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협상을 이야기할 때
#“말 한마디 못 해 본 대가, 혹시 당신의 ‘억울함’인가요?”
*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하지만 어떤 말은, 천 명의 사람을 잃게도 한다.” – 무명의 작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말할 기회' 앞에 선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사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 그런데 가끔은 너무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입을 꾹 닫아버리곤 한다. 침묵이 금이라지만, 침묵이 곧 족쇄가 되는 순간도 있다.
서울 한복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서 10년을 버틴 한 남자 이야기다. 그는 매년 연봉 협상 시즌만 되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번에도 그냥 넘기자.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조용히, 꾹 참아내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같은 날 입사한 동기와의 연봉 차이가, 천만 원이 넘어섰다.
그가 협상에서 '진' 걸까? 아니. 그는 아예 협상조차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1.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라” – 감정이 지나가면, 관계가
남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는 늘 크고 작은 협상 테이블에앉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을 때, 대부분은 사안 자체가 아니라 '사람' 탓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해." "또 저 말이야… 날 자극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우리가 말을 들어도, '의도'보다는 '기분'으로 반응하기 쉽기때문이다. 그 순간, 협상은 더 이상 협상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감정싸움으로 변질될 뿐이다. 협상은 관계를 깨뜨리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상대방이 왜 그런 태도를 취하고,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상황 이면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진짜 협상의 시작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대신,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2. “입장이 아니라 이익을 보라” – 속마음을 말해줘야,
사람이 보입니다.
제가 만났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어느날 팀장이 갑자기 이직을 통보했다. 대표는 충격에 빠졌다. "왜? 왜 나한테 한마디도 없이…?"
알고 보니, 그 팀장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조용히, 그리고 여러 번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요즘 아이가 아파서요." "출퇴근 시간이 너무 부담돼요." 하지만 대표는 '요즘 다들 힘들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그 팀장은 연봉이 낮아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의 시간, 몸의 피로, 마음의 고독, 즉 '진정한 이익'이 채워지지 않아 떠난 것이다. 그 속마음을 미리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대표가 귀 기울일 수 있었다면… 과연 협상은 불가능했을까?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더 깊은 '이유'와 '이익'이 숨어 있다. 그 숨겨진 이유를 들여다보려는 노력, 그리고 그 이유를 기꺼이 꺼내 놓으려는 용기에서 진정한 소통은 시작된다.
3. “BATNA를 준비하라” – 대안 없는 사람은,
입도 못 엽니다.
제가 HR 현장에서 가장 아프게 목격한 협상 실패 사례가 있다. 한 중소기업의 과장급 직원이었다. 성과는 뛰어났지만,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봉을 동결시켰다. "힘드니까 다 같이 참자"는 것이었다.
그는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완전히 무기력해져 버렸고 결국 조용히 퇴사했다. 이것이 바로 'BATNA'의 부재다.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협상 결렬 시 최선 대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란한 '말'이 아니다. 바로 '선택지'다. 협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심지어 결렬된다 해도, 내가 택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이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4.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말하라” – 목소리보다,
근거가 크게 울립니다.
협상 자리에서 "저 너무 억울합니다!"라고 소리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그에게 공감하거나 반응하지 않았다. 감정은 격렬했지만, 그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 이런 말을 조용히 건넨 사람이 있었다. "동일 직무 기준 시장 평균은 작년에 비해 5% 이상 인상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해 OOO 프로젝트에서 매출 40% 증가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 말 한마디로 연봉을 두 자릿수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감정은 잠시 기억되지만, 논리적인 근거와 데이터는 '행동'하게 만든다. 감정으로만 호소하는 것은 자기 고백에 불과하지만,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된다.
# 그리고 아주 조용했던 한 사람의 작은 변화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에서 가장 조용했던 직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늘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회의 시간에도 말이 없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조용히 인사팀을 찾아왔다.
"그동안 말 못 했던 게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차분히, 자신의 지난 기여도와 회사에서 느꼈던 어려움,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근무 환경과 연봉 수준까지. 그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정리해 온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고, 한 시간 내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연봉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팀 리더로의 승진까지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사표를 쓰려고 했어요. 너무 답답해서요. 그런데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말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문장이 저를 움직였어요."
# 끝으로, 협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협상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국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방의 '진심'과 '이유'를 이해하려 애쓰는, 겸손한 노력이다.
#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의 진심을 꺼내어 보이고, 오랜 시간 소중히 쌓아 올린 관계를 단단히 지켜내기 위해서다.
협상에서 진 게 아니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