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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07. 2024

03. 모순의 현실, 어떻게 살 것인가

굴원의 <어부사>와 노무현

오늘은 굴원屈原의 <어부사 漁父辭> 감상이다. 옛날 중국 장강의 중류 지역인 초나라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유행가 가사 모음집인 《초사 楚辭》중의 하나다. 굴원과 《초사》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에서도 이미 몇 번 언급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초혼>, <한식寒食과 단오端午 사이>, <둥따당 비파소리 고조되는 노랫가락>  




굴원은 중국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제법 많이 알려진 중국 선진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자전적自傳的인 장편시 <이소離騷>와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 굴원열전屈原列傳》의 간략한 기록을 통하여, 불후의 애국 시인이라는 선명한 이미지만을 남겼을 따름이다.


굴원이 역사 기록에 등장할 때, 그는 이미 초나라 회왕懷王의 절대 신임을 받는 대신이었다. 직책은 부총리 급인 좌도左徒. 그러나 초회왕은 영윤令允(총리) 자란子蘭과 대부 근상靳尙 등에게 현혹되어 점차 굴원을 괘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갈림길은 외교 정책 문제였다. 당시 천하의 국면은 이른바 전국戰國 칠웅七雄이 할거하고 있는 상황. 그중에서 황하 중부 지역에서 국세를 급속히 확장했던 진秦나라의 존재는 다른 여섯 나라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이에 여섯 나라는 세객 소진蘇秦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른바 ‘합종合縱’ 정책을 채택하였다.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제齊나라와 초나라가 얼마나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머지 네 나라, 즉 연조위한燕趙魏韓은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어서 늘 강대국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초회왕은 합종책의 중요성과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유부단한 초회왕은 때로는 친제親齊 정책을 때로는 친진親秦정책을 구사하니, 국가의 신의는 날로 추락되어 초나라는 국제무대에서 점차 고립되어 갔다.


굴원은 진나라의 야욕을 일찍이 간파하고 초회왕에게 합종책의 중요성을 누누이 진언한다. 그러나 초회왕은 진나라에 매수당한 총희寵姬 정비鄭妃와 세객 장의張儀의 세치 혀에 속아 기어이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해 버렸다. 결정적인 것은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사돈을 맺자며 국빈 방문을 요청하자 초회왕이 덜컥 응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진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억류를 당하여 마침내 사망하고 말았다. 지난번에 소개한 <초혼>은 그때 쓴 작품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초나라는 급속도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굴원은 언제, 누가 유배를 보냈을까? 진나라로 가기 전에 초회왕이 유배를 보냈을 수도 있겠고,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아들 경양왕頃襄王일 수도 있다. 유배를 한 번 갔다는 썰도 있고, 두 번 갔다는 썰도 있다. 중요하지 않다. 통과!

중국 문학의 고향, 동정호. 비좁은 삼협三峽을 빠져놓은 장강은 여기에 이르러 일망무제의 바다로 변한다. 여름에는 겨울 수량의 세 배가 넘는다. 장강 하류의 홍수를 막는 주요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누각은 중국 3대 누각 중의 하나인 악양루岳陽樓다. 나중에 다시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디로 유배를 갔을까? 이건 상식적으로 알고 있자. 동정호洞庭湖의 동남쪽으로 유입되는 멱라강汨羅江 근처다. 멱라강, 멱라강... 귀와 입에 익혀두자. 중국어 발음으로는 [mì luó jiāng] 미(↘)뤄(↗)지앙(→)이다. 구체적으로는 옥사산山 인근 하박담河泊潭(일명 굴원담)에서 투신 자살했단다.

굴원의 사당은 원래 멱라강가에 있었는데 청나라 때 옥사산 정상으로 옮겼다고 한다. 1996년 소오생이 찾아갔을 때는 그것도 모르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고생만 직싸게 하다가 허탕치고 돌아왔다. 인터넷이 있었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오늘날에는 굴자사屈子祠라는 유명 관광단지로 조성되었다니 아쉽기만 하다.

