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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새싹의 실험실 Jun 29. 2023

런던 3일차

유럽여행 왔습니다

어제 10시간 정도를 걸은 것 같다. 버킹엄 궁전 – 웨스트미니스터 사원 – 빅벤 – 코벤트 가든 – 카나리 워프에서 하는 소셜 모임까지. 10시간 가까이 잤는데도 계속 하품이 나온다. 오늘은 조용한 북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저녁에는 소호(영국의 강남) 펍에 가볼 생각이다.     


유럽에 온 목적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유럽을 방문하려고 지금까지 몇 년간 여행을 미뤄왔다. 그러나 장기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되자 결국 아무런 생각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되고야 말았다.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느끼게 된 것은 많다.     


첫째, 혼자 하는 여행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장점은 우선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어제는 템즈강 유역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잡다한 생각을 다 했다. 그러고 나니 머리가 비워지고 뇌 속의 얼룩들이 깔끔하게 지워지는 기분이다. 만일 친구와 함께 왔으면 진정한 사색을 즐기지 못하고, 한국에서 고통받았던 이슈들에 관한 대화를 계속 나눴을 것 같다.      


단점은 펍과 같은 소셜 공간을 마음껏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제 있었던 카나리 워프 소셜 모임에서 런던 주민들에게 Is it akward to go to a pub alone? 이라고 물었는데 다들 뜬금없이 박장대소했다. 그러고 말하길 용기만 있으면 가도 된다고 한다. 의중을 파악하건대, 역시나 혼자 펍에 가는건 이상한가보다. 그리고 내 성격상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할 텐데 여럿이서 온 사람들에게 혼자 말을 거는 것은 그들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종합적으로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런저런 액티비티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상황에서는 혼자 가는 것이 맞았다. 머리를 식히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혼자 여행하는 것의 장점이 극대화되고 있다.     


둘째, 무계획이 필요한 시점이 있고 나에게는 그 시점이 지금이다. 내 인생을 펼쳐놓고 보면 무계획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름 계획이 다 있었다. 매 시점 무엇을 할지 계획이 있었고, 계획이 없는 날이면 무엇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허겁지겁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런 강박이 나를 옥죔과 동시에 내가 직면한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즉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무계획으로 움직이고 있다. 당장 5일 뒤 숙소까지만 예약되어 있고 그 후의 숙소는 예약되어 있지도 않다. 하루 계획은 그 날 아침을 먹으면서 짜고 있다. 오늘은 이 북카페를 나가고 나서 어디를 갈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그냥 다른 카페를 가서 맛있는걸 먹지 않을까 싶다. 무계획의 삶은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는 점에서 자유를 선물한다.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에 치여 살지 않게 해준다. 즉, 내 평소의 라이프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일상을 살고 있다. 그 때문에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요즘 영국 tube나 차들에 붙여져 있는 광고판을 관찰하고 인터넷에 찾아보는 재미에 빠졌다. 지금 눈 앞에 지나가고 있는 광고판은 Cougar Couriers다. 찾아보니까 런던 기반의 화물 운송 업체라고 한다. 냉동트럭을 강점으로 삼는 것을 보니 마켓컬리의 화물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아 어제는 motorway라는 회사 광고를 봤다. ‘The way to sell your car“라고 해서 딱 생각나는 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motorway의 회사 소개를 보니까 ”5000 plus dealers compete to give you their best price“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중고차 딜러 스타트업 헤이딜러의 영국 버전이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찾아봐야 알 것 같다.     


여기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한국에도 있는 스타트업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다른 점은 특정 사업 분야의 회사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자동차 분야가 그렇다. zipcar나 cazoo. motorway 등 다양한 회사들이 눈에 띈다. 또, 부동산 분야도 여러 회사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어제 Chancellors라는 회사를 보았다. 부동산 플랫폼의 오프라인 사무실들이 곳곳에 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점인 것 같다. 또, 내가 소개팅 웹사이트를 만들 때 참고했던 회사인 Bumble은 지하철에 크게 광고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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