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너머의 사색: 어느 편의점 알바생의 기록

by Yong

카운터 너머의 사색: 어느 편의점 알바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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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처음 던진 질문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어떤 장갑이 좋을까?" 계절과 업무에 따라 달라지는 장갑의 종류, 1+1 상품은 두 개 모두 스캔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 CU 포스기의 작동법까지. 나는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배우는 초심자였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내 삶의 축소판이자, 내가 외면해왔던 세상과의 거친 재회였다.

새로운 전장, 이등병으로 돌아간 나


내가 근무하게 된 곳은 평범한 편의점이 아니었다. 동탄에서, 아니 화성시에서 1등을 다투는 매장. 한림대병원과 삼성 반도체, 수많은 협력사가 밀집한 이곳은 일반 편의점의 네 배는 족히 되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점심에는 음료와 주류, 저녁에는 냉장 식품. 하루에도 두 번씩 들이닥치는 물류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첫날, 120개가 넘는 냉장식품을 혼자 검수하며 손님을 받고 있자니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마음만 급하고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음료수 하나를 진열하는 것조차 매니저 옆에서는 어리버리한 몸짓이 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어리버리한 사람이었던가." 수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든 것을 아는 척해야 했던 사교육 선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군대 이등병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했다. 젊은 시절, 이런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공장 생산라인에서 묵묵히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체력과 두뇌, 그리고 감정까지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인 전장이었다.

첫날부터 물류가 한 박스나 누락되는 드라마 같은 상황도 겪었다. 내가 뭘 잘못 센 건가,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지만 결국 물류 기사의 실수였다. 혼자였다면 엉망이 되었을 테지만, 사장님의 따님과 매니저가 도와주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제발 하루만 하고 그만두지 말아요." 그 한마디에 이 시간대의 고됨과 수많은 이들의 포기가 묻어났다. 경력자들조차 왔다가 도망갔을 법한 곳. 하지만 나는 도망갈 여유가 없었다. 절실했다.


선생이라는 이름의 무게


편의점의 소란함 속에서 나는 종종 내 본업인 ‘선생’의 자리를 떠올렸다. 계산대 위로 쏟아지는 손님들의 목소리 속에서, 문득 교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이상하게도 편의점의 육체적 고됨보다, 교실에서의 정신적 소모가 더 아프게 다가왔다. 한때 나는 자신만만했다. 내 손만 거치면 80점 이하의 학생은 없었다. 빵점이든 50점이든, 결국 100점을 맞게 하는 공부 방식을 고집했다. 그건 단순한 점수가 아니었다. 100점을 맞을 정도의 노력과 재능을 펼쳐본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대부분 잘해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철학이었고, 나의 애제자와 조카들이 명문대에 간 이유였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을 선호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부모들은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나의 전문성과 단호함은 강점이 아닌 약점이 되어갔다. 그들은 팩트 폭력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원했고, 아이를 하루 종일 학원에 가둬두는 시스템을 차라리 선호했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아이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면서, 정작 나는 점점 좁아지는 현실의 길 위에서 있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고,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룩할 주제가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 내게는 차마 놓을 수 없는 아이가 하나 있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상처와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애제자가 된 아이다. 아이의 세상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와 가정의 어려움이 그 작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놓치면 나 또한 무너질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을 놓쳐가면서까지,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아이의 등하교 길을 함께한다.


아이가 스스로 “선생님, 저 응급구조학과 갈래요.”

그 순간,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 꿈이 아직은 닿을 수 없이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까지 돕고 싶다. 그것이 선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심이기에.


한때 5년을 넘게 가르쳤던 아이의 아버지를 마주쳤을 때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나를 모른 척했다. 아들이 변한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듯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가 한순간에 ‘무능한 선생’이라는 악역으로 끝나는 것. 그것이 이 일의 가장 슬프고 힘든 점이다. 내가 했던 진실된 조언들이, 오히려 그들이 나를 마주하기 어렵게 만드는 벽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이제 진실보다 편안함을 원했다.


시뮬레이션 세계의 관찰자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운전해 돌아오는 길, 문득 눈물이 났다. "왜 이 나이에 이래야 하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 삶이었다. 가난과 힘듦, 그리고 사회의 보호망 바깥에서 버텨내는 삶. 나보다 훨씬 나은 조건의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뭐지?"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건 자부심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99% 확률로 시뮬레이션일 거라고 확신한다. AI의 등장은 소수의 엘리트만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가속화하고,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듯, 머지않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잉여 인력’이 될 것이다.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고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정점에 이르면 오히려 인구 감소는 합리적인 조정이 될지 모른다. 우수한 유전자를 설계하여 후손을 ‘생산’하는 시대가 오면, 지금의 논쟁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시나리오는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가장 확률 높은 미래다.

시뮬레이션 세계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너무나 가혹하다. 운이라는 보정치는 너무 낮게 설정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이 구조를 꿰뚫어 본다 한들 당장 내 카드값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현실의 무게는 어김없이 나를 짓누른다.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치 없이 살아도 월 250만 원은 기본으로 사라지는 것이 현대 사회다. 나는 그저 버티며 메꾸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다시, 카운터 너머에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내게 간만에 찾아온 새로운 경험이다. 공부방에 갇혀 아이들만 만나던 내가, 하루에도 수백 명의 스쳐 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생활 패턴 속에 ‘나’라는 아르바이트생이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무뚝뚝한 직장인, 뒤늦게 포인트를 찾는 아주머니, 까탈스러운 젊은 남자, 그리고 주말 야식을 사러 온 부러운 커플들.

나는 그들의 삶의 단면을 보며 인터넷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진짜 세상을 마주한다. 콘돔을 사는 커플 앞에서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 계산에만 집중하고, 나의 서툰 실수에 "죄송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황송해하는 손님을 보며 요즘 세대의 무뚝뚝함을 실감한다. 이 모든 것은 피곤하지만 신선한 경험이다.

세 번째 토요일을 마쳤다. 교대 시간을 30분 남기고 쏟아진 물류 앞에서 앞 타임 근무자는 연장 근무를 해야 했다. 폭염 속에서 땀 흘리는 물류기사의 지친 얼굴을 보면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사장님이 직접 나와 일을 도우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6월에 왔던 젊은 친구가 핑계를 대고 그만뒀어." 그 말을 들으니, 나를 향한 그들의 간절함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물류 검수하는 꿈을 꾼다. 뇌가 먼저 이 가혹한 현실에 적응하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허리와 손가락의 통증은 오래전 군대와 공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고단함이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1년, 아니 그 이상을 버텨내고 추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이 막막한 현실의 둑을 조금씩 메워나가야 한다. 삶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나는 안다. 이 모든 고됨과 사색이 당장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편의점 카운터 너머에서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관찰하고, 버텨내고 있다. 시뮬레이션 속 하나의 개체일지라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가혹한 역할을 끝까지 살아내려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카운터 너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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