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글을 다시 보겠지
창업이 무서워서 로스쿨로 도피한건 아닐까?
또는 공부에 자신이 없어서 창업을 선택한게 아닐까?
지난 몇 달 간 이런 고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너가 생각하기엔 내가 인생의 선택에서 도망치는 것 같아?"
"변호사가 답인지, 창업가가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너가 새로운 도전을 멈춘다면 그건 너답지 않을 것 같아"
"너 말이 맞는 것 같네"
도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법 공부가 재밌다.
재밌기도 하고, 공부량에 비해서 성과도 나름 잘 나오는 것 같다. 특히 민법의 정치한 논리들을 익히는 것이 재밌다. 몇 일 전에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중상위권 정도를 했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부족했음에도 이 정도 성적이 나온 것은 감사할 일이다. 다만, 고등학교 때의 습관처럼 과도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2. 사업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창업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도 모르는 힘이 샘솟는다. 요 몇 일 일이 많아서 한창 피곤했는데, 주말에 친구와 만나 사업 얘기를 하니까 3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결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나는 정녕 둘 다 해야만 하는 사람인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로스쿨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나,
아이템을 발굴해서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이나,
전부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정의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창업가나 법조인이나, 결국은 사회가 임의로 정한 직업이다.
창업가는 어때야 하고, 변호사는 어때야 한다 라고 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고정관념일 수 있겠다.
그리고 내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형태의 커리어를 쌓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나는 나다운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전문성과 안정성을 위해서 로스쿨에 진학했고,
법 공부를 하면서도 창업가의 꿈을 가지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런 선택을 했기에 어느 집단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나는 로스쿨 동기들처럼 로펌에 입사하여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런 길을 걸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기에는 내가 다른 것에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업가들에게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내가 지난 2년간 그랬듯, 그들은 주 80시간 이상씩 자기 사업에 몰두하는 이상주의자 집단이다. 지금 내 스케쥴로는 주 30시간 이상을 창업에 쏟기 힘들다.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변절자(?)가 된 기분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앞으로의 로스쿨 3년을 보내야 할 것인가?
1. 내 강점을 연마한다.
사회에 나가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펌 변호사를 꿈꾸는 대부분의 로스쿨생들에게는 그게 '학벌'과 '법학 성적'이다(반례는 많음). 결국 로펌 입사에 입사할 때 면접관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학부 및 로스쿨 학벌과 내신 및 변호사시험의 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강점은 다른 곳에 있다. 내 강점은 내가 하는 도전에 있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3년 간 '시행착오를 통해 데이터를 누적'할 생각이다. 법학 공부가 됐던, 사이드 프로젝트가 됐던, 휴학하고 창업을 하건 그건 전부 재료다. 본질은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실패하고 그걸 데이터화하는 것이다. 누적된 데이터가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2. 변호사 자격증은 꼭 딴다.
앞으로 3년간 다양한 도전을 하겠지만, 그래도 변호사 시험은 꼭 통과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새로움과 도전이 중요한 만큼, 전문성과 안정성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로스쿨 3학년 1년만큼은 공부에 풀 집중을 할 생각이다. 1,2 학년 동안은 학교 수업을 충실히 따라가고 법학의 기초를 닦아둘 것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목표가 된 이상, 내신 시험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량을 채워나갈 생각이다. 등수에 매몰되지 않고 법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한다. <비바 로스쿨> 저자 최기욱님이 말씀하셨듯이 변호사 시험은 1700등으로 합격하는 사람이 가장 승자다.
나는 언젠가는 내가 도전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그런데 법률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령 최고가 될 수 있더라도, 그를 위해 투입하는 노력의 양이면 차라리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고등학교 동기 중에 압도적인 재능과 미친 노력으로 <서울대 학부 - 서울대 로스쿨 - 김앤장 컨펌>을 받은 친구가 있다. 심지어 빠른년생이라 나보다 1살 어리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을 꿈꿔왔고, 정의로운 판사가 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친구보다 법조인으로서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나는 그럴 수도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게 맞다.
마구잡이 식으로 지난 3개월간 내가 한 생각들을 적어봤다.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