동정호(상단 부분)로 흘러 들어가는 멱라강(하단 부분). 좌측 중간은 뇌석산磊石山. 옥사산은 뇌석산의 좌측방향에 있단다. 아래 사진은 옥사산 정상에 있다는 굴원의 사당, 굴자사屈子祠 입구.

 



이 작품은 굴원과 어느 어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몇 가지 생각 거리가 출현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곰곰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첫째, 작품 속에서는 굴원의 이름이 마치 제삼자인 것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굴원이 아니라 그 제자인 송옥宋玉이 지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딱히 다른 근거는 없다. 오직 이 작품에 나타나는 분위기로 판단하는 수밖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실지?


둘째, 처세處世에 대한 고민이다.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탁하고 더러운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어떤 처세술을 지녀야 옳을까? 우리도 그들과 함께 대충 어울려 살아야 할까, 아니면 독야청청 혼자라도 맑고 고고하게 살아야 할까? 어부는 전자前者, 굴원은 후자後者의 입장을 견지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실지?


참고 삼아 말씀드린다. '배향配享'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학문이나 덕망이 높은 사람의 위패를 문묘文廟나 사당祠堂, 서원書院과 같은 곳에 모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중국 인터넷에 의하면 굴원은 물론, '어부'도 이곳에 배향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의 이미지가 나름대로 후세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대문에 걸어놓은 사진은 명나라 때 막시룡莫是龍(1537~1587)이라는 문인이 그린 <어부도>이다. 그 외에도 역대의 수많은 문인 및 화가들이 나름대로의 어부 형상을 창조해 냈다. 동방 세계의 문화콘텐츠에서 '어부'가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 모든 소스가 전부 이 <어부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사이트 바이두에서 검색되는 '어부배향 漁父配享'의 이미지다. 그런데 인터넷 만으로는 이 사진이 실제 멱라강에 띄운 모습인지, 단지 이미지에 불과한 것인지 설명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혹시 직접 가보신 독자가 계시다면 꼭 알려주셔서 소오생의 궁금증을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어부사



굴원이 쫓겨 나와

연못가를 방황하네, 노래를 읊조리네.

그 얼굴은 초췌하고

그 모습은 비쩍마른 나무더라.


어부가 그를 보고 묻는구나.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父 아니시오?

여기는 어인 일로 오신 게요?”  


굴원이 대답하여 말하누나.

"온 세상이 탁하구나, 나 홀로 깨끗하다.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舉世皆濁我獨清,眾人皆醉我獨醒

舉世皆濁我獨清,眾人皆醉我獨醒

그래서 쫓겨 온 것이라오.”

屈原既放,游於江潭,行吟澤畔,顏色憔悴,形容枯槁。
굴원이 기방 하여 유어강담하고 행음택반하니, 안색은 초췌하고 형용은 고고 터라.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何故至於斯?"
어부가 견이문지하여 왈, 자/비/삼려대부/여? 하고로 지어사 잇고?
屈原曰: "舉世皆濁我獨清,眾人皆醉我獨醒,是以見放。"
굴원 왈, 거세개탁이로되 아독청하고, 중인개취로되 아독성이라. 시이로 견방이로세.

어부가 그 말 듣고 노래한다.

 "성인聖人은 삼라만상 모든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오.

세상이 변하면 함께 변해야만 하는 법.

與世推移 (여세추이)

모두가 더러운데 당신은 어찌 아니 진흙탕질 하질 않소?

모두가 취했는데 당신은 어찌 아니 술지게미 먹질 않소?

어찌하여 당신 홀로 독야청청하시다가 스스로 쫓겨났소?”

