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과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앉은자리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독하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나도 독기를 잔뜩 품었던 때가 있다.
20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나는 작은 언니와 함께 자취를 시작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온 나에게 배달 어플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촌에서는 볼 수 없는 브랜드 치킨부터 유명 유튜버들이 먹던 떡볶이, 심지어 24시간 배달이라는 문화 충격에, 이래서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가라고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끊임없는 배달음식의 축복 속에서 나는 포동포동 살이 쪄갔다.
그리고 볼 때마다 커져가는 나에게 엄마는 여름방학 동안 본가에 내려와 *PT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나도 어느 정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헬스장에 가던 날, 엄마를 끌고 갔던 기억이 난다. 옆에 엄마가 있다고 몸무게가 적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내 수치심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인바디 기계에 올랐고, 118kg이라는 숫자를 확인했다. 전날 하루종일 굶고 온 걸 감안하면 당시 120kg 정도 나갔던 것 같다.
당시 코치님과 함께 짠 다이어트 루틴은 이랬다.
아침 - 밥 100g, 닭가슴살 100g, 채소, 반찬 조금
점심 - 밥 100g, 닭가슴살 100g, 채소, 반찬 조금
오후 - 닭가슴살 100g, 채소
저녁 - 닭가슴살 100g, 채소
월 - PT 50분, 유산소 1시간
화 - PT 50분, 유산소 1시간
수 - PT 50분, 유산소 1시간
목 - PT 50분, 유산소 1시간
금 - PT 50분, 유산소 1시간
토 - 유산소 1시간
지금 봐도 숨 막히는 스케줄인데,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항상 식단은 딱딱 계량해서 맞춰 먹었고, 한 번도 운동을 빠진 적 없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약속은 전혀 잡지 않고, 가족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거나 식당에 따라가더라도 물만 마셨다.
6년 전 일이라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은 각인처럼 새겨지는 것 같다. 운동 첫날의 일이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 나는 코치님을 따라 조깅 트랙으로 나갔다. 그곳은 실내긴 했는데 에어컨이 없었다. 참고로 당시는 역대급 더위로 악명 높은 '2018년 여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훅하고 폐를 채우는 텁텁한 공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곳에서 가차 없이 버피테스트를 시작했고, 나는 15분도 안돼 기절 직전까지 갔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쓰러질 뻔했다. 갑자기 숨이 너무 가쁘더니 앞이 안 보이고, 토할 것 같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날 이후로 운동 강도를 정말 쉽게 조정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여름이 다 가도록 운동 장소는 바뀌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조금 부끄러운 일인데, 우리 가족은 집에서 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식단을 시작한 내 눈치를 보는 가족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집에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의 소소한 행복이 깨지는 것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달리 운동도 힘들고 배도 너무 고팠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가족들은 다 함께 모였고 음식을 주문했다. 이때부터 마음에 작은 파장이 일었던 것 같다. 이윽고 배달이 도착했고, 피자를 본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날은 유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터져 나왔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견딘 결과였을까. 여름방학 다이어트가 끝나던 날, 나는 15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에 탄력을 받은 나는 개강을 하고도 PT를 계속 받기로 했다. 전처럼 5일은 못하지만, 일부러 금요일에 공강을 만들어서 3일 정도는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식단도 물론이었기에 자취방의 작은 냉동실을 닭가슴살로 가득 채워 넣었다. 나를 방생하는 코치님은 불안해했지만, 난 자신 있었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개강 첫날 학교를 마치고서 핸드폰 지도를 켜고 자취방 주변을 돌아다녔다. 목적은 운동할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캠퍼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락, 일반 도로는 차가 많아서 탈락, 헬스장은 비용 때문에 탈락.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꽤 넓은 공원을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매일 그 공원에 나가 걸었다. 장마 기간에도 우산을 쓰고 나갈 정도였다. 걷고 나서는 간단한 맨몸 운동과 스트레칭을 꼭 하는 나만의 루틴도 생겨났다.
식단은 먹던 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학교에 있는 동안은 주로 편의점에 가서 닭가슴살을 사 먹었다. 피치 못할 약속이 있는 날에는 도시락을 싸가 양해를 구했다. 한 친구는 내가 식당에 당근과 닭가슴살을 싸왔던 얘기를 아직까지 하는데, 아무래도 적잖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개강과 종강이 반복되는 동안 철저하고 고독한 다이어트는 이어졌고, 다시 맞이한 여름날 나는 78kg이 되어 있었다.
PT: Personal Training의 약자로 헬스 트레이너에게 운동 교습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