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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pr 25. 2024

02. 둥따당 비파소리 고조되는 노랫가락

굴원의 <구가 >와 동방의 음악 문화


기본 상식



중국 고대문학은 《시경詩經》과 초사楚辭로부터 시작한다. 이 둘은 모두 노래 모음집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의 문학사는 바로 곧 고대 음악의 역사이기도 하다. 《시경》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시는 감정이 움직인 것이다. 마음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감정이고, 언어로 발산되었을 때는 시가 되는 것이다. 가슴속에서 감정이 움직여 언어의 형태로 표출되고, 언어로서도 모자라면 한숨을 쉬고, 그래도 모자라면 노래를 부르게 된다. 노래를 불러서도 미처 다 발산이 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짓 발짓을 하며 춤을 추게 마련이다. 《시경 · 모시서毛詩序》


고대 중국인은 '시와 음악과 춤'을 하나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시경》은 유교의 첫 번째 경전이다.
▷《시詩》 또는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한다.
▷《시경》은 약 3,000년 전~2,500년 전, 황하黃河 중류/하류 지역에서 유행하던 노래 모음집이다.

▷《시경》은 중국 북방 문학의 대표다. 황하 유역은 척박한 땅이다. 유교 문화의 탄생지다.
▷ 약 3,000수가 있었는데(사마천 설), 공자가 그중 300여 수만 골라서 《시경》으로 편찬했다.
▷ 작가는 대부분 이름 모를 민초들이다.

(좌) 《시경》의 무대인 황하.  (우) 《초사》의 무대인 장강

▷《초사》는 약 2,200년 전(진시황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 시대), 장강長江 중류 지역의 초나라에서 유행하던 노래 모음집이다.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다.
▷ 장강 중류 지역: 구체적으로 장강 삼협三峽 ~ 동정호洞庭湖 일대다. 전 세계적인 관광지일 정도로 아름답다. 중국 신화와 전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 《시경》의 작가는 이름 모를 민초지만, 《초사》의 작가는 지식인들이다. 그중에서도 굴원屈原(B.C. 343? ~ B.C. 278?)이 제일 유명하다.
▷ 《초사》의 대표 작품으로는 굴원의 <이소離騷>, <구가九歌 >, <구장九章>, <천문天問>, <어부사漁父辭>, <초혼招魂>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이소>다.



<초사>의 공간 무대


(상) 하늘에서 내려다본 기문夔門 구당협瞿塘峽.  (하) 기문 구당협. 중경重慶 쪽 장강 삼협의 입구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무협巫峽. 장강 삼협의 두 번째 협곡이다.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자주 와서 운우雲雨의 골짜기라고도 한다. 남녀 간의 정사를 흔히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장강 삼협의 세 번째 협곡인 서릉협西陵峽.

서릉협을 벗어나면 장강은 일망무제의 동정호洞庭湖와 만난다. 이 모두가 <초사>의 공간 무대이다.



동황태일, 하늘님께 바치는 노래



“상서로운 날,

 아름다운 때를 골라

 엄숙하고 경건하게

 제사 드리나이다~"


장검의 칼집에 오른손 얹으니

댕그랑 댕그랑

옷에 달린 패옥,

부딪치는 맑은 방울 소리


제단에는

요석瑤席과 옥진玉鎭 깔아놓고

어여쁜 꽃 함초롬이 꽂아놓고


제육은 혜초蕙草로 곱게 쌓아

난초 위에 올려놓고

계수나무 술, 초장주椒漿酒

경건하게 따라놓고


둥- 둥- 북을 울리네

청아한 음성으로 읇조리듯 노래 부르네.

삘릴리 생황 불고, 둥따당 비파 소리에

고조되는 노래 가락.


무녀는 신들린 듯 고운 옷 너훌너훌

향기 가득 넘쳐흐르는 제단,

어우러지는 오음五音의 합주.


아아,

기뻐하시는 하늘님,

유쾌하고 평안하시도다!


吉日兮辰良, 穆將愉兮上皇. 撫長劍兮玉珥, 璆鏘鳴兮琳琅.  

瑤席兮玉鎭, 盍將把兮瓊芳. 蕙肴蒸兮蘭藉, 尊桂酒兮椒漿.

