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범 외(2017). 우리는 왜 농촌 마을 홍동을 찾는가, 그물코
"돈을 억수로 들인 건물이나 몇 부농의 특화시설이 없는 대신, 고만고만한 소농들이 유기농업과 축산으로 순환농업을 하면서… 지역과 학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작은 생각의 씨앗이 한 잎 두 잎 자라고 가지가 나서 이제는 큰 줄기를 뻗은 주민조직도 생겨났습니다."(홍순명 전 풀무학교 교장)
홍동마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십년 전 쯤인가.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백년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4,5년 주기의 선거로 단기 미래가 휙휙 결정되는 이 때, 백년은 고사하고 십년이라도 내다보는 정치가 어려운 이 때 백년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부러웠다. 그 안목의 든든한 뿌리는 무엇인가.
이 책은 충청남도 홍성의 홍동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교육과 유기농업, 협동과 연대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홍동에 풀무학교가 처음 설립된 1958년부터 시작됐다.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생협과 신협과 농협이 지역에 세워지고, 이를 기반으로 어린이집, 도서관, 출판사, 여성농업인지원센터, 의료생협 등 다양한 마을조직들이 들어서 출판연도 기준 약 100개 마을조직이 시끌벅적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마을 교육 공동체는 단순히 '학습'이 일어나는 것 또는 학습 기회를 확장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주민 성장과 삶의 질 향상, 주민 간 소통과 관계망 확대, 교육 기회 제공과 마을 학습망 구축, 학습 자원 공유와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결국 마을 교육 공동체를 통해 주민 삶의 질 향상과 마을 학습 문화 및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p.74)
책에서 주목한 것은 마을 교육 공동체다. 이때 교육은 아동의 학습이기도, 성인의 학습이기도 하다. 홍동마을교육 공동체는 풀무학교를 비롯해 마을활력소, 밝맑도서관, 갓골목공실, 풀무생협과 신협 등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실 이 하나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마을의 다른 주체들과 소통하고 협력해나가는 과정도, 크게 보면 교육일 것이다.
환경교육에 대해 성기게나마 배우다보니, 현대 사회에서 인식되는 '환경'에 대해서만 배우는 것으로는 환경교육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지만, 그 중요성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인가? 그 멀어보이는 북극곰, 남태평양의 이야기가, 가까이 와봤자 바다와 숲과 산의 이야기가, 아스팔트땅을 밟으며 도시를 살아가며 가끔씩 복개된 하천이나 근린공원에서나 '자연'을 누리는 대다수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가?
환경은 도시의 반대항, 인간의 반대항으로서, 나무나 풀이나 강 등의 자연물로서만, 초록으로서만 인식되는 것 - 현대 사회의 이분법적 세계관 위에서 분리되고 분리되어 최소화된 범위 - 이 아니라, 도시와 지역을 포괄하고 인간과 인간관계를 포괄하고 즉 나 자신을 포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나와 내 주변이, 나와 내가 밟은 땅이 연결되어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 깨달음을 삶에서 얻고 체화하고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은 결국 내가 사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교육이, 홍동마을같은 마을교육공동체와 같은 시도가 소중하고 의미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먹는 것이 땅에서 온다는 것을, 내가 쓰고 버린 것이 결국은 나와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결국은 나도 땅에서 왔고 땅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 내가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동체.
(풀무학교) 전공부의 설립 가능성을 처음으로 모색한 때는 1986년 가을이었다. 당시 홍순명 선생은 19세기 덴마크의 역사를 바꾼 백성 대학(Volkshochschule, 국민고등학교라고도 번역됨)과 미국의 지역 사회대학(Community college)을 부러워하면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학교, 곧 오늘날의 전공부를 세울 큰 뜻을 품었다. (p.34)
책을 읽으면서 이 충남의 교육공동체가 지구적인 연결망 위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삶을 위한 학교'라는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에 관한 책을 읽고 마음에 담아놓은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그런데 이미 193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이 덴마크의 움직임을 동경하며 본받으려던 시도가 이미 있었다는 것이 1차 충격, 그흐름이 한국에서 '위대한 평민', '더불어사는 평민'을 이야기하는 풀무학교의 설립과도 닿아있다는 것이 2차 충격. 선조들 멋져. 생소해뵈던 덴마크의 백성대학이라는 것이 역사 속에서 이미 우리와 이어져있었다.
국내 유기농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홍동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유기농업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유기농업의 원리와 원칙에 대한 농민들의 신념 때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왜 해야 하는지는 너무도 강하게 자리 잡혀, 무엇이든지 해보려 했고, 실패를 무릅쓰고도 또 다시 해냈다.(p.143)
초창기 유기농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농민들은 같은 생각을 가진 농민들끼리 힘을 합쳐야 했다. ...농민들 역시 서로 간에 얼굴이 보이는 규모가 유지될 때까지는 원리와 원칙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조직화와 광역화로 얼굴이 보이는 규모를 넘어서면서 하나의 조합원으로서만 인식하게 되어버렸을지 모를 일이다.(p. 145)
이 글을 읽으며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이 생각났다. '왜' 우리가 유기농을 하는지, 우리의 정체성은 무언가에 대한 뿌리가 잡혀있는 사람들은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사람 일이니 그 뿌리도 흔들릴 수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얼굴을 보이는 규모'를 넘어서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엔지오로서 지역에서 주민자립을 위해 활동했었다. 엔지오에서 갖고 있던 비전을 주민들과 실현하려던 목적이었으나, 생계에 바쁜 주민들과 뿌리를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이상은, 특히 이식되는 경우에는 현실에서 깊고깊은 장롱 서랍 속 집문서 땅문서가 되기 쉽다. 혹은 그저 너저분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결국은 당사자들이 답일까. 계속 소통하고 확인하면서 그때그때의 뿌리를 다져주는게 답일까.
딱딱한 이 책이 좋았던 점은 홍동마을을 이상화하지 않고 그 발전 과정을 세세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의 이상도, 중간의 부침과 갈등도, 여전히 모든 것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어찌어찌 샤부작샤부작 오고 있는 발걸음은 후배들에게 시사점도 위안도 힌트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