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언가 Nov 08. 2022

젠(Zen)과 룰(Rule)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한 덕에 새벽 6시부터 일어나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젠(zen)을 보았다. 젠이란 선(禪)을 영어로 옮긴 뜻으로 조동종을 중국에서 배우고 계승하여 일본에 돌아와 선불교를 전파한 도겐 선사의 입송 때부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선불교에 관한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얼마 전부터 내가 낯선 땅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게 되면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고민에 잠겼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와 선불교가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묻겠지만 꽤나 깊은 역사가 있다. 1950-60년대 비트와 히피즘이 미국을 강하게 할퀴던 시절, 샌프란시스코는 대항과 반문화의 중심지였다. 머나먼 이국 땅 샌프란시스코에 마약과 향략을 쫓는 젊은이들에게 스즈키 순류 선사가 좌선(두 발을 꼬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는 수행법)을 권유하며 선불교가 뿌리내렸는데, 그 덕에 방황의 시기를 멈추고 명상에 들어간 젊은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스티브 잡스의 선불교 사랑은 대단했는데, 사업에 실패한 이후 불교에 귀의할 것을 신중하게 고민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현재 머무는 곳은 ‘쿠퍼티노’로, 조금만 걸으면 애플 본사가 바로 앞에 있는 동네이다. 애플 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본사는 우주선 모양의 원형 건축물이다. 본사를 세우는데 5조 원을 투자하고 회사 안에 숲을 조정할 정도라면 그 크기가 감이 오게 될까 모르겠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사옥 크기에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본사에서 20분만 자전거를 타고 외딴 골목으로 들어가면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그 조그마한 차고가 나온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지고, 대학교를 중퇴하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그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무엇이 Garage(차고)를 Infinite Loop(무한 루프)로 키웠을까?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주저 없이 본질로 접근하는 직관’ 그리고 ‘무(無)에 가까운 여백 디자인,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 일 것이다.

그의 직관을 깨닫게 한 가르침이 영화에서 나오는데 바로, 지관타좌(只管打坐)이다. 그 뜻은 ‘오직 앉을 뿐’으로 바른 자세로 앉아 평안과 고요를 느끼며 내 안의 불성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명료하게 떠오르는 자신의 직관을 느끼는 것이다. 큰 바닷속 물을 바라보고, 물 위에 떠오르는 달을 응시하는 것, 설사 구름이 달을 가려도 혹은 하늘에서 그 모습을 감추어도 달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 좌선을 통해 참나를 깨닫게 되는 선불교의 가르침이었다.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7개월을 보내고 돌아온 후 저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질 겁니다.” - 스티브 잡스
불교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이미 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그냥 냉장고에 있는 음식 먹듯이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라는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밭을 일구어 그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빈 밭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씨를 뿌리고 가꾸면 곡식이 자랍니다. 불교의 기쁨은 바로 밭을 가꾸는 기쁨입니다. 규칙이란 따스하고 친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므로 글자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이며, 규칙이 없는데 일부러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 스즈키 순류 



영화 속에선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림받고 쓰레기를 뒤지며 하루를 살다가 거리의 여자가 된 오린이 나온다. 오린은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자신의 아이가 병에 걸려 죽자 자살을 택하게 되지만, 도겐 선사의 진심 어린 눈물에 출가를 선택한다. 하지만 도겐 선사는 오린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좌선을 통해 깨닫기를 바란다. 몇 년이 흐른 후, 도겐 선사는 명을 다하기 직전 에조에게 오린의 출가를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스님이 된 오린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처럼 가난에 휩쓸려 있는 아이들에게 좌선을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다른 손 모양을 하자 “손은 그게 아니고 이렇게랍니다.”라고 알려준다. 그러자 아이는 “비가 오잖아요”라고 말하며 동글게 감싸 안은 손을 유지한다. 오린은 아이의 자세를 고치지 않고 오직 앉아 있도록 둔다. 이것이 아마 위에서 스즈키 순류 선사가 말한 따스하고 친절한 마음에서 나온 규칙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그 규칙이 깨지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一)에서 시작하나 시작함이 없는 하나(一)이다.  하나(一)에서 마치나 마침이 없는 하나(一)이다.
- 천부경


할 수 없다는 것은 오로지 나의 주관에서만 존재한다. 무한한 가능성은 이미 내 마음속에 보름달처럼 존재하고 있다. 구름에 가려졌다고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가만히 깊은 바닷속 물을 들여다보자.

작가의 이전글 진실과 거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