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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하나, 천사 둘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엄마…”

집으로 들어오는 조슈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다운돼 있었다.

김 여사는 거실에서 보던 티비 리모컨을 던져 놓고 신발장으로 달려갔다.

“조슈아 무슨 일이야? 헉!! 이게 뭐야?“

조슈아의 얼굴에 쭈욱 손톱으로 긁은 상처가 길게 나있었다.

김 여사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조슈아!! 이게 무슨 일이야!! 얼른 말해!! 누구야!! 어떤 새끼야!!!”

조슈아는 김 여사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러운 듯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내 또르르 조슈아의 통통한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엘리사…엘리사가…”

“엘리사? 여자애?”

김 여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거꾸로 솟았던 피가 다시 거꾸로 뒤집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뭔 소리야? 우리 아들 얼굴을 이렇게 긁어 놓은 게 심지어 여자애라고?

“아니, 넌 여자애한테 맞고 다니는 거야?”

“걔가 긁었어…”

“그러니까 왜? 뭐 때문에?”

김 여사는 조슈아를 채근했다.

조슈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체육 시간에 닷지볼 하는데 걔가 자꾸 내 앞에 있어서 겟아웃하고 어깨를 밀었는데 걔가 뒤돌더니 갑자기 내 얼굴 쫙 긁었어.”

“뭐? 닷지볼? 닷지볼은 또 뭐야?“

“피구잖아…“

“흠흠!! 아무튼!! 그래서! 선생님한테는 말했어?”

“응. 그런데 서로 어폴로자이즈 하라고 하고 끝났어.”

“…뭐? 서로 어폴로자이즈?”

“응. 나도 걔 어깨 조금 밀기는 했으니까 그거 어폴로자이즈 하고 걔도 나 긁었으니까 어폴로자이즈하고.”

“아니, 근데 걔는 뭐 상처 나거나 그랬어? 너가 밀어서?”

“아니, 나 세게 안 밀었어.“

“그런데 걔는 이렇게 너한테 크게 상처를 남게 긁었는데도 서로 어폴로자이즈? 죄의 경중이 다른데?“

“경중이 뭔데?“

“…됐다. 어휴…“

김 여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슈아 얼굴에 이렇게 상처가 크게 났는데 서로 어폴로자이즈?‘

분노가 부글부글 차올라 점심에 먹었던 아보카도 치킨 샌드위치가 위장에서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뭐? 서로 어폴로자이즈? 이렇게 애 얼굴을 긁었는데? 허! 나 참!!’

아무리 생각해도 김 여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던 조슈아에게 얼른 오라고 해서 즉각 상처난 얼굴을 요리조리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김 여사는 사진을 남편에게 전송하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오늘도 남편은 전화를 금방 받았다.

“사진 봤어?”

“잠깐, 진료 중이었어. 차트 좀 쓰고.”

“아! 빨리!! 빨리 좀 봐봐!!”

“뭔데 그래?…헉!! 이게 뭐야?”

사진을 확인한 김 여사의 남편도 놀랐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하지? 심하지? 아니 글쎄 어떤 여자애가 체육 시간에 닷지볼 하다 조슈아 얼굴을 긁었대!!!”

“닷지볼이 뭐야?”

“피구잖아! 그것도 몰라?”

“모를 수도 있지…”

“어쨌든!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당장 얘네 엄마한테 전화해야 하나?”

“그런데 유준이가 뭘 어쨌기에 그 여자애가 그런 거래?”

“닷지볼 하는데 조슈아 앞에서 그 여자애가 자꾸 왔다갔다 해서 겟아웃이라고 말하고 어깨를 살짝 밀었는데 얘가 뒤돌아서서 얼굴을 이렇게 긁어놨대!!!”

“유준이가 걔를 세게 밀치진 않았대?”

“밀친 게 아니고, 살짝 민거야. 유준이, 아니 조슈아도 세게 안 했다고 했어. 세게 안 했으니까 멀쩡히 뒤돌아서 얼굴을 이렇게 세게 긁어놨겠지!! 힘이 남아 도니까!!”

“흠…그런데 전화했더니 걔네 엄마는 유준이가 먼저 밀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어쩌려고?”

그 말에 김 여사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아이들끼리의 일이니 충분히 아이들은 본인들의 입장에서만 말할 테고, 그렇게 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기게 될지도 몰랐다. 남들 보기엔 조용하고 조곤조곤한 김 여사의 이미지에 크게 금이 갈 터였다.

“그런데 우리 조슈아는 솔직하게 자기가 먼저 밀었다고 얘기는 했잖아. 적어도 거짓말이나 자기 위주로는 말하지 않았다고. 조슈아 성격 알잖아.”

