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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교 학부모 상담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김 여사는 오늘 아침부터 바빴다.

학교에서 조슈아의 상담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국제학교인 만큼 조슈아의 담임 선생님은 외국인이고, 당연히 상담도 영어로 진행된다.

나름, 대치동 8학군 출신의 서울 유명 여대를 졸업한 조슈아 맘 김 여사였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 으레 그랬듯 그녀는 스피킹이 약했다.


김 여사는 한때 자신이 취업하기 위해 토익스피킹이랑 오픽을 죽어라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영어, 아오…진짜 죽어서나 날 안 괴롭히려나.’


김 여사의 머릿속에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강남역에 있던 어학원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까지 만들어 열심히 스피킹 공부를 하던 그 시절.


김 여사는 열심히 시험에 나올 만한 문장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 결과, 만점에 가깝게 스피킹 8급을 딸 수 있었다.


‘내가 이래봬도 머리가 나쁘진 않지. 아니, 꽤 좋은 편이야! 암!‘


하지만…그렇게 죽어라 공부해서 토익스피킹을 잘 따놓으면 뭐 하나.

조슈아의 선생님에게 뭐라고 영어로 물어야 하나 걱정이 앞서는 게 지금의 조슈아 맘 미쎄쓰 킴, 김 여사의 현실이었다.

김 여사는 어젯밤 한글로 질문을 쓴 뒤 파파고 어플로 번역한 영어 문장 몇 개를 메모어플에 옮겨놨다.

메모어플 속 문장들을 입으로 중얼중얼대며 다이슨 에어랩으로 머리의 컬을 살렸다.


“Is there anything that I can support him at home?”


김 여사는 거울을 보며 웅얼웅얼 한껏 발음을 굴려 보았다. 막상 조슈아의 담임을 만나면 이 문장이 지금처럼 자신있게 안 나올테지만…

옷방으로 간 김 여사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을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음…적당히 포멀하면서도 적당히 무겁지 않고, 화사한 분위기…‘

옷은 아무리 사도 사도 입을 게 없는 게 만고의 진리다. 오늘도 가득찬 옷장을 째려보지만 맘에 드는 옷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하, 이번 방학 때 서울 올라가면 백화점 좀 가야지. 옷이 너무 없네.‘

결국, 또 까만 자켓에 까만 슬랙스다.



조슈아가 이 학교에 다닌지도 벌써 3년째니까 김 여사는 최소 3번 이상은 저 옷들을 입었지 싶었다.

매번 방학 때 서울에 올라가서 백화점에 가도 학교 갈 때 입을 만한 얌전한 옷을 안 사고, 그 때의 기분에 따라충동적으로 사다보니 정작 학교 갈 때 입을 옷은 항상 없었다.


김 여사는 벌써 n번째 착용했던 그 옷을 또 꺼내며 거기에 맞춰서 들고 갈 샤넬 가방을 더스트백에서 고이 꺼냈다. 남편과 결혼할 때 예물로 받은 그녀의 거의 유일한 샤넬백이었다.


’그 때 안 샀으면 큰일날 뻔 했지. 지금은 어우…‘

그때도 비쌌지만, 지금은 더욱 더 비싸진 샤넬 가방을 조심스럽게 꺼내며 김 여사는 앞으로도 잘 지켜주겠노라 다짐했다.

간단하게 한듯 안한듯 메이크업을 하고, 디올 립글로우로 입술로 살짝 생기만 주니 영락 없이 김 여사가 추구하는 ‘적당히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국제학교 맘룩’이 완성됐다.


학교 전체가 상담을 하는 날이라 오늘 조슈아는 학교 수업이 없다.

이런 날, 집에서 영어책이라도 읽으면 참 좋으련만

조슈아는 당연스럽게도 느지막이 일어나 깎아 놓은 사과와 블루베리를 그릭요거트에 찍어 먹으며 유튜브 삼매경이었다.

”어휴…“

조슈아를 바라보는 김 여사의 입에서 저절로 깊은 한숨이 비져 나왔다.

”이유준! 아니 조슈아! 너 유튜브 언제까지 볼 건데?“

”몰라. 오늘 학교 안 가잖아.“

”그렇다고 집에서 계속 유튜브만 보는 날이야 그럼?“

”아니, 엄마는 진짜…나도 좀 쉬자“

”너 많이 쉬잖아”

“내가 뭘? 오늘은 유튜브 아직 1시간 밖에 안 봤어!”


너무도 당당한 조슈아.

하…진짜 자기가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놈…

김 여사는 또 다시 단전에서부터 끌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조슈아에게 말했다.

“엄마 상담 다녀올테니까, 10분만 더 보고 수학 학원 숙제라도 해“

”아, 10분? 장난해? 30분”


빠직… 김 여사의 이마에 혈관이 불끈 돋는 게 느껴졌다.

결국 조슈아와 유튜브 시간을 20분으로 합의보고 김 여사는 주차장에 있던 벤츠에 올라탔다.

