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대 초나라의 삼려대부 굴원屈原(B.C.340~B.C.278)이 지은 노래, <초혼招魂>의 일부를 발췌 번역해 보았다. 초나라 회왕懷王은 굴원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秦나라 소왕의 초청을 받고 진나라로 갔다가 억류되어 끝내 그곳에서 울화병으로 병사한다. 그 소식을 접한 굴원은 애절하게 통곡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임금님의 영혼을 부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넋이 나간 자기 자신의 영혼을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혹자들은 송옥宋玉이 지었다고도 한다.)
'초혼招魂'은 망자의 혼령을 부르는 행위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하다. 죽은 자를 붙잡기 위한 남은 자의 처절한 외침이다. 죽은 사람이 생시에 입던 윗옷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 서서,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 부분을 잡은 뒤 북쪽을 향하여 ‘아무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세 번 부른다. 왕이 훙薨하면 내관이 궁궐 지붕에 올라가 곤룡포를 세 번 휘두르며 "상위복"하고 외치는 장면을 사극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진정한 공부란 강의실 밖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30년 교직 생활 동안 매년 답사, 연수 등으로 학생 단체를 수없이 인솔했다. 중국 동부의 대도시들은 물론이고, 수십 명 학생들을 데리고 타클라마칸 사막도 넘어가고 파미르고원 티베트고원까지 올라갔다. 수학여행에 우리나라 문화 답사까지 포함하면 아마 100번도 넘게 인솔했을 것이다. 늘 안전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히 퇴직한 게 천행이다.
그러니 4월 16일이 남의 일 같을 리가 없다. 천행으로 살아나셨다가 자책하며 그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교감 선생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분의 마지막 일거수일투족이 어떠하셨을지, 눈에 선명하게 밟힌다.
나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싫다. 누군가는 4월이 참 슬프단다. 그러나 사실 5월은 더욱 슬프고, 6월은 더욱더 슬프다. 슬프지 않은 때가 없다. 역사학을 전공하려다 들여다보기가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파서 도피해 버린 이유다. 이제는 거기에 더하여 이태원도 슬프고 채상병도 슬프다. 무성한 슬픔이 우리의 역사를 온통 도배해버리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이 어둠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내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김소월의 <초혼>과 가수 장윤정이 부른 노래 <초혼>이 있지만, 송소희의 <봄날>로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