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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웃긴 사건

by 자유인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침마다 자동차로 20킬로를 달려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까지 등교를 시키던 시절이었다.

한 동네에 사는 야구부 선배 H도 동행이었다.

어느 날 아침,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이미 지각의 데드라인에 가까운 상황에서

H에게 전화를 했더니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아들과 H, 두 녀석 모두에게 열이 받은 나는 주차장에서 차를 주상으로 이동시키면서

H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출발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출입구의 현관 앞에는 예상대로 익숙한 교복을 입은 빡빡머리(운동부의 상징)가 한 명뿐이었다. 마음 독하게 먹고 H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하나만 태우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앞으로도 전화기를 꺼놓은 날은

H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출발하겠다고

화난 상태로 중얼거렸다.


도시 고속도로 진입로를 눈앞에 두고

뒷좌석에서 몹시 난처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어머니, 저 지형이 아니고 H입니다.”

맙소사!

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H가 현관 앞에 먼저 도착했고

나는 H를 아들로 착각하고 간발의 차이로

하나만 태우고 하나는 버리고 출발한 것이었다.


유턴 지점에서 급히 차를 돌리면서 H에게

핸드폰은 왜 꺼져 있었냐고 했더니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을 깜빡했다고 했다.

“ 아이고 이놈아,

네가 지형이 아니라고 빨리 말해야지.

도시 고속도로 진입로로 들어갔으면

돌아갈 방법도 없었잖아.”

했더니 녀석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어머니께서 계속 혼자 말씀하셔서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감정이 휘발되면서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터졌다.

H도 그제야 참았던 웃음보를 터뜨렸다.

한바탕 웃고 나니 지각이고 머고

이미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아파트로 돌아와 아들을 태우니

어리둥절해진 녀석이 자기는 놔두고

둘이서 어디 갔다 오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어머니는 그렇게 정신도 없고

눈썰미도 없냐고 녀석이 핀잔을 준다.

야, 이놈들아 하나는 안 일어나고

하나는 핸드폰이 꺼져 있는데 지각을 목전에 두고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냐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야구부에 그 사건의 소문이 퍼지는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H의 아침 모험담에 야구부 빡빡머리들이

신나서 지형이 어머니가 또 한 건 하셨다고 참새들처럼 모여서 한 마디씩 했다면서,

아들은 도대체 부끄러움은

왜 늘 자기의 몫이어야 하냐고 투덜거렸다.


네가 소문난 개구쟁이여서

내가 매년 담임 선생님들께 불려 가서

무릎 팍이 다 닳도록 꿇은 게 얼마인데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서로 퉁 치자고 했다.

어리버리한 엄마와 까칠한 아들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일들조차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가끔씩 아들에게 한 번,

엄마가 없는 H에게 또 한 번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던

중학교 그 시절의 등 하교 동행이

내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는 것을

녀셕들은 모르겠지.




이 녀석들아,


너희들 태워 다니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걸로 충분해.


사랑한다,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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