揚枹兮拊鼓, 疏緩節兮安歌,  陳竽瑟兮浩倡. 靈偃蹇兮姣服,

芳菲菲兮滿堂; 五音紛兮繁會, 君欣欣兮樂康!


굴원, <구가九歌 · 동황태일東皇太一> 전문



2,200년 전, 중국 남방의 장강 중류 지역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무당이 불렀던 노래다. 여러 신 중에서도 가장 큰 신인 하늘님, 동황태일에게 바치는 노래다.


노래를 들으신 소감이 어떠셨나요? 네? 멜로디도 없이 노래 가사만 읽어보고 어떻게 아느냐구요? 있어봤자 옛날 노래가 다 그렇겠지. 뭐. 도랑도랑 중얼거리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증후을 편종 오케스트라



보노 작가님의 글,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아래의 내용 때문이었다.

(1)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정서를 자극하거나 흥을 돋우는 음악은 존재해서는 안되며, 존재해도 되는 음악은 전쟁 또는 단결을 필요로 할 때 사람들의 용기를 고취하거나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평온한 음악뿐이다"라고 주장했다.

(2)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는 인간의 정서를 강하게, 무의미하게 흔드는 음악은 범죄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3) 스리랑카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노래의 음이 단 두 개. 높은음과 낮은음밖에 없다.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 리듬이나 음정을 맞추는 서양식의 합창이 아닌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 음악에 대해서 몇 가지는 알고 있다. 피타고라스나 톨스토이의 음악관이나 고대 서양의 음악 수준이 어떠한지는 전혀 모르지만, 혹시나 중국 고대의 음악관이나 수준을 오해하시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적어도 중국 고대의 음악만큼은 위의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우선 앞에서 소개한 <구가 · 동황태일>의 멜로디를 여러분께 직접 들려드리고 싶다. 물론 굴원의 <구가 · 동황태일>을 노래하며 제사 지낼 때의 바로 그 멜로디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2,400년 전 초나라 사람들이 노래했던 바로  멜로디 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악보도 없고, 이천 년 전 악기도 없을 텐데. 뻥치는 거 아냐? 그렇게 말씀하실 듯. 아니다! 사실이다. fact다. 진실이다!!!




1996년. 나는 안식년을 맞아 배낭 하나 둘러메고 광활한 중국 대륙 여기저기 팔천리 길 구름과 달을 벗하며 떠돌고 있었다. 그해 5월, 이윽고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Capital of Province)인 무한武漢, 우한Wuhan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23년 후에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 발원지가 된 바로 그 도시다.


목적지는 고즈넉한 동호東湖 호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호북성 박물관. 인근 수주시隨州市의 증후을 묘에서 출토되었다는 편종 연주를 통해 그 옛날 초나라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증후을曾侯乙이란 2,400년 전 초나라의 위성 국가인 증曾나라의 제후였던 을乙을 말한다. 1978년, 이 사람의 묘에서 7천여 점이 넘는 귀중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특히 세계 음악사를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될 고대 악기들이 발굴되어 충격을 주었다.

특히 청동으로 주조한 크고 작은 65개의 고악기古樂器 일습은 중국문화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편종編鐘'이라고 불리는 이 고대의 악기는 총무게가 무려 2,765kg. 결정적인 것은 거대하고 정교하게 주조된 하나하나의 편종 마다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내용이지? 다년간의 공동 연구 끝에 그 정체를 드디어 알아낸 학자들은 기절초풍을 할 정도로 흥분했다. 음표音表와 음률 법칙이었던 것이다. 악보나 다름없었다. 2,400년 전의 멜로디를 오늘날에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편종 가운데에 노란 글씨의 명문이 보인다. 음표와 음률 법칙을 알려준다.

약 2m 정도의 기다란 나무몽둥이도 발견되었다. 이게 뭐지? 무슨 용도일까? 동시에 출토된 원앙 모양의 칠기가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아래) 원앙칠기에 그려진 <당종도 撞鐘圖>가 그 나무몽둥이, 즉 균종목均鐘木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이 거대한 편종 세트는 2,400여 년의 시간 여행 끝에 완벽한 옛 모습 그대로 완전무결한 음계와 맑은 음색, 황홀하고 우아한 그 옛날 초나라의 음률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가르쳐준 방법대로 연주를 해보니 음역音域이 '5 옥타브'에 이르렀다고 한다. 


