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뭐 하세요?"
후배 손 형사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이 형사는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무언가 골몰할 때 펜 뒤를 깨무는 건 이 형사의 오랜 습관이었다.
"아오 깜짝이야. 야, 놀래키지 좀 마. 나 심장 약한 남자야"
"아니, 뭔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신 거예요? 불러도 듣지도 못 하고"
"아니....그냥 생각 중이었어"
"선배..설마..."
손 형사는 주변을 살펴 보았다. 팀장은 간부 회의에 참석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손 형사가 이 형사 가까이 다가갔다.
"선배 설마...아직도 임동식 사건 생각하세요?"
"아니야"
"에이...맞죠?"
".....아니 그게....진짜 이상하지 않냐. 이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종결된 거 계속 붙잡고 계시다 팀장님한테 또 한소리 들으실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넌 모르는 척 하고 있어. 다른 사건 조사에 지장만 안 가면 될 것 아냐."
"아오, 선배 고집 누가 말려. 안 들키게 조심하세요. 전 퇴근합니다. 오늘도 안 들어가면 마누라한테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 잘 가라. 외로운 홀아비는 혼자서 생각 좀 더 하다 갈란다"
이 형사는 후배의 모습이 사라지는 걸 확인 후 책상 맨 밑 서랍을 열었다. 임동식과 관련한 조사 기록을 몰래 보관해 두었다. 벌써 몇 달째 이 형사는 홀로 이 사건에 몰두하고 있었다. 종결된지 한참 된 사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계속 생각나던 사건이었다. 이 형사는 고민 끝에 몇 달 전 몰래 보관실에 들어가 사건 기록을 빼왔다.
'임동식이 그날 김수연의 집에 들어갔다. 화물 기사도 대동했던 것 보면 분명 무언가 옮길 걸 가지고 내려올 생각이었을 거야. 주차장에서 잠시 대기하라고 했던 걸 보면, 혼자 옮길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것이거나 집 주인과 이야기 후 다시 부를 셈이었을 테지. 그런데 화물 기사가 아무리 기다려도 임동식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임동식은 임동식의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김수연과 함께. 김수연과 딸 김혜정은 그날 임동식이 집에 올라가고 20분 후 집에 올라갔다. 김혜정은 임동식을 봤다고 진술했고, 실제로 시간상 김수연과 임동식 이 두 사람이 만났을 가능성은 매우 커. 임동식이 내려온 흔적이 없으니까. 김혜정은 그 후 두 사람이 나갔다고 했는데, 나간 흔적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두 사람이 임동식의 집으로 간 흔적도 없지. 두 집 주변의 CCTV에서 두 사람이 찍힌 흔적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둘은 분명히 김수연의 집을 나갔으니까, 임동식의 집에서 발견됐겠지. 그 딸은 무슨 관계인 거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매번 막혔다. 그날의 사건 기록을 다시금 살펴보며 정리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흔적도 없이 자리를 옮긴 게 수상했다.
임동식 유족들이 더 이상 고인을 욕보이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이 형사는 계속 무언가 찝찝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사실, 이 형사는 그날 유일하게 두 사람의 사건 추정 시각까지 둘을 접촉했던 김수연의 딸 김혜정을 요즘 주시하고 있었다. 며칠 전 오프날에는 몰래 김혜정의 회사 근처와 퇴근길을 미행하며 그녀의 동선을 체크하기도 했다. 회사에 갔다가 퇴근하고, 그 후 잠깐 백화점에 들렀다 집에 가는 아주 평범한 동선이었다. 김혜정은 집에 들어간 후 더 이상 밖에 나오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마주쳤던 그녀의 집. 그녀의 집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하지만 영장 없이 직감 만으로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형사는 매년 김수연의 기일마다 딸 김혜정에게 문자도 보냈었다. 얼마 전 2주기에도 보냈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늘 어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2주기네요. 수사는 끝났지만 언제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자 메시지였다. 언제나 그랬듯 혜정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 형사는 그녀에게 자신이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묘하리 만큼 거슬리는 사건이었다.
한편, 이 형사는 누구보다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임동식의 처 오상은도 미심쩍었다. 그녀는 확실히 임동식의 죽음으로 큰 덕을 본 인물이었다. 비단, 보험금 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임동식과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언론사 여기저기에 팔며 동정 여론을 사더니 책도 쓰고, 유튜버로도 활동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여러 쇼 프로그램에서 패널로도 활동했다. 그로 인한 수익은 꽤 될 것으로 예상됐다. 모두 임동식이 죽으면서 발생한 수익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에겐 임동식 사망 추정 시각 알리바이가 있었다. 지인들과의 골프 모임에 있었던 것이다. 이 형사는 알음알음으로 그 모임에 오상은의 내연남 변호사 김동훈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둘은 꽤 오래된 관계였다. 내연 관계를 유지해오던 부인이 내연 관계에 있던 남편과 그의 여자를 해했다? 충분히 가능한 스토리였다.
이 형사는 펜 뒤를 잘근잘근 씹으며 사건 기록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임동식과 김수연이 발견된 임동식의 방 안 사진 여러 장이 클립으로 고정돼 있었다. 이 형사는 사진을 들었다. 두 사람이 마치 한몸처럼 안고 있었다. 김수연은 옆구리에, 임동식은 머리 뒤쪽에 치명상을 입었다. 임동식의 어지러운 방 안도 보였다. 임동식은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성격인 듯 했다. 방 안에 비닐째, 혹은 택을 뜯지도 않은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꽤나 값이 나가보이는 물건들이었다.
'그래. 임동식이 최근까지도 드라마 출연을 꾸준히 했으니 벌이는 괜찮았겠지. 쇼핑중독이었던 건가'
이 형사는 다음 사진을 보았다. 임동식과 김수연의 모습이 항공샷으로 찍혀 방 안 전경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물건이 참 많네, 많아. 많아도 너무 많은 느낌인데.'
명품 옷, 명품 가방, 고가의 가전제품 등등. 중년 남성의 방에 있기에는 어색해 보이는 물건들도 섞여 있었다. 이 형사는 사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왜인지 이 사건은 임동식과 김수연의 죽음 말고도 다른 사건이 엮여 있는 것 같다는 형사의 촉이 발동했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흐아암.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아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오랜만에 집에 가서 샤워라도 해야겠다'
이 형사는 펼쳐져 있던 기록들을 정리해 다시 책상의 맨 밑 서랍에 넣어두고 열쇠로 잠갔다. 무언가 수사에 진전이 있기 전까지는 당분간 팀에 비밀로 할 참이었다. 이 형사는 뒤쪽이 너덜너덜해진 펜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 서둘러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