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버전
올 가을에는 과일을 내손으로 사지 않고 지나갔다
홍시와 단감과 사과를 친구와 이웃들이 계속
나누어 주거나 우리 집 현관 앞에 두고 갔다
덕분에 냉장고 과일칸이 가을 내내
한 번도 비지 않았고
겨울 초입이 되어서야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손수 과일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현관문 앞에
알배추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앞집 언니가 주말 농장에서 가꾸신
수확물인 듯하여 감사의 문자를 보내니
고소한 배추쌈을 맛나게 해먹어보라고 권하셨다
한동안 배추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며칠 후
배는 고프고 입맛은 없어 야채칸을 열었는데
배추가 눈에 띄었다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건져내고
멸치액젓에 땡고추 송송 썰어 넣고
고춧가루에 통깨까지 솔솔 뿌려서 쌈을 싸 먹었다
아
밥도둑이 이런 거구나 감동하며
정말 행복한 한 끼를 즐겼다
남은 쌈은 야무지게 보관했다가
다음날의 점심 식사에도 또 감탄하며
맛나게 먹었다
앞집 언니가 손수 기른 배추라 더 맛나고
먹는 내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가 없다
지인들과 이웃들 때문에...
돈이 없다는 건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