피아노가 최초로 발명된 것은 1671년이라고 한다.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B. Cristofori(1655~1731, 伊)가 만든 그 피아노는 음역이 7 옥타브라고 한다. 편종은 그보다 무려 2,100년 전.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악기였다. 그런데 편종의 음역은 5 옥타브였다. 2,000년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간이 만든 악기의 음역이 겨우 2옥타브 확장된 것이다. 그만큼 증후을 편종이 완벽에 가까운 악기였다는 이야기다. 높은음과 낮은음, 두 개의 음밖에 모르는 스리랑카 원시부족의 수준으로 2,400년 전 동아시아의 음악 수준을 판단한다면 큰 착각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35개의 옥돌로 만든 편경編磬과 비파 · 징 · 북 · 대금 · 퉁소 등등 각종 현악기 · 타악기 · 관악기 · 건반 악기 등 온갖 종류의 악기가 무려 124점이나 동시에 발굴되었다. 온 세계가 찬탄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는 세계 팔대 기적 중의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으니, 그 예술적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공연 무대에는 30여 개의 크고 작은 편종編鐘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맵시 있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 앞 공간에는 증후을 묘에서 발굴된 각종 악기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물론 모두 복제품이다. 복제품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문물고고학자, 고문자학자, 음악학자, 음성학자, 물리학자, 주물 제조 전문가 등이 5년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공동 연구하여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냈단다.


중국 정부에서는 증후을 묘 발굴을 계기로 국가에서 지정한 유물의 진품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외 전시를 금한다는 법률까지 제정했단다. 해외로 돈을 벌러 다니는 중국의 유명 문화재들은 거의 대부분 복제품이라는 이야기. 그만큼 복제품 제작도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동방 세계의 작은 오케스트라였다. 출토된 악기의 절반 규모만 가지고서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연주가 가능할까. 궁금했다. 장중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수에 젖은 음률이 흘러나왔다. 투박한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편종에서 어떻게 저런 맑은 소리가 나는 걸까... 편종 소리와 한데 얼려 비파를 뜯는 여인네의 손놀림은 또 어쩌면 저렇게 교태로울까...


그 황홀한 손동작에 호흡마저 정지되었다. 저 속에 그 옛날 초나라 사람들의 삶과 영혼이 숨 쉬고 있겠지? 저 노래를 만든 애국시인 굴원의 고뇌와 열정 어린 얼굴이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다. 숨이 막혔다.




<증후을 출토 편종 연주> 말이 필요 없다. 클릭해서 직접 들어보자.

래프 타임은 약 40분. 마음이 바쁘신 분은 맨 뒤의 1, 2분만이라도 꼭 들어보시길.


둥- 둥- 북을 울리네

청아한 음성으로 읇조리듯 노래 부르네.

삘릴리 생황 불고, 둥따당 비파 소리에

고조되는 노래 가락.


무녀는 신들린 듯 고운 옷 너훌너훌

향기 가득 넘쳐흐르는 제단,

어우러지는 오음五音의 합주.



황홀한 편종 연주를 들으며 나는 자꾸만 그 옛날 초나라 사람들의 '영천제迎天祭'를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중하면서도 조용한 선율과 함께 등장한 제사장 복장의 남자 악사.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씩 합주에 동참하여 조금씩 가락을 높여 가는 여자 악사들이 연출하는 그 장면은 <동황태일>의 노래 말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편종과 어우러진 오음 합주의 그 음률은 오랫동안 중국의 남방 문화를 그리워해 왔던 한 이방인을 시공時空의 방랑자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2,400년 전 초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하늘님을 모시는 장중한 제사를 오랫동안 숨 죽이고 지켜보았다. 장엄하고 경건한 제사였다.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연가



《초사》에 수록된 작품 중 제일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누구나 굴원의 자전적 장편시 <이소離騷>를 들 것이다. 하지만 가장《초사》적인 작품은 이 지역의 특수한 풍속과 습관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구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황태일 東皇太一> : 하늘님에게 제사하는 장면

<운중군 雲中君> : 구름의 신(여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상군 湘君> : 상강의 신(남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상부인 湘夫人> : 상강의 신(여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대사명 大司命> : 수명(목숨)의 신(남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소사명 少司命> : 수명(목숨)의 신(여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동군 東君> : 태양의 신에게 제사하는 내용
<하백 河伯> : 강물의 신(남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산귀 山鬼> : 산의 요정(여성)에게 제사하는 내용
<국상 國殤> : 전몰용사에게 제사하는 내용
<예혼 禮魂> : 제사를 마칠 때 부르는 노래.