“모르는 일이지.“

“아니, 당신은 그 여자애 편이야?“

“편은 무슨…나는 여보가 괜히 전화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렇지. 그리고 어떤 엄마일지도 모르는데…만약에 딸처럼 막무가내인 여자면 어쩌려고.“

“하…너무 열받는데.“

“그럼 먼저 선생님한테 사진 첨부해서 자초지종을 말해봐.“

“체육 선생님한테?“

“뭐, 체육 선생님이든 담임 선생님이든.“

“하…“

남편과 말하는 동안 100에 달했던 분노 게이지가 60쯤으로 줄어든 김 여사는 남편의 조언대로 전화를 끊고 방으로 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 접속해 선생님들의 이메일 주소를 복사했다.

“하…그러니까…심한…심한이 severe, 긁다가 scratch…아오 맘 급해 죽겠는데 영어로 쓰려니까 짜증나네.“

김 여사는 파파고 어플을 열어 조슈아의 상황을 한글로 상세히 적은 후 번역 버튼을 눌렀다. 즉시 김 여사가 하고 싶은 말이 주루루루 영어 문장으로 깔끔하게 번역돼 화면에 나타났다. 김 여사는 그 문장들을 복사해 앞에 굿 애프터눈을 붙이고 체육 선생님에게 메일을 전송했다. 조슈아의 상처가 가장 잘 보이게 나온 사진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이후로 김 여사는 수시로 자신의 메일함을 확인했다. 선생님에게 답신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김 여사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가 미칠 지경이었다.

저녁을 먹다가도, 수학 숙제를 봐주다가도, 유튜브를 보며 깔깔대는 조슈아 옆에서 휴대폰으로 장을 보다가도 자꾸만 조슈아 얼굴의 상처가 생각나 속이 쓰렸다.

김 여사는 메일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봤다.

“왔다!!!“

김 여사는 체육 선생님에게서 온 메일을 단숨에 클릭했다.

주루루루 길게 써있는 답신에는 상투적인 인사말과 함께 내일 학교에서 두 학생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나눠 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김 여사가 이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고, 이건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이기에 아이들에게 대화와 사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겠다는 게 요지였다. 김 여사가 바랐던 조슈아의 상태가 심하다는둥, 그 여자애가 나빴다는둥의 공감의 문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조슈아!“

“…“

“조슈아!!”

“…”

“이유준!!! 듣고 있어?“

“왜?“

그제서야 유튜브 화면에서 눈을 뗀 조슈아는 김 여사를 귀찮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마주한 조슈아의 상처에 김 여사는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은데 정작 아들은 아주 태평한 것 같아 복장이 터졌다.

“내일 체육 선생님이 둘 불러다가 얘기 해본대.“

“체육 선생님이?“

“응. 너 내일 학교 가서 걔가 너 얼굴 긁은 거에 대해 제대로 말하라고. 걔 아주 혼쭐이 나게.”

“내가 먼저 조금 밀긴 했어.”

“그래도!!!걔는 안 다쳤잖아!!!”

“그렇긴 한데 나도 잘못이 있는 거야.”

“어휴!! 야 남한테만 그렇게 너그럽게, 착하게 굴지 말고, 엄마한테도 제발 좀 그렇게 천사처럼 행동해! 엄마 말에는 대답도 안 하면서!!! “

“왜애애앵. 내가 엄마 얼마나 사랑하는데! I will kiss you chu chu!!”

벌써 상처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조슈아를 보며 김 여사는 속으류 내 천(川)자를 천 번쯤 새기고 또 새겼다.

‘이 집은 아빠나 아들이나 하여튼 아주 물러 터졌어!! 아주 다들 천사 납셨지!! 나만 악마고!!‘

그렇게 다음 날 김 여사는 하교하는 조슈아만을 집에서 손꼽아 기다렸다.

조슈아가 체육 선생님과 이야기는 잘 나누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 저녁 뭐야! 나 배고파 죽겠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조슈아의 목소리에 김 여사는 후다닥 신발장으로 뛰어갔다. 김 여사는 신발을 벗고 있는 조슈아에게 황급히 물었다.

“오늘 무슨 얘기했어? 체육 선생님이랑 얘기했어?“

“체육 선생님? 어! 했어.“

“뭐라고 했어? 선생님이 걔 막 혼내줬어?“

“아니, 우리끼리 대화하고, 선생님은 사회자 역할했는데?“

‘사회자는 개뿔…토론하나 무슨!!‘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올 뻔 했지만 다시 차분하게 김 여사는 조슈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얘기했는데?”

“그냥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잘 지내기로 했어! 아 나 배고파! 빨리 밥 줘!!“

김 여사는 허무함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네 얼굴 보니까 엄마는 속이 상해 죽겠는데?“

“응! 괜찮아! 우리는 친구잖아! 서로 잘못하고 실수하면서 그로우업 하는 거야!“

하…

아무래도 이 집에는 김 여사만 악마인 게 분명했다.


악마 하나, 천사 둘이 사는 행복한 김 여사의 집!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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