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실패와
큰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 장애를 십자가처럼
인생의 무게로 지고 있던 지인은
버티다 힘들어지면 입원 치료를 받곤 했다.
그녀가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에
좋아하는 빵을 사들고 병문안을 갔다.
널찍한 4인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막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몹시 반가워했다.
우리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맞은편 침대의 젊은 아기 엄마가
의료진이 동참한 가족과의 면담 중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병실로 뛰쳐 와 버린 것이다.
그녀는 몹시 흥분하고 낙심한 상태로
한참을 서럽게 울다가 나에게 불쑥
“ 미안해요,
여기 이상한 사람들 많아서 문병 오기 힘들죠?”
하고 말했다.
나는 내 진심을 얘기했다.
“세상에 안 이상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이상하죠.
그런데 이상한 분야가 조금씩 다를 뿐이고
자기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 아무도 내 편을 안 들어줘요.
나는 그게 너무 억울해요.”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내편 들어주면 되잖아요.
아무도 내 맘 몰라주고 외롭고 힘들 때,
나는 나 하나라도 내편이 되어 주자는 생각을 해요.
남에게 기대는 대신 내가 내편이 되어 주자고
마음먹으니까 신기하게도
나 자신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내가 나를 좋아하니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생기더라고요.”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되는 듯이 보이다가
잠시 후 가족들이 살피러 오자 다시 예민해졌다.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분에게
이런저런 불평을 쏟아 놓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 어머니가 잠시 나가신 후
나는 그녀에게 내 친구 애기를 들려주었다.
“ 내 친구는 엄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자기 결혼식과 출산 때에
친정엄마가 와주지 못한 게
가슴에 한으로 남았다고 해요.
우리는 결혼식과 출산에
엄마가 보러 와주신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니까
나도 우리 엄마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남편하고 이혼하는 게 낫겠어요.”
하며 그녀는 다시 울먹였다.
“ 나도 남편의 단점에 집중할 때는
수도 없이 이혼이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좋은 남자나 나쁜 남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의 장단점이 다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서,
내 남편의 장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사이가 좋아졌어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서로 공명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진 모습으로
가족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고
나는 그녀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나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나도 수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지긋지긋하게 우울증 반복하고
여러 번 왕따도 당하고 자존감이 약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어요.
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렇게는
도저히 살아낼 수가 없겠다 싶으니까 신기하게도 치유와 삶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 때문인지
아니면 자식 때문인지
통찰 비슷한 지혜가 생기는 것 같았어요.
한번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해 보자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는 매일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고,
그 마음이 습관이 되니까 신기하게도
삶의 조건은 바뀌지 않았지만,
조금씩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지고
좋은 친구들도 생기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남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내 안의 상처에 몰입해
우울증을 반복하는 대신,
나 자신과 타인과 세상의 아픔과 필요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예쁘지 않고
여러 군데 아프기 시작하고
경제적으로도 축소되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젊고 아름답고 건강할 때보다 훨씬 행복해요. “
그녀는 오랫동안 울다가 그친 아이처럼
편안해진 모습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안아봐도 되냐고 물어본 뒤
꼭 안아서 등을 토닥토닥 쓸어 주었다.
지인 옆의 침상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던
연세 지긋한 부인이 나에게 웃어 보이며
한마디 하셨다.
“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보세요.
이름이 뭔가요?
내가 그 책 꼭 기다리고 있을게요”
“ 어머나 감사합니다.
내킬 때마다 조금씩 글을 써서 모으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책으로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인이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지인도 꼭 안아주고 나서
긴 복도를 걸어 나오다 돌아보니
젊은 그녀가 따라 나와 내 뒷모습을 보고 서있었다. 내가 팔을 크게 흔들어 보이자 그녀가 웃었다.
젊은 날의 아프고 아팠던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외롭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몰입해서
그 감정이 습관이 되면
서서히 무너져가는 경우가 있다
.
다행히
<모든 것에 감사해 보기>는
천천히 나를 치유하고
내 삶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어설픈 에고 뒤에 숨지 않고
아픈 세상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과 내 삶이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아파하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연민과 배려의 진심만 있다면,
치유의 에너지는 상처받은 타인을 위로하고
나와 세상을 진보시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