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특효약

by 자유인

평생 우울증을 반복해온 나는

가끔씩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도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고2 사춘기 때부터 인 것 같다.

그때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시절이었으나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고민들을 의논할 대상이 없었던

사춘기의 방황을 안으로만 삭히다

혼자 조용히 우울 증세를 반복한 것이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아버지는 무섭고 엄했으며

엄마는 늘 내가 보호해야 할 약자였고,

두 언니와 세 여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위로도 맞추고 아래로도 보살펴야 할

사각지대의 위치였던 것이다.




영국의 정치가였던 처칠이

평생 동안 앓은 우울증을 가리켜

“블랙 독”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예고없이 나타나고

사정없이 물어 뜯기는 기분이니까.

가벼운 감기처럼 견딜만한 때도 있지만

고열의 독감처럼 버티기 힘든 시간도 있어서

반복하다 보면 정말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심하면 자살충동이 들기도 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고

감사하게도 남편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노력들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기분전환이 되는 나의 모든 취미들이

블랙독의 방문 시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블랙독의 방문으로 병든 병아리처럼

시름시름 앓던 30대 중반의 어느 겨울이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의 넓은 골목에서

폐지 수레를 끄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저 고생을 하며

이 추운 겨울을 버티실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할아버지께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수레 뒤를 따르며 한참을 걸어도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 왜 울어?

어린 아들이 엄마가 우니까

이유도 모른 채 자기도 울먹이며 물었다.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에

얼마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잠시 놓고 할아버지께 뛰어갔다.

-할아버지,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

따뜻한 것도 사 드시구요.

혹시 오해는 하지 마세요.

얼마전에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그래요.

하고 말하며 얼마간의 돈을 손에 꼭 쥐어 드리자

할아버지는 때묻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시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갑자기 손을 놓아버려 놀란 어린 아들을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후에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극복을 위한 어떤 노력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나의 우울 증세는

절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배려했을 때

호전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을.




블랙독이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면

나는 기다려준다.

그 감정이 내게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다가 지나가도록.

하지만 시커멓고 커다란 불독같은 기세로

나를 찾아오면 나는 동네 한바퀴를 돌기 시작한다.


노점에 함께 앉아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께

사이 좋게 골고루 팔아드리고

음료수를 사서 경비실에도 들리고,

우연히 폐지 수레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시라며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어 드린다.

모두가 몇 장의 지폐에

너무도 즐거워하시고 활짝 웃으신다.




그렇게 ‘좋은 사람 놀이’를 한바탕하고 돌아와

길거리의 쇼핑으로 손에 들린 채소를 다듬어

요리를 하다 보면 내 안의 커다란 블랙독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강아지로 변해 있고

나는 한결 수월하게 그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


톨스토이의 명작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사랑이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음식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받는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혼이 아픈 인간에게

약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주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나는 수많은 경험으로

조금은 알고 있다.

그 특효약의 효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