漁父曰:"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世人皆濁,何不淈其泥而揚其波?
어부 왈, 성인은 불/응체어물하니, 이능/여세추이라. 세인이 개탁이면 하불/굴기니/이/양기파 잇고?
眾人皆醉,何不餔其糟而歠其釃? 何故深思高舉,自令放為?"
중인이 개취커든 하불/포기조/이/철기시 잇고? 하고로 심사고거하여 자령방위이신가?

굴원이 이 말 듣고 말하누나.

"머리를 감고 나면 갓에 묻은 먼지를 털어 쓰고,

목욕을 하고 나면 옷에 묻은 먼지 털어 입는다고 하질 않소?

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

고결한 이 내 몸에 이 세상의 더러움을 어찌 뒤집어쓸 수 있으리오?

소상강簫湘江 물속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葬事를 치를지언정

순백의 이 내 몸에 세속의 먼지를 어찌 뒤집어쓸 수 있으리오?”

屈原曰:“吾聞之,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
굴원이 왈, 오문지컨대 신목자는 필탄관이요, 신욕자는 필진의 라!
安能以身之察察,受物之汶汶者乎?寧赴湘流,葬於江魚之腹中。
안능/이/신지찰찰에 수/물지문문자호잇고? 영부상류하여 장어/강어지복중이로세!
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俗之塵埃乎?”
안능/이/호호지백에 이몽/세속지진애호인가!"

어부가 빙그레 웃는구나.

돛대를 두드리고 노래하며 떠나가네.

“창랑의 물 맑거들랑 갓끈을 씻세 그녀,

창랑의 물 탁하걸랑 더러운 발을 닦세!”

滄浪之水清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종적이 사라지니 적막만이 감도누나.

漁父莞爾而笑,鼓枻而去,乃歌曰:
어부가 완이이소 하며 고설하며 이거로다. 내/가왈,
 “滄浪之水清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창랑지수가 청혜이면 가이/탁오영이고, 창랑지수가 탁혜이면 가이/탁아족 아니던가.
遂去,不復與言。
수거하니 불부여언이로다.



작품 감상



볼드체로 표기한 부분은 특별히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다. 굴원과 어부가 주고받는 대화의 핵심이다. 시간 나면 소리 내어 낭독하며 한자로도 꼭 함께 익혀두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자다가도 떡 하나가 더 생긴다.


굴원: 온 세상이 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네.

舉世皆濁我獨淸 (거세개탁/아독청)

眾人皆醉我獨醒 (중인개취/아독성)


어부: 세상이 변하면 함께 변해야만 하는 법.

與世推移 (여세추이)


굴원: 머리를 감고 나면 갓에 묻은 먼지를 털어 쓰고, 목욕을 하고 나면 옷에 묻은 먼지 털어 입는다오!

新沐者必彈冠, (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 (신욕자/필진의)


어부: “창랑의 물 맑거들랑 갓끈을 씻세 그녀, 창랑의 물 탁하걸랑 더러운 발을 닦세!”

滄浪之水清兮,可以濯吾纓,(창랑지수가 청혜하면, 가이탁오영이오)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창랑지수가 탁혜거든, 가이탁오족 아니더냐!)

※ 이 부분은 <유자가孺子歌>라는 제목으로 전래되던 노래다. '유자孺子'는 '젊은 남자, 총각'이라는 뜻.




우선 지은이가 누구인지, 그 얘기부터 해보자. 혹자들은 이 작품을 굴원이 아니라 송옥이 지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 계속 "굴원이 말하노라" 하는 부분에서 자기 스스로 그렇게 지칭한다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유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


소오생 생각에도 이 작품을 굴원이 지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속에 계속 굴원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작가가 마치 남 얘기하듯 자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법. 그런 사례는 문학사에 수두룩하게 많이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우선 이 작품에서 굴원과 어부가 주고받은 대화의 승자가 누구일까 생각해 보자. 둘 다 막상막하 같지만 굳이 따진다면 아무래도 대미를 장식하는 어부가 한 수 위의 수준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굴원의 대표작 <이소>에서 엿보이는 그 내면의 경계는 분명 여기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다음에 <이소>를 감상할 때 자세히 살펴보겠거니와, 두 작품에서 엿보이는 내면세계의 수준은 사뭇 달라 보인다.


