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별 스티커

우리의 처음이자 끝

by 서화

흰 색의 종이,

어딜봐도 텅 비어있는 백색의 대지.

어느날 아무것도 없던 종이 위에 초록빛 별 스티커가 하나 붙었어. 그 스티커 하나가 공허하던 내 삶을

뒤바꾼 시작점이었지


너는 매일 종이에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어.

어떤 날엔 푸른 파도 스티커, 어떤 날엔 노란빛의 해

스티커, 또 어떤 날엔 핑크빛의 하트 스티커를 붙여줬지. 너와 함께 하는 날이 늘어날 수록, 종이에 공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스티커가 빼곡해져갔어.

너가 내 삶을 다채롭게 바꿔놓은 거야.


그런데 있잖아. 갑자기 여백 하나 없던 종이에 하얀

부분이 생겼더라. 나도 모르는 새에 스티커가 하나

떼어져있었어. 그걸 시작으로 너는 천천히 종이 위

스티커들을 떼어갔어. 어느날엔 1개, 그 다음날에는

두 개.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떼어가는 손길이 거침

없어졌어. 어쩔 땐 너무 거칠게 떼어간 나머지 종이

한 부분이 쭉 찢어졌어. 근데도 넌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더라. 종이는 점점 구겨지고 찢어지고,

원래 형태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너덜너덜해졌어.


구겨진 종이는 다시 필 수 없어.

찢어진 종이는 다시 붙을 수 없어.

까매진 종이는 다시 하얘질 수 없어.

이럴거면 처음부터 스티커를 붙이지 말지.

그냥 깨끗한 흰 종이로 남을 수 있게 냅두지.


너가 너무너무 미운데 모질게 화를 낼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어. 예쁜 스티커를 소중히 붙이던 너의 손, 입가에 잔뜩 번진 미소, 생기 넘치는 눈이 아직까지

생생하거든. 널 붙잡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그 장면이 자꾸 아른거려 그만 할 말을 삼켜내.


나는 그저 가만히 누워 눈을 감을 뿐이야.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어있던 때를 그리워할 뿐이야.

너가 미쳐 다 떼어가지 못한 반쪽짜리 초록빛 별

스티커를 손에 꼭 쥐고서 눈물을 흘릴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