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 '개연성'이란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데 인과관계가 맞지 않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개연성이 없다는 말을 사용한다.
"이런 일이 가능해? 개연성이 너무 없잖아"
사실 세상엔 생각보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에 보면 엉덩이에 돼지꼬리가 달린 인물이 나오는데, 그 책이 발간되고 마르케스한테 실제로 돼지꼬리 달린 사람들의 연락이 왔었다. 세상에 내가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연성이나 가능성이라는 단어보다 '잠재성'이라는 단어가 이런 상황을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항상 잠재된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씨앗이 열매를 맺지만 그 열매 안에는 씨앗이 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지 않은 잠재성은 항상 실현 가능성을 내포해두고 있다.
예를 들어, 출판업을 하는 50대 제임스는 어느 날 공고에서 본 노래 오디션에 참가한다.
이것은 가능성 (Possibility)이다. 제임스는 변호사로 직업을 바꿀 수도 있고, 출판업을 그만둘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일어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개연성이 없다고 말한다. 내재되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출판업을 하는 50대 제임스는 매일 수천단어를 조립하고 손 보지만 현실에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동료를 만나도 재미없는 시간을 축낼 뿐이다. 어릴 적 자신의 비밀을 유일하게 털어놓은 친구 올리버를 그리워하는데, 전화번호를 잃어버려 연락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때, 둘이 함께 들었던 'BEN'이 들려와 발 길을 돌리니 한 장 남은 노래 오디션 광고가 전봇대에 붙어 펄럭인다.
이것은 잠재성 (potential)이다. 제임스의 내면 안에 쌓인 감정과 기억들이 터져 나오며 원인이 된다. 잠재성으로 본다면 개연성이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리얼리티는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 울다가 웃는 것. 웃다가 찌르는 것, 찌르다가 쓰다듬는 것, 쓰다듬다가 뛰쳐나가버리는 것. 손톱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잘린 손가락이 도망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