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김 여사는 서울에서 주말이라 내려온 남편과 자동차 정비센터에 가는 길이다.
며칠 전, 자동차 전동 시트가 갑자기 훅 내려앉은 후 시트 조정키가 소리만 웅웅나고 먹통인 현상이 지속됐기 때문이었다. 김 여사는 그날 학교에서 집 주차장까지 운전하는 약 3분 동안 잘 보이지 않는 전방을 기린마냥 목을 쭉 빼서 주시한다고 한동안 목 디스크로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남편이 오기 바로 전 날까지도 목의 통증과 그간 차의 자잘한 고장들을 남편에게 전화로 토로하던 김 여사는 남편이 제주 땅을 밞자마자 낚아채듯 데리고 정비센터로 향했다.
일단 남편은 정비센터까지 가는 동안, 임시방편으로 집에서 두꺼운 베개를 가져와 운전석 시트에 깔고 운전했다. 다행히 허리가 긴 편이었던 남편은 두꺼운 베개를 하나 깔자 얼추 전방 주시가 잘 되는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여보, 내가 내려오기 전에 좀 알아봤는데 A모터스가 잘한대. 거기로 가자.”
“오 그래? 여보가 잘 알아봤네.“
“응. 거기가 실력도 괜찮은데 가격이 제주 최저가래.”
“…싸서 가는 거구만?”
“여보, 가성비 몰라 가성비?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말, 가!성!비! 이왕 고치는 거 실력 좋은데 싸기까지 하면 더 좋잖아.“
“벤츠 정식as센터 가서 고치고 싶은데…“
“또!또! 그 소리! 벤츠 정식 센터 가봤자 일반 수리센터랑 다 똑같은데 가격만 비싼 거야. 지금 보증 기간도 한참 지나서 별 것도 아닐텐데 엄청 비쌀 거란 말이야“
“그래도 거기는 정식 부품 사용할 거 아냐? 일반 수리센터는 사제 쓸 텐데…“
“여보, 차잘알이야?“
“뭐?“
“차잘알이냐고. 차 잘 아냐고.“
“…아니.“
“그럼, 벤츠 정식 부품이든, 사제 부품이든 구분할 줄 알아?“
“…아니.“
“그럼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겠지?“
김 여사는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지난주부터 전화할 때마다 병원에서 쓰던 기계가 또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수리비만 몇 백이라는 둥, 요즘 인기있는 시술이라 무리해 들여놓은 기계의 소모품만 한 달에 얼마라는 둥 우는 소리를 많이도 했었다.
요즘 늘 남편에게 전화하면 신호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받았던 걸로 보아, 돈은 돈대로 나가는데 환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김 여사는 이참에 고물차는 처분하고, 남들처럼 포르쉐를 뽑고 싶다고 말하려던 생각을 고이 접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는 김 여사라도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서 이주일에 한번씩 보는 남편의 얼굴은 몇 년 새 꽤 늙어 있었다.
“여보, 다 왔어. 내려.“
남편이 도착한 곳은 어떤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한 수리센터였다. 김 여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데서 벤츠도 수리해 주나?‘
김 여사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A 수리센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장님! 저 아까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벤츠 E클.“
남편이 트럭을 정비 중인 남자에게 다가갔다. 엔진 오일 같은 게 얼굴 이곳저곳에 묻은 채 남편과 김 여사 쪽으로 다가오는 사장이라는 남자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네. 일찍 오셨네요? 차 어디에 있죠?“
능숙하게 남편이 안내한 쪽으로 다가와 차를 이리저리 살피던 젊은 사장님은 김 여사의 벤츠에 올라타 시트를 이래저래 만져보았다.
“이걸 깔고 오신 거예요?“
“어머, 저걸 안 뺐네.“
젊은 사장이 벤츠 운전석 시트에서 베개를 꺼내 들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김 여사는 얼른 달려가 베개를 사장의 손에서 낚아챘다.
사장은 그 후에도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살피고, 차 외관까지 살피더니 남편과 김 여사 쪽으로 다가왔다. 김 여사는 무슨 말을 하려나 긴장한 채 들고 있던 베개를 꽉 끌어안았다.
“전동 시트 쪽 연결선이 빠진 것 같아요. 분해해서 다시 끼우면 될 거 같고요. 그런데 사장님, 바퀴도 가셔야겠던데요?”
“바퀴요? 바퀴 멀쩡한데…”
“맞아요. 저 바퀴는 괜찮아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김 여사는 지레 겁을 먹고 사장에게 손사래를 쳤다. ‘난 결백하다‘ ’난 자동차 바퀴를 갈만큼 험하게 운전하지 않았다‘를 뜻하는 제스처였다.
“아니, 키로 수 보니까 꽤 타셨던데, 그래서 그런지 앞 바퀴 두 쪽 다 하얗게 타이어 내부 철심 같은 게 올라와 있어요. 모르셨어요?”