벌써 10만 키로 가까이 탄 2017년식 벤츠 e클. 남편이 제주에 내려오기 전 SK엔카 인증중고로 사준 차였다. 그 전까지 김 여사는 서울에서 미니쿠퍼를 몰고 다녔다.


그래도 국제학교인데! 벤츠는 타야지! 라고 김 여사가 조르고 또 졸라서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사 준 벤츠였다. 내려오기 전에 이것저것 새것처럼 싸악 수리했더니 김 여사가 보기에 그래도 외관상으로는 썩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그게 김 여사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 정도면 남들이 보기에 오래된 벤츠 e클처럼은 안 보이겠지?’

오래 된 차라 터치 스크린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무선 블루투스 같은 건 언감생심이지만 김 여사는 이 차를 사랑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약 3분 정도 운전하니 학교가 보였다.

이 정도 거리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오늘은 구두를 신었기에 차를 끌고 나왔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니 여기저기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아! 조슈아 어머님! 지금 상담이세요?”

“어머! 대니얼 어머님! 오랜만이에요.”

낯익은 얼굴의 엄마들과 인사를 몇 마디 나누고 김 여사는 발걸음을 돌려 교실 쪽으로 향했다.

상담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김 여사의 가슴도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다 떨리냐.. 영어 오늘은 잘 나오겠지 어제 연습했으니까? 제발 연습한 대로만.’

김 여사가 마지막으로 파파고에서 메모어플에 옮겨놨던 질문들을 입으로 되뇌어 보려는데 조슈아의 한국인 보조 선생님이 그녀를 불렀다.


“조슈아 어머님이시죠? 들어오세요.”

“네”

막 상담을 마치며 교실을 나가던 댄 엄마가 김 여사와 스치며 눈 인사를 했다.

두근두근

조슈아의 외국인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김 여사에게 의자를 권했다.

김 여사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Hello. Good morning.”

“Hello. Good morning. Mrs.Kim”

둘 사이에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기본적인 영어 인사가 오간 뒤 조슈아의 담임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조슈아의 장점과 교실에서의 모습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들리는 아는 단어로 김 여사는 문장의 뜻을 유추했다.

조슈아는 그래도 학교 생활을 그럭저럭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한국표 영어 리스닝 공부 실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

뇌를 풀가동해 머릿속으로 뜻을 해석하고 나니 등 뒤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Is there anything you want to ask?”

이제 조슈아에 대해 김 여사가 물을 차례였다.

김 여사는 머릿속으로 어제 연습했던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낼 참이었다.

“Um…um…is there…anything that I can help? Help 맞나? 아…wait please”

이제는 등 뒤로만 나던 땀이 이마에도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It’s ok. You can take your time.”

조슈아의 담임 선생님이 사람 좋은 미소로 김 여사에게 천천히 하라고 했지만 김 여사의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김 여사는 담임 선생님 옆의 한국인 보조 선생님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그러니까…제가 뭐 집에서 조슈아를 위해서 도와주거나 좀 같이 힘써야할 게 뭘까요? 라고…전해 주시겠어요?”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영어로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은 통역 요청이다.

제주에 내려와서 사람도 잘 못 만나고 말하는 대상은 거의 조슈아에 한정되다 보니 쓰는 단어도 거의 짜증, 명령, 분노, 협박에 국한돼서일까.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

보조 선생님이 김 여사의 말을 영어로 통역해주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Oh, you mean, anything that you can support him.”

‘맞다! Support!’

김 여사는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혼났다.

그렇게 그 옛날 토익스피킹보다도 더 진땀나는 영어 상담 시간이 끝나고 김 여사는 터덜터덜 자신의 e클로 돌아왔다.

’하…기빨려.. 빨리 집에 가서 고추장에 다 때려넣고 비빔밥 해먹을 거야…‘

힘겹게 차 문을 열고 김 여사가 차 의자에 앉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탕! 쾅!

갑자기 김 여사가 앉은 차 시트가 훅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김 여사는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질렀다.

김 여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문짝에 붙은 자동 시트 조정키를 눌렀다.



그런데….

지잉 지잉 소리는 나는데 시트가 요지부동이었다.

”빨리 가야되는데 이거 왜 이래…“

점점 김 여사의 짜증이 한계치에 달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한 번 더 시트 조정키를 눌렀다.

지잉 지잉 지잉

또 다시 소리는 나는데 시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김 여사는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 속 난쟁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키보다 한참 높은 앞 유리창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다.

김 여사는 신경질적으로 샤넬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서울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환자가 없는 걸까. 오전 10시밖에 안 됐는데 김 여사의 남편은 신호음이 채 두 번도 지나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왜?”

”어! 오빠! 아오! 이 고물차 좀 당장 바꿔줘!! 아오 화딱지 나서 못 타겠네!!! 진짜 짜증나!!!“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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