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밤 9시 50분이 넘었다.
10분 정도 있으면 혜정을 다시 만난다. 홍주는 주머니 속의 전기충격기와 바지 허리춤에 숨겨둔 장도리가 잘 있나 손으로 다시 한 번 만졌다. 장도리가 보이지 않게 상의로 덮고 위에 두꺼운 후드티까지 입었다. 홍주는 그 어느 때보다 초조했다. 혜정이 홍주를 어떻게 만나러 온다는지도 미스터리였다. 홍주는 분명 혜정과 같이 생긴 사람을 만난 적도, 같이 일해본 적도 없다. 어떻게 홍주의 집을 알고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했다.
지이잉
홍주의 핸드폰에 불빛이 들어왔다. 인스타그램 메시지였다. 홍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메시지를 눌렀다.
"10시 정각에 모실게요"
홍주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9시 58분이었다. 이제, 2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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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옆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시작이 잘못됐었다. 혜정은 홍주가 오면 홍주의 화가 풀릴 때까지 사과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다. 대체 엄마는 어떤 방식으로 시작했던 걸까. 어떻게 혜정의 친부랑 처음에 시작했던 걸까. 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도 안 해주고 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혜정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 잡생각을 하다보니 시간 체크를 잠시 잊었다. 혜정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10시 1분이었다. 혜정은 서둘러 옷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홍주를 생각했다.
5,4,3,2,1
여전히 조용했다. 혜정은 조심스럽게 닫혀 있는 옷장을 향해 물었다.
"저기...오..오셨나요?"
"...네.."
홍주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목소리를 들으니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혜정은 옷장으로 뛰어가 문을 열어주었다. 홍주가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나오셔도 돼요"
혜정이 손을 뻗었지만, 홍주는 손을 뿌리쳤다. 혜정은 몸을 틀어 홍주가 나올 수 있게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았다.
"여기 앉으세요. 다 말씀 드릴게요."
혜정이 침대를 통통 치면서 홍주에게 말했다. 홍주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혜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을 뜨니 또 처음 보는 옷장 안이었다. 옷장에서 나오니 저번에 봤던, 섬뜩한 장치의 방이었다. 여전히, 창문은 합판으로 가려져 있었고, 방문 앞에는 쇠창살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전등은 켜져 있었다. 홍주는 앉을 만한 곳을 찾았지만, 혜정이 가리킨 침대 말고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최대한 멀찍이 모서리 쪽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니까...오늘도 날 어떻게 불러낸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저 옷장 보이시죠?"
"...네"
홍주는 옷장을 바라보았다. 첫번째 왔을 때는 우당탕 굴러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한번 와봤다고, 제발로 걸어 내려왔다.
"이 옷장이 뭔데요?"
"그러니까..."
혜정이 말을 시작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옷장을 통해 원하는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는 거였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5까지 세면 그 사람이 옷장 속에 와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홍주는 실제로 본인이 그러고 혜정의 집까지 왔으니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좀 전에도 홍주는 가만히 있었는데 어느샌가 혜정의 집에 와 있었다.
"아...그러면 왜 나죠?"
"네?"
"그니까..왜 나를 불렀냐고요. 제 팬이라서요?"
"아...네..뭐.."
"내가 왜 좋은데요? 나 요즘 방송도 거의 안 하는데."
"아.."
"네?"
"그..그러니까 저랑 이니셜이 같잖아요! 그..그래서 좋아해요!"
"하...여간 싸이코가 아니시네요"
"아..네....좀..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날 일은.."
혜정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가 들어도 싸이코 같은 답변이지 싶었다. 그렇지만, 그냥 이 주변에 사는 것 같아서 불렀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혜정의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사항이다.
"혜정아, 그리고 이 옷장을 네가 언젠가 쓰게 되면 이건 꼭 기억해."
"뭔데?"
"이 옷장은 반경 3km 안의 사람만 불러낼 수 있어. 그러니까 그 이상 거리에 사는 사람을 불러내고 싶으면, 이 옷장을 가지고 네가 그쪽으로 이사를 가든가 하는 수밖에 없어."
"와..성가시다. 참"
"새겨들어. 이 옷장은 보고싶은 사람을 순간이동으로 불러낼 수 있는 만큼, 노리는 사람이 많아. 엄마의 할머니도 이걸 지켜내느라 무지 힘드셨다고 들었어."
"...응"
"엄마가 왜 창문이랑 방문을 가려버리는지 아니?"
"싸이코라서?"
"후후..분명 그런 면도 있을 거야 내가 생각해도. 이런 생활을 하는 내가 정상은 아니지.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창문을 가려야 바깥을 보고 여기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고, 방문을 봉쇄해야 바깥으로 문열고 나가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거 아냐. 그래서 그래."
"나도 이거 쓸 수 있어?"
"응. 내가 죽으면"
"왜?"
"글쎄. 옷장은 한 명만 주인으로 인식해. 주인이었던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아야 새로운 주인을 인식해"
"새로운 주인은 어떻게 되는데?"
"그냥.. 원래 주인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시점에서 가장 먼저 옷장에게 일을 시킨 사람. 그 사람이 새 주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