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명문 학교에 들어가 엘리트로 살아가던 한 학생은 어느 날 교실에서 자살 기도를 시도했다. 면도칼로 가슴을 그어 죽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후에도 여러 번 공격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해하려고 했다. 동성애 성향이 있었던 이 학생은 사회가 만든 정상의 범위에서 자꾸 어긋나려는 자신을 외톨이라 느꼈고, 수치심과 후회로 가득 찬 히스테리 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환자'로써 그 안에서 정신병원과 의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이 학생은 사회가 '광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광기란 단어 근저엔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책을 썼고, 정신병원에 인턴 '의사'로써 일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셀 푸코다. 정신병자와 정신과 학자,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한 명의 자아에게 우리는 비정상과 정상 무엇으로 그를 지칭해야 할까?
미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자체도 하나의 광기인지도 모른다. - 파스칼
<OMG>의 뮤비의 첫 시작은 정신병동에 앉아있는 하니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하니를 주인공으로 뮤비가 진행되는 부분이 꽤 있는데, 여기서 하니가 하는 말들은 곧 뉴진스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남들이 이야기하는 나와 진짜 내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여타 평범한 학생에서 갑자기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모두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었을 때 뉴진스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들이 초반에 읊어진다. 혼란스러웠지만 해답을 찾았다고 하는 하니는 "사실 저는 아이폰이었습니다."라는 생뚱맞은 대답을 뱉는다.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이 부르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갈 거예요.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고 당신을 위해 말하고 당신을 위해 노래할 거예요. 당신이 제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머릿속은 항상 이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 제가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자 "네가 시리라는 얘기야?" 민지가 묻는다. 하니는 기계화된 목소리로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들이 겹쳐지면 자존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자존감의 상실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나를 드러내는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대중이라는 형체 없는 거대한 관념에 나를 맞추며 시리라는 '기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타인들이 원하는 걸 말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노래할 거예요'라는 대답은 사회적 압박을 받는 한 소녀가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라고 선언하는 슬픈 일이다.
정신병동에 앉아 있는 5명의 뉴진스는 각자 자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세상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광기로 치부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뮤직비디오에서 확실히 보여주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소격효과'라고도 불리는 거리두기 방식을 자주 차용하는데, 거리 두기는 말 그대로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을 자꾸 영상 밖으로 밀어내 '객관화' 하도록 만든다. 나의 '이성'으로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밀려나보니까 이성이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들 투성임을 보여준다. 민지는 자신이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영상에서도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관람자들은 민지가 진짜 환자가 아니라 의사인 건가? 싶다가도 병원 차에 다른 멤버들과 끌려가는 민지를 보면 뭐야? 민지도 이상한 사람인가? 뭐가 맞는 거야?라는 혼란에 빠진다. 민지가 의사인지 환자인지? 의사 선생님은 의사인지 환자인지? 지금 이 상황은 사실인지 뮤직비디오 촬영장인지? 무엇이 정답인지, 정답이란 과연 있긴 한 지 알 수도 없고 단 하나의 사실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민지가 환자인 지 의사인 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부분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머릿속 세상에서 나의 의지와 표상으로써 그려지고 있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민지의 미스터리가 끝나면 혜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데, 혜인의 머릿속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성냥팔이소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동화로 묘사된다. 동화란 이성을 벗어나 순수를 느끼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은데, 멤버 중 가장 천진난만한 막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첫 정산에 키링 9만 원 치를 샀다는 그녀... so cute) 혜인은 각각의 동화 속 주인공이며, 모든 동화는 혼재되어 있다. 네 편의 동화는 따로 존재하지만 혜인의 머릿속엔 주관적으로 섞여있다. 혜인이 그리는 동화 속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혜인의 동화 속 상상을 구경한 뒤, 해린으로 넘어오는데 해린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고양이를 그려 보여준다. 컷 전환을 통해 마치 고양이가 된 해린을 바라보는 듯한 멤버들을 보여주는데 상상이 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가 그리는 정체성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OMG> 노래 속에 계속 반복되는 WHO IS HE?라는 질문. 노래 가사만 봤을 땐 사랑하는 HE를 지칭하거나 뉴진스가 냈던 곡에서 보여주듯 팬에게 전하는 말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가사와 함께 뮤직 비디오를 곱씹어보면 그는 24시간 내 옆에 있고 언제든 달려오고, 나는 절대로 그를 떠날 수 없기에 그는 살아있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다. 왜냐면 그는 내 시스템 속에 사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시스템 속에 사는 그는 곧 나의 시스템이고 내 전부를 뜻하는 GOD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대로 달라진다. 인생을 나락으로 끌고 가는 것도 구름 위에 천국으로 끌고 가는 것도 나에게 달려있다. 세상을 창조하고 그려나가는 자신이 GOD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자신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아니면 시스템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처음 하니가 말한 "저는 시리였습니다."라는 말에 반박하듯 다니엘이 외친다. "우리는 뉴진스라니까" 우리는 기계도 아니고 타인에게 주체성을 넘겨주는 존재가 아니야. 사람들은 다 각자의 세상에서 우리를 평가하지만 그것은 진짜도 진실도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누군가는 소녀들의 꿈이 이상하다고, 누군가는 망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기준 없는 세상의 잣대에 지쳐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스스로 깨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음악은 주류가 아니라서 식사도 없고 음료도 없지만 우리가 만든 디저트를 좋아하게 될 거야' 외쳤던 소녀들. 주류를 벗어난 길은 미스터리로 가득하지만 그 미스터리가 있기에 즐거운 상상력이 가능해진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 그 음악을 통해 뉴진스와 팬들이 행복한 시너지를 교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뉴진스가 앞으로 향해 달려가고 싶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자유롭고 편안하기에 늘 새로울 수 있는 뉴진스(NEW JEANS)를 꿈꾸기에.
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