 <구가九歌>는 모두 10 종류의 신에게 제사드리는 11 수로 구성된 무가巫歌다. 그런데 왜 하필 굴원은 이 작품의 이름을 <구가>라고 지었을까? 학자들마다 설이 구구하다. 예컨대 그중 <상군>과 <상부인>, <대사명>과 <소사명> 같은 작품은 비슷한 성격이니까 독립 계산하지 말고 각기 한 편으로 따지면 아홉 편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논쟁이다.


나는 '아홉'이란 숫자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학자님들이 영 못마땅스럽다. 어차피 '구九'는 '오래될 구久'와 발음이 같아서 '영원'이란 의미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홉'이라는 숫자에 그렇게 목을 매느니 그냥 '영원한 노래' 또는 '영혼의 노래' 그 정도로 해석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후세 화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산의 요정 山鬼>이다. 남송 시대. 작가 미상. 미국 보스턴 박물관 소장.


많은 문학사 서적들은 “<구가>는 인人적이라기보다는 신神적이며,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영靈적”이라고 말한다. <동황태일>의 분위기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구가>의 다른 작품마저 이렇게 장중한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그들의 하늘님 '동황태일'은 매우 특수한 존재이므로 예외로 쳐야 한다. <구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현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먼저 초나라 사람들의 제사는 향불을 피우고 절을 올리며 주문을 외우는 식의 정靜적인 제사가 아니다. 그들의 제사는 반드시 남자 박수와 여자 무당이 함께 등장하여 춤을 추고 노래하며 신의 강림을 기원하는, 대단히 역동적인 성격의 것이다. 노래 가사도 그러하거니와,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아마도 증후을 편종 오케스트라가 들려준 멜로디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었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왜냐고? 신의 역할을 맡은 박수무당과 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여자 무당의 대화를 살펴보시라. 이건 신에게 드리는 경건한 제사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란 말일까. 상강湘江의 신이 강림하기를 기다리는 <상군湘君>의 일부를 보자.



①은 여자 제사장.
②는 강의 신, 상군의 역할을 맡은 남자 박수무당.


① 어찌 이리 더디 더디 오시나요?

    아아, 누가 모래섬에서 님을 부여잡으시나.  

君不行兮夷猶, 蹇誰留兮中洲?     

 

② 화려한 옷 차려입고, 계수 배에 올라타서 화살같이 나아간다.

    원상沅湘의 파도와 물결이여!

    모두 내게 복종하여 잠잠해질 지어다!!!     

美要眇兮宜脩, 沛吾乘兮桂舟. 令沅湘兮無波, 使江水兮安流!      


①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은 오지 않으시니,

    퉁소 불며 퉁소 불며 나는 누굴 생각할까!     

望夫君兮未來, 吹參差兮誰思!


② 용마차야, 날아라!

    북녘 하늘 저 끝까지 단숨에 내달려라!

    동정호로 기수를 돌려보자.

    벽려초로 선창을 꾸며놓고, 혜초 잎의 장막을 드리우고

    난초 잎의 깃발을 꽂아놓고, 손초 꺾어 노를 삼아 거침없이 나아가자!     

駕飛龍兮北征, 邅吾道兮洞庭. 薛荔柏兮蕙綢, 蓀橈兮蘭旌!     


……  중략 ……     


① 당신의 그 위엄을 저 멀리서 보여주며,

    나에게는 나에게는 어찌 아니 오시나요.

……  (중략) ……

    참고 참은 눈물방울 주룩주룩 흐르네요.

    괴롭도록 그리워요, 괴롭도록 보고파요.

揚靈兮未極, …… 橫流涕兮潺湲, 隱思君兮陫側.  



