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오해

by 자유인

백화점 의류 판매원 시절에 우리 매장의 손님들은

주로 중년층 여성 고객이었다.

20대 초반의 상냥하고 친절한 나는

중년의 여성 고객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은

“미스리”였다.


단골 고객들 중에는 모든 얘기를 다 들어주고

적절한 리 액션에 항상 스마일을 유지하는

미스 리의 광 팬들이 있었으니

그녀들의 간곡한(?) 권유로

방송 3사의 탤런트 공모에 응시한 나는

모든 방송사들의 예선 심사에 불합격하고 나서야

소위 말하는 주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쁜 게 아니고 고객들과 정이 들어

그녀들의 눈에 예뻐 보인 거구나.

슬슬 현실이 받아들여질 때쯤

우아하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낯선 고객을 응대하게 되었다.

고가의 옷을 여러 벌 고르고 계산을 마친 그녀는

부드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아가씨, 공부를 하세요.

아니 운명적으로 하게 될 거예요.

하고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어릴 적 즐겨보던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에나

나올 법한 예언 비슷한 분위기의 대사를 남긴

그녀가 사라진 뒤 나는 몹시 흥분되었다.

고졸 출신의 백화점 의류 판매 사원인

내가 하게 될 그 큰 일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고교시절 하기도 싫고 잘하지도 못했던

그 공부라는 놈이

처녀 가장이라는 중책에 떠밀려 고생 좀 하다 보니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얼마 후

기적처럼 어떤 과정을 거쳐 입시를 준비할

기회를 얻었고 D대를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의 교육학자인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저서인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여러 번 애독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나는

버스카글리아처럼 멋진 교육학자를 꿈꾸며

교육학과에 입학을 했었다.


그러나 한 학기를 수강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교육학의 현실에 실망했고,

예언자처럼 보인

그 고객의 “큰 인물” 발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름의 야망을 품고 법대로의 전과를 결심하고

전과 시험을 거쳐

이듬해인 2학년 때부터는

법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한편으로는

한 살 아래의 다른 학과 지인인

P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수줍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심 착하고 성실한 그를

도자기(도서관 자리 잡아주는 기둥서방) 쯤으로

활용하면서 근사한 신랑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돈으로 실컷 고생한 경험 때문에

결혼은 사치스러운 사랑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단 한 번뿐인 신분상승과 함께

가족에게도 도움이 될 비즈니스여야 한다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큐피드가 쏘아 올린 화살에

내 심장은 뜨겁게 반응했고,

나는 모든 포부와 야망을 망각한 채

P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에 결혼을 하고

사법시험 1차도 패스하지 못한 채

법대를 졸업한 뒤, 국제법에 관심이 있던 나는

나름의 방향 전환을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그때 그 고객이 말한 큰 인물은 고사하고

유학 중 임신한 아들의 큰 수술을 위해

급히 귀국한 후 어떤 커리어도 쌓지 못한 채

전업주부에 보통의 사람으로 살았다.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의 뒷바라지로 어느덧

중요한 예언자인 줄 알았던

중년의 그 고객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자

P는 내게 연애할 때보다 지금이 더 예쁘다고 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자

그는 나에게 점점 더 예뻐진다고 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난 요즘

그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라고 농담을 한다.


예전의 그 못 말리는 미스 리의 광 팬들과

남편 P와 같은 무조건 내편인 존재들의

열렬한 사랑과 묻지마 식의 응원으로 생긴

아름다운 오해가

내가 세상을 조금 더 수월하게 버틴 힘이었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


어느 고객의 예언대로

큰 인물이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체로 행복한 편이다.



행복은


성공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도 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