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푸레북카페 이야기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제 1의 장소 가정, 제 2의 장소인 일터/학교 외에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고 대화하며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제 3의 장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아는 꽉 막히고,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고, 불행한 사람들은 대개 온종일 일하고 바로 집으로 가서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자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일과 가정생활 외의 그 어떤 사적인 경험도 없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직장과 집만 있고 놀러갈 곳이 없다.- 미국 저널리스트 피트 해밀(p.97)
집순이로서 게다가 코로나시대를 2년째 나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뼈를 맞은 듯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우리 동네 제 3의 장소.
서울은 빌딩으로 빼곡한 인공도시같지만,
사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큰 물을 끼고 큰 산들에 둘러싸여있는 지역이다.
오늘 소개할 물푸레 북카페는 서울을 둘러싼 산들 중 북쪽에 있는 북한산자락,
물푸레나무가 많아 예전에는 물푸레골이라고 불리던 은평구 진관동,
2010년대 이후에는 은평뉴타운이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곳에
그리고 뭣보다도 중요하게도 우리집에서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물푸레 공간은 북한산에서 뻗어나온 이말산 생태공원 안 아파트단지에 위치하여
서울의 아파트단지라고 하기에는 새소리가 다양하다.
밖에서 본 물푸레과 물푸레 서재에서 본 밖.
물푸레 공간은 크게 두개로 나뉘는데, 한쪽은 서재, 한쪽은 카페다.
이 공간, 지역주민들에게 인기가 꽤 있다.
네이버 평과 블로그에서 발췌해본 물푸레 이야기.
물푸레 서재에 붙어있는 글.
매일 오고 싶단다.
물푸레 서재에 붙은 시.
학교 마치고 물푸레 와서 놀 수 있어서 우리 동네가 좋단다.
이런 평들을 남긴 사람들+a에게,
주로는 지역주민, 이 비교적 신생 커뮤니티인 은평뉴타운 주민들에게
물푸레는 제3의 장소로 역할을 하고 있는듯하다.
과연 이 공간이 어떻길래?
당신이 물푸레에 들리신다면
물푸레는 카페와 서재만이 아니라 상당한 복합공간이다.
일단 카페를 가보자.
들어가서
시세에 비해 저렴한 공정무역 커피나 유기농 음료 간식들을 시켜놓고 앉아
한켠에 있는 만화책들을 탐독하거나, 보드게임을 대여해 즐기거나,
한켠의 제로웨이스트 물품들을 구입할 수도 있고, 용기를 가져와 각종 세제를 담아 살 수도 있다.
서재로 가보면,
이런 공간에서 책들을 읽거나
테마별로 꾸며진 안쪽 방(하늘, 별, 바람, 시 방)들을 대관해 쓰거나
공방을 이용하거나 또는 수선을 맡길수도 있고
프린터를 셀프로 이용할 수도 있다.
요런 약속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중간 정리를 해보자.
여기까지의 기본소개만으로도
물푸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첫째, 공간이 예쁘다.
공간이 예쁘다는 것은
사람의 일상적이고 부지런한 손길이 구석구석에 가있다는 말이다.
물푸레의 네명의 활동가 중 하나인 가을님은 말했다.
공간은 사람이 머물러야 빛이 나요. 사람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한다고 절대 잘 이뤄질 수 없어요. 돈이 있다고 공간을 다 이처럼 꾸밀 수 있지는 않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공간지킴이가 마음을 열고, 방문자도 마음을 열어야 해요.
- 은평문화재단, 2021 은평생활문화웹진 <요모조모> 1호 인터뷰 ① 물푸레 북카페 활동가 가을 中
빡빡한 도시에서 유료로든 무료로든 빌렸던 회의실, 세미나룸 등의 공간들에는
대체로 무심과 눅눅함이 스며있었고 책상이나 의자는 차차 못쓰게 되어가는 것 같았던걸 상기하면
물푸레가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둘째, 할 게 많다.
카페도 되고 서재도 되고 보드게임카페도 만화방도 제로웨이스트샵도 공방도 프린터샵도 세미나룸도 된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다.
살뜰하게 매만져지고 있는 공간에 사람들은 모이고 그 안에서 작당들이 벌어진다.
물푸레 곳곳에 붙은 자그만 홍보포스터들이
그 작당의 과정들이다.
요가도, 재즈싱잉도, 피아노도, 역사공부도, 영어공부도, 뜨개질도 할 수 있다.
모임 강사는 대부분 동네주민분들이 된단다.
자기 재능을 동네에서 동네사람들과 펼쳐보인다는 것,
또는 동네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웨이브가 최고점을 찍은 2022년 4월 현재에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도 모임과 강습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마음 편하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것은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이 살뜰한 공간 덕일 것이다.
이 제 3의 장소는 어디에서 뿅하고 생겼을까?
이 제 3의 장소에서, 또 어떤 관계와 연결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요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찾았다.
우리 동네 제 3의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