놀란 김 여사와 남편은 사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사장의 말처럼 김 여사의 벤츠 앞 바퀴 표면에는 두 짝 다 못 보던 하얀 줄이 여러 개 죽죽 그어져 있었다.
“이게 바퀴가 닳은 거예요?“
“네. 모르셨구나. 이거 이 정도면 타이어 바퀴가 휠에서 거의 1mm 정도밖에 안 남은 거예요. 사장님 큰일 나실 뻔 하셨네.“
“아, 와이프가 모는 차라 전 몰랐어요. 그럼 이것도 갈아야 하는 거예요?“
“사모님이 모시는 차예요? 그럼 더 큰일 날 뻔 하셨네. 꼭 가셔야 해요.“
“…이게 이 상태로 계속 몰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음…뭐 작은 돌부리나 이런 거에도 팡 터질 수 있겠죠 뭐 그럼. 사모님이 모시니까 자녀분도 같이 타실 거 아녜요. 아유, 바로 바꾸셔야 해 이건.“
김 여사는 사장의 말에 오싹해서 등줄기로 식은땀이 또르르 흘렀다.
“…그럼 타이어는 얼만데요?“
김 여사의 남편은 생각보다 돈을 더 많이 쓰게 된 게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장은 벤츠의 타이어를 쓱 보더니 주머니에서 계산기를 꺼내 말했다.
“브리지스톤이네. 사장님 차 바퀴 인치가 어떻게 되세요?“
“모르는데. 저희 E클 기본이에요. 제일 기본 E 200”
“그럼 18인치고, 바퀴 한짝당 브리지스톤은 보자…35씩이니까 70 정도 생각하시면 되겠네.”
“에???70이요????”
생각보다 큰 지출이 예상되자 남편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저…사장님. 더 싼 건 없습니까?”
“여보, 벤츠 원래 바퀴가 저거라잖아. 그럼 저거로 바꿔야지.”
“가만 있어봐. 사장님 더 싼 건 가격이 어떻게 돼요?”
“더 싼 거요? 한국 것도 괜찮으세요 사장님?”
“한국 거요? 얼만데요?”
“음…그건 보자…한국 타이어가 한 짝당13만원 정도?”
“그걸로 합시다.“
“여보!!“
“그걸로 해주세요. 한국 타이어. 국산 잘 만들잖아요. 그쵸 사장님?“
“아유 그럼요. 그런데 그럼 뒷바퀴랑 제조사가 달라지는데 상관 없으세요?“
“그럼 뭐 안 좋은 게 있습니까?“
“뭐…그냥 예민하신 분들은 조금 운행할 때 소리가 난다거나,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거나 그러실 수는 있죠.“
“여보는 안 예민하잖아, 그렇지? 그걸로 합시다. 우리“
“네, 그럼 50분쯤 걸리겠네요.“
사장님이 김 여사의 벤츠를 손보는 동안 김 여사와 남편은 수리 센터 안의 작은 대기실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김 여사는 남편을 째려 보며 말했다.
“한국 타이어 두 개에 브리지스톤 두 개. 말이 돼? 이상하잖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조슈아 학교 갔다가 창피당하면 어떻게 해?“
“누가 여보 차 타이어를 본다고 해.“
김 여사의 남편은 뭘 검색이라도 하는 듯 휴대폰 액정에서 눈을 못 떼며 김 여사의 역정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 여사는 참고 있던 분노를 터뜨렸다.
“아오 진짜! 고물차에 이제는 바퀴까지 다 달라! 아오 짜증나!!!“
김 여사의 남편은 김 여사의 포효가 들리지 않는 듯 휴대폰 액정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다 됐어요!“
사장님에게 돈을 지불하고, 김 여사와 남편은 벤츠에 올라탔다. 시트키도 정상, 타이어도 새 것이었다. 앞뒤가 짝짝이이기는 했지만.
뾰루퉁한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김 여사의 남편은 씨익 웃으며 내비에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찍기 시작했다.
“어디 가?“
“신라.“
“신라는 갑자기 왜?“
“타이어 돈 굳었으니까 그걸로 맛있는 거 사먹으러. 아까 찾아보니까 애플망고빙수 시작했대. 가자!“
“꺅!!애망빙!!! 레츠 고!!!!“
부웅
김 여사의 벤츠가 신나게 달렸다.
“타이어 짝짝이어도 전혀 다르다는 느낌 없는데? “
“그러게! 역시 한국이 잘 만들어! 국산 짱!! 얼른 고고!! “
벤츠는 역시 앞뒤 바퀴가 달라도 벤츠다.
쌩쌩 달리는 짝짝이 벤츠 안에서 부부는 완벽하게 행복했다.
역시 국산이 짱!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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