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가장으로 20대의 초반을 보내고
20대의 중반에 늦은 입학을 하고
이듬해에 법대로 전과를 했다.
늦깎이 입학생이나
다른 학교에서 편입을 해오거나 다른 학과에서
전과를 해온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주간부 소속이었지만
야간 수업을 주로 듣고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같은 과의 야간부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해서
활기도 넘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동아대의 의대와 법대가 대신동의
같은 캠퍼스에 있었고 한 도서관을 같이 써서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
원하는 자리에 전날 밤에 책과 가방을 걸어 두는 등
온갖 편법이 동원되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모든 물건을 치운다는 공지가 미리 붙여지고
경비 아저씨들이 야간작업을 하곤 했다.
내가 전과를 해서 캠퍼스를 옮기는 바람에
나의 도서관 자리 담당이던 호돌이(남편의 애칭)의
업무를 T와 번갈아 가며 하게 되었다.
T는 다른 지방 출신이었는데
부산에 있는 법대를 오기 위해 안 해본 알바가
없다고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학교 가까이에서 자취를 했으므로
새벽 일찍 학교에 오는 일에 유리했고
우리는 교대로 자리를 잡아주며 시험기간에는
가끔 정리 노트도 공유했다.
대리 출석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여학생들과는 그 영역의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다.
전과를 하고 6개월쯤 지나서 캠퍼스와 대신 공원이
단풍과 낙엽으로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어느 날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조각 같은 얼굴에
모범생인 H가 캔커피를 전해주며
“누나, 우리 과 퀸카인 거 아시죠?
그런데 남자 친구 있으신 거 알고 있고요,
저 이상한 놈은 아닙니다.”
하고 수줍게 웃었다.
평소에 워낙 조용하고 진지한 캐릭터였으므로
무안을 주기가 싫어서
“그렇게 말하면 이상한 놈으로 보이는 거 알지?
다른 데 가서는 이런 거 하지 마라
그런데 남들 결혼하는 나이에 학교 들어와서
곱게 자란 공주님들이나 듣는 전문용어를 들으니
흙수저 출신 성분을 부분적으로 극복한 거 같아서
기분은 좋네.
너는 누나랑 교내 식당에서 마주치면 밥 사준다.
대신에 일부러 시간 맞추기 없어.”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숨을 필요도 없죠?”
하며 착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며칠 뒤 약간 까불대는 스타일인 T가 뜨거운
자판기 커피를 건네주며 비슷한 대사를 했다.
“은진씨, 우리 과 퀸카인 거 아시쥬?”
그날 남자 친구인 호돌이랑 한판 싸우고
몹시 빈정이 상해 있는 데다 H의 자랑을 듣고
흉내를 내는 것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던 나는
매몰차게 쏘아 버렸다.
“너 75년생이라고 했지?
다른 애들은 다 누나라고 하는데
어디서 말끝마다 은진씨야?”
순간 장난꾸러기 T가 조금 어색해하며
“같은 학번끼리 나이 좀 많다고
왜 이렇게 야박하게 굴어요?
남자 친구랑 싸웠지? 괜히 나한테 화풀이야.”
하며 꼬리를 내렸다.
“눈치까지 없으면 가중처벌되는 거 알지?
너는 앞으로 누나라고도 하지 말고
이모라고 불러.”
“네, 이모. 그런데 있잖아요,
저는 누나 하나도 안 예뻐요.
누나더러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 이해도 안 되고요,
누나가 유머 감각이 있어서
웃겨서 조금 좋았거든요.
그리고 누나,
구강구조가 조금 돌출된 건 알고 계시죠?”
섭섭함에 영혼을 불태운 그의 유치한 보복 발언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입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내 얼굴을 측면으로 볼 일도 잘 없고
과도한 돌출도 아니어서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도서관 자리를
잡아 주지도 않았고 T는 나를 보면 큰소리로
“이모~~~”
하고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 무렵 법원 공무원인 J선배가
야간 수업시간에 계속 지각을 하며
내 옆자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뒷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그가 수업 중에
들어와서 쉽게 앉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시험기간에 부탁을 하면 정리 노트를
가끔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J선배를 계속 옆자리에 앉히면 내 남자 친구에게
일러바칠 거라며 T가 장난인 척 협박을 했다.
찌질하다며 시시하게 반응했지만
나는 혼자 앉기 시작했다.
고시 공부와 유학과 취업과 결혼으로
서로 바쁘게 살다가 아주 오랜만에
야간의 편입자들이 뭉쳐 맥주 한 잔을 했다.
누군가 연락을 해서 T도 참석을 했다.
T는 왜 이렇게 욕쟁이가 되었냐며 나를 놀렸다.
사는 게 아무것도 마음대로 안되어서 욕을
못했으면 나는 또라이가 되었을 거라고 설명했다.
헤어지면서 75년생 T가 물었다.
“이모, 왜 나는
누나를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아빠가 돈이 없는 놈은 용서해도
술을 못 먹는 놈은 용서하지 말라고 했거든.”
“네, 이모.
나한테 냉정하게 한 거 벌 받으면 좋겠어요.
다른 75년생한테 당하면 더 좋고.
연락 두절되지 말고
무슨 벌을 받았는지 얘기도 해주시고요.”
이후에 소식이 끊겼고 아주 긴 세월이 흘렀다.
75년생 T의 저주는 이루어졌다.
T야!
우리 아들이 야구를 하는 바람에
75년생 젊은 감독님을
하느님처럼 모신 적이 있는데
까칠하고 건방지다고
나를 미워하셔서 구박을 많이 받았어.
네가 들었으면 겁나게 좋아했을 텐데
전할 방법이 없구나.
그 시절 그 모습처럼 유쾌하게 잘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