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세계

by Yong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그 웃음 품앗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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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많은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때로는 특정 인플루언서의 팬으로서. 처음에는 모두가 평등한 참여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그곳은 몇몇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친목의 장으로 변질된다. 나는 그 변화를 짜증이 아닌 관찰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곳은 인간 심리의 가장 솔직한 민낯이 드러나는 작은 실험실이기 때문이다.


1. 웃음 품앗이와 보이지 않는 벽


오픈채팅방의 권력은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장악한다. 그들은 별 재미도 없는 드립을 던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 품앗이’를 해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작 대다수의 방관자들은 그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피로감만 느낀다. 그들은 가끔 찔리는지 “같이 노실 분들은 언제든 환영해요”라고 말하지만, 이미 견고하게 쌓아 올린 그들만의 역사와 맥락 속에 새로운 이가 끼어들 공간은 사실상 없다.

여기까지는 그저 흔한 커뮤니티의 생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주된 대화 소재는 ‘회사 욕’이다. 무능한 상사, 눈치 없는 동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자신은 윗선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직원이라는 확인 불가능한 자기 PR을 덧붙인다. 그런데 그 모든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간은 바로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퇴근 전까지, 즉 업무 시간이다. 주말에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진다. 그들에게 오픈채팅방은 진정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왜곡된 자아를 전시하는 익명의 무대일 뿐이다.

한번은 이런 말도 들었다. “금요일이라 게임하고 있는데, 집에 가서 하고 싶다.” 그는 자신을 회계 업무를 하는 능력자라고 소개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채팅을 그의 회사 오너가 봤다면, “응, 집에 가서 평생 게임이나 해.”라고 하지 않았을까.


2. 값싼 정의감과 비겁한 권력


그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먼 이야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정의감을 드러낸다. 국제 전쟁, 정치 이슈, 흉악 범죄 소식에 분노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한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자본가나 정치인을 향해 정의로운 자신을 투영하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지만, 정작 자신들이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익명의 공간에서 똑같이 권력을 쥐고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 정의감은 아무런 책임도, 위험도 따르지 않는 값싼 것이다. 정작 그들의 발언 속에는 외국인 매매혼에 대한 편견이나 ‘내 세금’을 운운하는 이기적인 피해의식이 아무렇지 않게 배어 나온다.

나는 그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한쪽을 열렬히 편들다가, 사실관계가 뒤집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굳게 닫아버리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다. 그것은 비겁함의 증거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대신, 침묵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언제나 옳은 편에 서 있는 나’라는 자기 이미지뿐이다.

이 모든 현상이 더욱 씁쓸한 이유는, 그들이 이 공간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영향력으로 만든 공간에 무임승차하여,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모습은 거슬릴 수밖에 없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나서서 질서를 잡으려다 오히려 그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는 광경도 보았다. 결국 인플루언서는 고인물을 내치지 못하고, 정보방과 수다방을 분리하는 미봉책을 내놓곤 한다. 그렇게 커뮤니티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서서히 붕괴한다.


3. 관찰자의 자리에서


나는 이 모든 소란 속에서 방관자를 자처한다. 내가 끼어들어 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아마 집단적인 공격만 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관찰의 시간은 내게 인간 심리를 얕게나마 들여다보는 기묘한 재미를 준다. 오픈채팅방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권력의 형성, 친목의 배타성, 정의의 위선, 그리고 책임 없는 발언이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지를 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단지 ‘수다’일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본다. 익명의 탈을 쓰고 가장 솔직한 권력욕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놀이터. 그곳에서 나는 오늘도 인간 군상의 민낯을 조용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짜증은 이미 오래전에 관찰의 재미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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