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년간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교실 안에서 나는 성적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 관계, 그리고 서툰 사랑의 민낯을 수없이 목격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이들의 연애 방식 또한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소위 ‘일진’이라 불리거나 압도적인 외모를 가진 남학생들이 인기를 독차지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은 여전하지만, 연애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다.
1. 티키타카, 그 10분의 1의 마법
요즘 남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여자를 대할 줄 모른다. 게임과 유튜브, 자극적인 영상에만 몰두한 채 자라난 그들에게 이성과의 ‘티키타카’, 즉 감정적 교류는 미지의 영역이다. 반면, 그 나이 때 여학생들은 웹툰과 드라마가 그려내는 로맨스 판타지에 흠뻑 젖어있다. 그 환상을 현실에서 단 10분의 1이라도 흉내 내주는 남학생이 나타난다면, 그 아이는 곧바로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 기묘한 ‘틈새시장’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침투하는 남학생들이 있다. 과거의 기준이라면 도저히 여자를 사귀기 힘들었을 법한 평범한 외모와 성격의 아이들이, 오히려 여러 여학생을 쉽게 만나고 자주 갈아치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진심이 아닌, 계산된 ‘로맨스 흉내’만으로 여학생들의 마음을 얻는다. 여자아이가 DM으로 쏟아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게임을 하면서 건성으로 한두 마디 답해주다가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면 어디서 검색한 듯한 장문의 글로 마음을 돌려놓는다. 미숙한 여자아이는 그 서툰 연기에 쉽게 넘어가고 만다.
2. 환상에 젖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나는 남자이기에,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을 지켜본 어른이기에 그들의 거짓 허세와 기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관계에 빠진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그 남자아이는 이미 웹툰 속 주인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 애를 몰라요.” 여자아이는 단호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남자애가 사랑을 흉내 내고 있다는 걸.
이런 관계의 종착역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남자아이의 목적은 감정 교류가 아닌, 사실상 스킨십이다. 로맨스를 흉내 내는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들의 첫 경험이 빨라진 것은 그들이 되바라져서가 아니다. 관계 초반, 감정적으로 과몰입한 여학생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남학생들이 경험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대신, 상대의 심리적 취약함을 이용해 ‘빨리 해치우려’ 든다.
그들이 흉내 내는 로맨스는, 결국 서둘러 목적지에 닿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스킨십이라는 목적이 달성된 후, 남자아이들의 태도는 급격히 차가워진다. 뜨거웠던 관심은 온데간데없고, 관계는 허무하게 끝난다. 남는 것은 마음과 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자아이뿐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첫 경험이 아니다. 감정적 교류가 배제된 채, 일방적인 목적 아래 이루어진 관계는 더러운 성범죄를 당한 것과 같은 상처를 남긴다.
3. 나르시시스트를 사랑한 소녀의 비극
여기에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남자아이가 얽히면 상황은 더욱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기애로 가득 찬 그들은 상대의 감정을 자신의 만족을 위한 도구로만 여긴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가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빠졌다고 확신하는 순간부터 냉정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감정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나의 한 애제자는 그런 아이에게 마음을 줬다가 정신적으로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관계가 끝난 후에도 “계속 네 생각이 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후버링’까지 당했다.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직접 그 남자아이와 통화했고, 그 내용을 녹음해두고 나서야 길고 긴 괴롭힘이 끝났다.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서툰 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동시에 읽는다. 어른의 눈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 그 거짓된 관계의 끝을, 아이들은 보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다가, 무너진 아이의 곁에서 “내 말이 맞았지”라는 씁쓸한 위로 대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것뿐이다. 사랑을 흉내 내는 소년과 진심을 내어준 소녀의 비극은, 지금도 교실 밖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끝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