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저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 인생의 불행이나 비극을 소똥에 비유한 부분이 나온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분노와 좌절을 반복하면 소똥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겨 친구들까지 잃게 되고, 불평하는 대신 조금씩 극복해서 통찰이라는 열매가 열리면 주변인들과 행복하게 나눌 수 있다는 내용이다.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도 너무 불행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을 경계할 것을 작가가 딸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우연히 알게 된 A를 과잉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많이 불안정하고 정서적인 기복이 심했고 자신의 고통을 반복해서 토로했으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충동에 밤낮없이 불쑥불쑥 연락이 오기도 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그녀를 과잉보호한 것은 그녀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아팠던 지난날의 나를 보듬어 준 시절 인연들과 세상에 대한 보은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를 방문한다는 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신념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힘든 일이 생겨 낙심한 내가 예전처럼 긴 시간의 응석을 다 받아주지 못하자, 그녀는 큰 분노를 드러냈고, 나는 감당이 안되어 마음을 닫게 되어 버렸다.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무례함이 불쾌하거나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응대를 내 능력 밖의 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연민이라는 감정에 유난히 약한 내가 아직 힘들어하는 A를 보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 노력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녀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만 반복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날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영성이나 마음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데 갑자기 상황이 괜찮아 지지도 않고, 어떤 변화도 주지 않는데 치유와 행운이 그냥 따라오지도 않는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시도하고 모처럼 실천한 것이 습관이 되도록 인내해야 치유도 행운도 따라오며, 그에 동반되는 크고 작은 통찰들은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어떤 기적이든 스스로 노력해야 하늘도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