굴원 창작설說의 주요 근거는 사마천의 《사기 · 굴원열전》이다. 하지만 사마천도 굴원이 위와 비슷한 내용의 대화를 어부와 주고받았다고 기록했을 뿐, 그가 <어부사>라는 작품의 작가라고 단정 지어 말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 굴원은 단지 <어부사>의 등장인물일 뿐, 그가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창작했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초사》의 다른 노래와는 달리 이 작품은 유달리 조금씩 내용이 다른 판본이 많다. 그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어부사>가 어느 한 개인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알려진 굴원과 어부의 대화를 바탕으로 점차 지금의 형태를 갖춘 민중의 집단 창작인 구전문학 작품임을 알려주유력한 방증이 되지 않을까.




자, 이번에는 처세의 방법에 대해 토론해 보자.

여러분은 어떠신가? 굴원과 어부, 누구의 편이신가?


어부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그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라고 말한다. 참으로 멋진 삶의 지혜 같아 보인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여세추이 與世推移", 세상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삶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 아닐까. 에이, 왜 이러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대충 삽시다~ 오케이? 그런 논리는 자칫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을 감고 넘어가자는 이기주의와 기회주의로 함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굴원의 논리는 어떨까? 이 세상은 온통 탁하고 더러운데, 혼자만 맑고 혼자만 깨어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십중팔구 왕따로 전락하기 쉽지 않을까? 부조리한 사회를 혼자만의 신념으로 개혁할 수 있는 걸까? 만약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칫 독선과 독단이라는 비난과 함께 세상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받고 끝내 극단적인 실의에 빠질 가능성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어부와 굴원, 양 극단의 '중용中庸'을 취해야만 한다고. 리얼리?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그냥 넘어가기가 뭔가 거시기하니까 한 마디 폼 잡아보신 건 아니신지? 말은 쉽다. 하지만 그분들이 말하는 그 '중용'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기왕 가르쳐주시려면 제발 좀 구체적으로 '중용'의 실천 방법을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인물,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노무현이다. 굴원 못지않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맑고 곱게 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굴원 못지않게 기득권 세력의 온갖 조롱과 핍박을 받았던 사람, 오죽하면 바보 노무현 소리까지 들어가며 자신의 신념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사람, 그리고 결국 굴원처럼 비극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무리했다는 점 등등, 여러모로 굴원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2009년 5월 23일. 지지 여부를 떠나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소오생의 딸내미는 특히 큰 충격에 빠졌다. 인파를 피해 오밤중에 함께 덕수궁 골목차려진 그의 빈소를 찾았다. 딸내미는 자꾸만 운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 거냐고 내게 묻는다.


평소 나는 딸내미에게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저도 다 컸으니 알아서 판단하겠지 싶었다. 단지 이 말만은 종종 해주었다.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과는 서로 함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道不同, 不相爲謀. 《논어 · 위령공衛靈公》


그런데 딸내미 왈, 어느 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더란다. 주변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한결 같이 모두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모두 함께 하지 말아야 한다니. 공자님 말씀 듣다가 왕따가 되지는 않을지 너무나 우울하단다.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 낳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단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저렇게 조롱받고 핍박받다가 저런 식으로 떠나가는 걸 보니 더욱더 우울하단다.


나도 가슴이 꽉 막힌다.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하나. 기껏해야 생각난 게 또 공자님 말씀이다. '화이부동 和而不同'! 중국 지성인들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금과옥조로 삼는 말이었다.