이게 신에게 드리는 경건한 제사란 말인가? 영락없이 애인에게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과 어느 무정한 남자의 야속한 사랑 이야기 아닌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한 마당의 신파극 연애 스토리라고 보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러니 그 멜로디가 장엄하고 엄숙하고 경건할까? 그럴 리가!!!


사랑해요, 보고파요. 어디 계셔요? 빨리 좀 오시라니깐요? 꽉 안아주세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어허, 싸나이 가는 길을 네 어찌 가로막는단 말이냐! 


울고 짜고, 인간 세상 희노애락애오욕의 생생한 감정이 곳곳마다 예서 제서 춤을 춘다. 그러니 그 멜로디 또한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부르짖고 때로는 기뻐하며 때로는 슬피 울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증후을 편종 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약간의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너무 점잔을 부린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인신人神 연애'라고 부른다. <구가>는 거의 모든 작품이 이런 성격을 띠고 있는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연가'다.


인류학 시각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시 초민의 경우, 심지어 제단에서 '신'과의 성행위까지 했다고 한다. 인류가 이제 막 농경 사회로 접어들었을 무렵, 식물의 생장과 인류의 생식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한 원시 초민들은 생식 행위의 표현으로 식물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던 것이다.


훗날 지혜의 발전과 더불어 직접적 노골적인 성행위의 표현은 점차 고도의 상징적 표현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게 바로 <구가>에 나타나는 인신 연애의 형태다. 이렇듯 <구가>는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사후의 영혼과 귀신들의 노래가 아니고, 오히려 초나라 사람들의 충만한 생명력을 담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노래라 하겠다.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대로라면 <구가>는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음악인 셈. 역설적으로 생동감과 생명력이 충만하여 후세 예술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소재가 되었다.  

(좌) 쉬뻬이홍徐悲鴻, <산의 요정 山鬼> 1934. (우) 왕타오王濤, <산의 요정 山鬼>, 1987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


엇, 이게 뭐야? 증후을 편종 오케스트라단이 갑자기 분위기를 일신하고 귀에 익은 팝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Yesterday once more>, <El condor pasa>, <Sound of silence>... 세상에! 2,400년 전 그 옛날 동방 세계의 악기로 현대 서방 세계의 팝송을 연주해 내다니! 그것도 음악 문외한인 나조차도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주로 서양인들로 이루어진 방청객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팝송은 원래 이런 악기로 이렇게 연주하는 거야! 


중국의 고대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씨익 웃으며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악기 연주자들의 고혹적인 매무새도 전혀 변한 게 없이 여전히 자연스럽다. 신이 난 방청객들이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수천 년의 시간, 동/서방 세계의 서로 다른 공간을 단숨에 극복해 내는 음악의 놀라운 친화력이었다.



기득권의 음악 통제



교과서는 황하 중류 지역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장강 일대의 문명이 황하 유역보다 훨씬 늦게 싹텄고, 심지어 장강 이남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미개한 오랑캐들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착각이었다. 최근 잇단 고고학의 발굴은 그런 인식이 심각한 편견임을 알려준다. 특히 증후을 편종의 출현은 당시 초나라의 문화가 중원의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우수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음악은 그 시대와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고대 동아시아의 음악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사마천《사기 史記》에 의하면 약 3,000년 전부터 약 2,500년 전에 이르기까지 황하 중류 지역에 유행하던 노래가 약 3,000곡이나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시라. 말이 3,000이지,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 아닌가. 오늘날처럼 악보를 만들어 돌린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자로 기록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소리로 전파된 노래가 3,000개나 되었다니! 아무리 사마천 말이라지만 좀처럼 믿기가 어렵다. 하지만 3,000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주아주 많은 노래가 있었고 음악 문화가 크게 흥성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중 공자는 약 300곡의 노래를 선정하여 유가의 첫 번째 경전으로 삼았다. 바로 《시경》이다. 공자가 이렇게 노래를 중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이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고 치유하고 완성시켜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음악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 (인간의 본성은) 시에 의해 촉발되고, 예禮에 의해 확립되며, 음악에 의해 완성된다.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論語 · 태백泰伯 》

2.  아하, 음악이 무엇인지 알 것 같도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하고, 이어지는 선율은 순결한 듯, 밝고 맑아야 하는 것 같구나! 끊일 듯 이어지는 여운이 있어야 하는구나! 그렇게 해서 인성人性의 도야陶冶를 이루어주는 것이로구나!
"樂, 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논어 · 팔일八佾》


