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최고의 칭찬은 무안하게도 “살아있는 부처”라는 것이다. 한편 나에 대한 최악의 평가는 부끄럽게도 “이상하고 재수 없는 여자” 가 대표적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반면 모두가 오해이기도 하다. 그때그때의 인연이 그러할 때도 있었고,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투사할 때도 있었으며, 개인의 감정을 집단의 감정으로 몰고 간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거나 불안정할 때 나와 시절 인연이 닿은 사람도 있으니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면이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 버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평가에 예민했던 예전의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도 있었고 몹시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마흔의 중반을 넘기고 나서야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졌고, 그러자 실존하는 진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나 자신에게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칭찬에도 비난에도 덜 민감 해졌고 하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할 때까지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며,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여정의 도중에 평가되는 다양한 나는 진짜 내가 아니며 완성된 나도 아니며 탈피를 거듭하는 껍데기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면, 나는 그가 자신과 세상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과 무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이유로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오답일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
내가 성장하고 있듯이 당신도 그렇겠다.
내가 존재 자체로 소중하듯이 당신도 그렇겠다.
이런 생각이 오고 가는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축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