되어 화면 가득 나타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해결할 생각에 다른 의미로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귀신이 텔레비전을 통과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라 가정해 보자. 화면조정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귀신이 나타난다. 왜? 어떤 이유로? 이 귀신에게 어떤 원한이나 복수심이 있길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복수심을 느끼게 되는 걸까?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고, 시선에 민감한 직업이라면 여럿 있다. 언론으로 노출되는 직업이라면 무엇이든 이에 속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들어오는 악성 루머나 댓글, 비난으로 압박감을 느끼는 이들은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힌다거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따라온다거나. 좋은 쪽의 관심이라면 몰라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깎아내리기 위해 쫓아오는 관심은 누구라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원한을 가진 것이라면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왜 굳이 화면조정 시간대에 나타나는 걸까? 앞서 말했듯, 새벽 시간의 화면조정은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없다.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보고 있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화면에 어떤 의미도 없는데 계속 바라보고 있다. 시선에 두려움을 가지고 원한을 가진 귀신이 그 너머에 있다면, 이것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 착각할 수 있지 않을까. 너머에 있는 자신을 알아보고 있다 착각하며 나타난다면? 텔레비전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인 새벽에조차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선을 치우기 위해 행동하지 않을까?
요즘에도 새벽엔 화면조정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 괴담을 들은 것도 정말 어릴 때라, 지금 어린 학생들이 이걸 아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어릴 때 딱 한 번 새벽까지 텔레비전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귀신이라도 나올까, 무서웠지만 정작 텔레비전은 오래된 미국 애니메이션을 멀쩡하게 송출했다. 그 이후로는 이 괴담을 별로 안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