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귀빈을 모시는 일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유를 물으니 딱히 합리적인 근거는 없고, 나를 보면 드는 막연한 느낌이라는 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 귀빈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는 지위가 높거나 소중한 손님이다. 비슷한 말로는 요인(要人)이라는 말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나 신분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이미 많은 귀빈들을 모셨다.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내 삶에서 마주친 절대적인 약자들이 내게는 귀빈이었다.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잘 굽히지 못하는 내가 거의 본능적으로 그들에게는 낮은 자세로
작은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보호들을 하고 싶어 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 연민이라는 감정에 예민해진 내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헌신하는 것이 훨씬 내 마음이 편해서였던 것 같다.
내면의 성장이나 영적인 진보가 개인적인 고통과 아픔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면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어리석고 무지한 상태로 살다가 죽어도 좋으니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누구에게나 운명적으로 생의 결핍은 찾아오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때로는
폭풍 같은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런 개인적인 고단한 시간들을 버티면서
항상 간절했던 것이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절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한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내 능력 안에서
도움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내가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그 단 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들은 폭풍 같은 시간을
견딘 사람들이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그다음에 찾아오는 평화와 감사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상황이 달라지기도 하고 형편이 달라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기도 했다.
영원한 즐거움과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고난과 불행도 없는 것이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 상처를 원한 적이 없으나
굳이 찾아온 고통의 시간들은 내 영혼을 발효시켜 연민에 눈을 뜨게 했고, 그런 인연으로 나는
많은 귀빈들을 모셨고, 그들이 마침내는 시련을
견디어내고 자신만의 평안 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행복도 느껴 보았다.
내 인생의 VIP들을 돌아본다.
그들이 귀빈들이라는 내 믿음이 맞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귀빈을 모시는 일이 잘 맞는 사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