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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시뮬레이션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by Yong

꿈, 시뮬레이션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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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꿈이라는 현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시뮬레이션 시스템과의 연결이 잠시 끊어진 상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뇌과학은 꿈을 기억의 정리나 감정 처리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꿈은 어쩌면 시스템에서 잠시 로그아웃된 의식이, 자신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조해 내는 순수한 개인의 시뮬레이션은 아닐까.


경험의 재조합, 그리고 뒤죽박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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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떠올려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것을 꿈속에서 완전히 처음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어린 시절의 꿈이 집과 학교, 부모와 친구 같은 한정된 풍경 안에서만 펼쳐졌던 것을 기억한다.
꿈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의 파편들을 재료 삼아 새로운 세계를 ‘렌더링’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꿈속 세계는 비합리적이고 뒤죽박죽이다. 분명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 사람들이 등장하고, 집이자 회사가 되기도 하고, 다시 다른 공간이 되며, 친구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꿈이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과 인과율이라는 ‘정식 루트’를 따르지 않는 비인가된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가 뒤섞여 기묘한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곳 — 그곳이 바로 꿈이다.


예지몽과 무속, 시스템의 정보 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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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지몽이나 태몽 같은 신비로운 현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시스템의 시간 축이 잠시 풀리면서 발생하는 '정보 누출'일지도 모른다. 아직 로드되지 않은 미래의 데이터 일부를, 연결이 불안정한 의식이 미리 감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꿈이 아닌 깨어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정보 누출을 불완전하게 읽어내는 이들이 바로 '무속인'이 아닐까. 꿈이 시스템과의 연결이 끊어진 '로그아웃' 상태라면, 무속적 영감은 시스템에 '불완전하게 접속'하여 데이터의 파편을 읽어내는 현상일 수 있다. 그들이 겪는 신체적 고통이나 '신병'이라 불리는 현상은, 어쩌면 과도한 데이터 스트림을 감당하지 못한 의식의 과부하 증상일지도 모른다.


깨어남의 허무함,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안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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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허무한 꿈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인이 되거나 복권에 당첨 되는 꿈이 절정에 달했을 때 깨어나는 꿈이다. 이것은 단순한 욕망의 좌절이 아니다. 꿈이라는 비인가된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감정의 강도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현실과의 동기화를 위해 시스템이 강제로 프로세스를 종료시키는 '안전장치'가 발동하는 것이다.


꿈속에서 시간 개념이 현실과 다르게 흐르는 것도 흥미롭다. 10초의 꿈속에서 우리는 하루, 혹은 일주일의 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만약 이 꿈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인류는 사실상 완전한 가상 시뮬레이션 세계를 구현하게 될 것이다. 영화 '인셉션'과 같은 상상이, 이미 우리 뇌 안에서는 매일 밤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수천 년과 수초, 그리고 존재의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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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구조를 생각할수록, 나는 더욱 섬뜩한 상상에 빠져든다. 만약 이 세계가 정말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에게 수천 년의 역사는 그것을 관찰하는 상위 존재에게는 단 몇 초의 연산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생이 달린 희로애락과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데이터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개미 한 마리를 장난삼아 죽였을 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결국 이 모든 생각은 존재론적 철학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심연을 너무 깊이 파고들었던 천재들은 대부분 말년에 정신적으로 붕괴했다. 어쩌면 인간의 사유에는 시스템이 걸어놓은 '깊이의 제한'이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시뮬레이션의 규칙에 순응하는 행위일 뿐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설정값' 안에서 살아간다. 어딘가에 더 좋은 설정값을 가진 나의 다른 버전이 존재할지라도, 지금의 나는 이 버전을 살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슬프고 억울하지만, 나의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거대한 시뮬레이션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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