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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부부의 세계

by 자유인

쉰 살을 목전에 두고

갱년기 장애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평소에는 허기가 지거나 분노 조절이 안될 때만 인격이 바뀌는 편이었는데,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그 손님이 방문한 뒤로는 감정의 기복을 반복하고 해괴한 뒤 끝을 부리는 낯선 나를 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듯한 남편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2학년인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혼하고 싶다고 한마디 던졌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자기는 상관없고 괜찮으니 자기 때문에 참지 말고 이혼하고 싶으면 지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위장병이 나서 몇 달을 고생하다가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날이라

몹시 기분이 상해버린 나는

남편을 맹렬하게 비난했고, 놀란 남편이 농담이었다고 급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나는

잔인한 말들로 그를 물어뜯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들이

내 마음에 더욱 불을 지르는 말을 했다.

“아버지, 저런 사람이랑 왜 결혼했어요?

아버지는 사랑한 죄라도 있지,

나는 무슨 죄냐 구요?”

하고 볼멘소리를 하니


“야 이놈아, 너는 장가라도 가지,

나는 계속 같이 살아야 돼.”

하고 남편이 싼 티 나는 진심을 쏟아 냈다.


“지랄들 한다.

부러우면 당신도 장가 한 번 더 보내 줄 테니까 가서 나한테 했던 실수들 다른 여자한테는 반복하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둘 다 나가.

나가서 너네 둘이서 한 번 살아봐, 행복한지.

그리고 당신, 첫 사랑하고 결혼한 게 억울해서 다음 생에는 결혼 안 하고 실컷 연애하고 싶다고 했지?

그 여자가 그 여자야, 그 남자가 그 남자이듯이.

남자들한테는 새로운 여자가 좋은 여자라고 했지?

여자들도 마찬가지야, 이것들아.

우리도 낯선 남자가 좋거든?

세상에 좋은 여자, 나쁜 여자가 따로 어디 있어? 장단점이 다를 뿐이고 개성이 다를 뿐이지.

그리고 아들아, 너도 나중에 장가가서

네 와이프에게 엄마한테 하듯이 배려 없게 하면 바로 반품 처리되는 거 뼈에 새겨 둬.

가족의 두 얼굴 덕분에 나는 이번 생에 성불하고 해탈하기는 힘들 거 같네.

육갑들 떨지 말고 이번 주안에

둘 다 내 집에서 나가주면 좋겠어.”




똘끼 충만한 날의 자유는

그렇게 통찰과 자기 성찰을 중시하던

내 마음공부의 진도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고, 나는 술에 취한 채로 친구들의 단톡 방에

상황을 알리는 비장함을 보였다.

카톡을 본 친구가 갑자기 아저씨가 왜 이혼 얘기를 꺼내냐고 해서, 예전에 너도 아저씨가 왜 계속 참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리고 이 집은 남편이 노예계약을 했냐고

농담을 한 다른 사람을 떠올리며,

서로 참고 견딘 분야가 달랐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하는 그런 오해와 편견이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이후로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남편이 보기 싫어 이사는 언제 나갈 거냐며 채근했다.

참다못한 남편이 어느 날 이번 주말에 나가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늘 상대가 매달리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남편과 아들이 없는 빈 집과

해가 지고 난 뒤 돌아올 가족이 없는 일상을

눈앞에 그리며 자존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집행유예 선고도 아니고 무슨 2년이나 유예기간을 정하고 그래?

살려면 계속 같이 살든지,

떠나려면 당장 떠나든지 알아서 선택해.”

모양 빠지면 끝인데

나이가 드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모양 빠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인 것 같다.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당신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펴 주는 남편이

내심 고마웠지만 멜랑꼴리 한 마무리가

촌스러운 것 같아 살짝 도도하게

“우리의 시작은 대학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갑자기 나한테

사랑해도 되겠냐고 했고, 내가 황당했지만

무안 주는 게 부담스러워서 기회는 줄 테니

한번 노력해 보라고 답했던 거야.

그런데 긴 세월을 함께 하고 나서 하필이면

아픈 사람 병원에 동행한 날

재미도 없는 농담으로 이혼을 얘기해?

끗 발이 개 끗 발이지?”

했더니 싱겁게 웃으며 꼭 안아준다.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긴 시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는

나의 거울이라는 것이 평소의 내 신념이었다. 적당히 철없어도 되도록 한 살 아래의 남편을 과잉보호한 무서운 누나의 비애가 나의 카르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무상(無常) 하므로 무착(無着) 하라는 것이 아프게 반복한 깨달음 이건만,

그 말조차 내 마음의 쉼표가 되어 주지 못할 때, 삶은 원래 구차한 것이라고 했던

지인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중년 부부의 사랑과 이별과 홀로서기를

섬세하게 그린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선풍적인 인기를 기록했다.

여의사도 영화감독 남편도 회장의 딸도 아닌 보통의 존재인 우리들의 이야기인

서민 부부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넘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무상하므로 무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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