군자는 어울리되 똑같은 놈이 되지 않고, 소인배는 똑같은 놈이 되면서 어울리지 못한다.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논어 · 자로》

그러니까 너도 설령 너랑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슬기롭고 조화롭게 티 안 내면서 잘 어울려야 한단다. 하지만 절대 그자들과 똑같은 부류가 되면 안 돼. 알았지?




그렇게 말했지만 우선 나부터도 납득이 잘 안 된다. '화이부동 和而不同'이라니...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슬기롭고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것인지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또 하릴없이 화두로 삼고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논어 · 이인里仁》에 이런 말이 눈에 뜨였다.

부모를 섬길 때는 몇 번이고 간언해야 한다. 부모님께서 내 뜻을 따르지 않으시면 더욱 공경하여 부모님 뜻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정이 수고스러워도 원망해서는 안된다.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간 諫'이란 무엇인가? 윗사람한테 바른말을 하는 거다. 윗사람한테 당신 하는 일이 틀렸소, 고치셔야 하오! 위험한 말을 하는 거다. 우리는 흔히 유교는 임금님이나 윗사람이나 부모님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유교 얘기고 공자님 생각은 다르다. 공자의 유가 사상과 유교는 글자 차이지만 사실은 천만 리 머나먼 타향이라고 소오생이 누차 강조한 있지 않은가.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자식이 부모님 말씀 잘 들어서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안 그러신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식을 당신 대신 당신의 욕망을 채워줘야 하는 당신의 소유물과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 자식 간에는 늘 충돌이 많은 법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공자는 분명히 말한다. 설령 부모님이라도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잡아드려야 한다고. 문제는 방법론이다. 당신께서 잘못하셨노라고 큰소리로 대들면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실은 부모님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누구라도 싸움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그러니 어떤 방법을 쓰라고? 한두 번에 빨리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고 끈질기게 몇 번이고 간언을 해야 한단다. 어떤 식으로? 소리치고 따지면서? 아, 그럴수록 더 역효과라니깐? 부모님 기분 좋으실 때 골라서, 용돈이라도 드리면서,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면서, 아유 엄마 힘드시죠?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 언어로 딸랑딸랑~ 기분 맞춰 드리면서 눈치껏 살짜쿵~ 말씀을 드리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아, 그게 당연하다니까? 수십 년 간 당신께서 살아오며 쌓아 올린 가치관이 그렇게 금방 바뀔 리가 있겠는가! 빨리 효과를 보려는 독자님 당신이야말로 도둑넘 심보다. 효과가 없는 같으면 작전방글방글 웃으면서 얼른 후퇴하라는 이야기.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자꾸만 시도하라는 이야기. 그 과정이 번거롭다고 짜증 내고 원망한다면 도로아미타불~ 도로 말짱 꽝이라는 이야기다.


평소에는 언제나 부모님 말씀 잘 듣고(작전상 잘 듣는 척하고 ^^;;), 초콜릿 언어로 딸랑딸랑 부모님한테 아부도 하고(꿀 팁! 돈으로 아부하지 말아라. 말과 행동으로 아부해야 진짜 효과!), 작전상 안마도 해드리고 작전상 설거지도 해드려라. 그래서 환심을 잔뜩 얻어놓아라. 사이사이 옳은 말도 아주 조금씩 꺼냈다가 아차 싶으면 얼른 후퇴하라!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면... 그때는 단호하고 과감하게, 그러나 여전히 보드랍고 따스한 목소리로, 근데요 엄마, 이번에는 이렇게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부모님도 자식을 인정하고 그래, 니 뜻이 정 그렇다면 알아서 한번 해보렴. 마지못한 척 져주시게 되어있다는 게 '화이부동' 공자님 말씀의 요지이며, 그게 진짜 '중용'의 구체적 실천 강령이다. 아시겠는가? 아멘으로 믿으시오~!!! 크크


그게 어디 옛날에, 부모님한테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고, 직장 상사에게도 적용할 수 있고, 모든 인간관계에 다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다. 공자의 그런 수법을 후세 학자들은 '온유돈후 溫柔敦厚'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런 초콜릿 같은 '온유돈후'의 능력을 가장 잘 배양시켜 주는 공부가 바로 '문학'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맺어갈 때 어떻게 '화이부동'할 것인지, 공자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겠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다르다.