공자는 모든 소리 중에서도 특히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선율, 이른바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멜로디가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시와 예와 음악 교육을 중시한 이유는 딱 한 가지! 다 함께 어울려 싱그럽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 즉 대동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문물을 정리해 놓은 경전인《예禮》에서, 음악에 관한 부분만 따로 추출하여 《악樂》이라는 유가 경전의 하나로 독립시킨 의도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유방劉邦이 한나라를 세우고 난 후, 언제부터인가 공자가 경전으로 독립시켜 놓은 《악경樂經》이 슬며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그 책 속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알 수가 있나. 진짜 이상한 일은 그다음이다. 그 무렵 경전《예禮》에 세 개의 분파가 생겨났는데, 그중 《예기禮記》라는 책이 새롭게 경전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속을 펼쳐보니... 어랍쇼? 떠억~ 하니 《악기樂記》라는 챕터가 여기 있네? 그 결과, 후세 학자들이 헬렐레... 이게 어찌 된 일이람... 헷갈려했다는 이야기다.


친절 무쌍한 소오생이 상황을 정리하여 깔끔하게 이야기해 드리겠다.


(1) 공자는 《예》에서 음악 관련 내용을 따로 독립시켜 《악》이라는 경전을 만들었다. 그만큼 음악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다.

(2) 그런데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공자가 독립시켰던 그 경전 《악》이 분실되었다. 실수였을까?

(3) 새로운 경전 《예기禮記》가 등장했다. 근데 그 속을 보니 음악을 다룬 《악기》라는 챕터가 여기 있네?

(4) 《악》이 《악기》로 바뀐 것은, 음악의 지위가 독립된 경전에서 다른 경전의 종속품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 왜 그랬을까?

 

《악》의 내용을 모르니 후세의 《악기》와 내용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 이유를 단언할 수도 없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공자의 유가 사상이 유교로 변질되어 정치 집단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분명 존재한다.


공자의 유가儒家가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형식에서의 해방이다. 단, 과유불급! 음란함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했다. 둘째. 사랑(인 仁)을 도구로 한, 상처받은 인간 내면의 치유와 힐링이다. 무엇을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답고 싱그러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유교儒敎가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형식을 통한 구속과 통제다. 무엇을 위해? 정권을 장악한 기득권자들이 지네들 통치하기 쉽도록 인간을 옥죄기 위해서. 유가儒家와 유교儒敎는 한 글자 차이지만, 호리지차毫釐之差가 천리지차千里之差라고, 터럭 하나 차이가 천리 머나먼 타향이 된 것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아무튼 사연이 그러하니, 음악도 필경은 그와 유사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 어찌 되었겠는가? 그렇게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쳐나던 중국의 음악도, 우리나라의 음악도, 그 결과 기득권층의 통제를 받아 사정없이 쭈그러들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로부터 동아시아 역대의 통치 세력들은 늘 백성들의 민가를 수집하며, 노래를 통제하고 민심을 억제했다. 가혹한 검열에 들어간 것이다. 혹시... 지금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끊임없이 문화예술계를 좌지우지하려 시도하고, 언론 탄압 입틀막을 넘어서서 아예 자신 세력의 종속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현실을, 그대여! 정녕 모르신다는 말인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혹은 눈을 감고 짐짓 모른 체하며 이어폰 굳게 끼고 현실과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힌다면... 조만간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가 주장한 것처럼 전쟁을 위한 노래, 임금과 독재자에게 딸랑딸랑 아부하고 충성을 다짐하며 단결하자는, 노래 아닌 노래만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면, 봄바람에게 계속 자유를 허할 것인가?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차갑게 단절된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연결하고 안아줄 수 있도록, 허허로운 우리의 영혼을 초콜릿처럼 보드랍고 달콤하고 상큼하게 채워나갈 수 있도록, 봄바람에게 계속해서 싱그러운 자유를 허할 것인가? 단지 봄날 한낮 잠깐동안의 따스한 자유만 주어졌는데도, 우리는 서태지를, BTS를, K- Culture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그런 저력이 있다.


어찌할 것인가? 선택은 음악이 아닌, 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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