노무현이 '화이부동'을 시도하지 않았던가? 아니었다. 그는 반대 정당에게 대연정을 제시했을 정도로 끊임없이 '조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저 조롱과 모욕과 핍박뿐이었다. 심지어는 자기편 정당에게도 욕을 먹고 버림받았을 정도였다. 무엇이 그의 문제였을까?


'중용'의 구체적 실천 강령에는 '화이부동' 외에도 '반경합도 反經合道'가 있다. '경經'에는 위배되지만 '도道'에는 부합한다는 뜻. '경經'이란 '불변의 진리'라는 뜻. 늘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상도 常道'라고도 한다. '성경', '불경', '사서삼경' 등은 각기 기독교 불교 유교의 '상도'가 담긴 경전들이다.


하지만 '상도'는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연역법의 명제다. 그것만으로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출현하는 삶의 다양성에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반경합도'의 논리다. '반경합도'는 중국 위정자들이 또 하나의 금과옥조로 삼는 말이다.


'반경합도'를 다른 말로 하면 임기응변의 '권도權道'라고 할 수 있다. '권權'은 또 무엇일까? 《맹자 · 이루離婁》를 보면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뻗어 구해주는 것이 권權"이란다. '상도 常道'에는 위배되지만 '도'에는 부합하는 임기응변의 행위, 그것이 '권'이라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 문인이자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소동파는 <대신론 大臣論>이란 글에서 '권'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풀이한다.

소인배 무리들은 자신들이 천하의 원망을 받고 있으며 군자들이 용서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밤낮으로 계책을 꾸며 어느 날 갑자기 닥칠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재앙에 대비한다. (중략) 그러므로 군자는 마땅히 안으로는 군자들끼리의 사귐을 두텁게 하여 은밀히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리고 밖으로는 양동작전을 구사하여 소인배 무리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중략)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고 기회가 오면 소인배 무리들을 일거에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만 힘도 절약하고 후환도 없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족했던 것, 바로 '권'이었다. 그것은 사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이부동'만 알았지, 위정자로서 꼭 필요한 '반경합도'의 '권도'를 몰랐다. 하물며 그들은 이미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던가. '권력'이란 '권도를 사용할 수 있는 파워'를 말하는 것 아닌가. '권도'는 오직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과는 전혀 다른 성격임을 알아야 했다. 그런데도 주어진 '권력'과 '권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 그래서 결국 민족의 호연 정기를 바로 잡지 못한 것은 역사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필부에게는 '화이부동'의 정신, 그리고 '온유돈후'와 '기간 幾諫'의 실천 요령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할 위정자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더하여 반드시 '반경합도'의 '권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어부사>와 굴원의 죽음이 후세의 중국 리더 그룹에게 가르쳐준 소중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는 이야기가 있다. '자살'에 대한 문제다.


굴원은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멱라강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했다. 그런데 후세 동아시아 사람들은 그를 애국 시인이라며 두고두고 칭송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굴원과 비슷한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자살한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 경박하게 목숨을 버렸다고 비난을 받는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소위 매스컴이라고 불리는 '집단'에서는 대통령 직책을 가졌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맹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굴원은 왜 동아시아 역사에서 두고두고 칭송을 받는 걸까? 설마 하니 중국과 우리나라의 자살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걸까? 그리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살 행위가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일까? 반대로 자살이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비난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OECD 국가 중 해마다 자살률 1위의 국가이니만큼 더욱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본격적으로 토론해 보기로 하자. 어차피 <이소>를 감상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진도가 나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계속 >




◎ 대문 사진: 명, 막시룡莫是龍(1537~1587)<어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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