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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15. 2024

04. 다시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가며

반고 신화와 아프락사스의 알

맴맴맴맴 @매미 작가님이 요새 '시詩의 방언'이 터졌다. 매미 작가님 삶의 하나하나 모든 디테일에, 신기하고 현란한 그림과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너무나도 유니크한 시의 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 음악회>, <좋소의 아침체조클릭   


왕년에 교회 다닐 때 새벽 기도를 가면 '방언'이라는 걸 하는 분들이 있었다. 요새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며 방언의 은사를 입으신 분들을 할렐루야! 입을 모아 찬송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방언은 영 별로다. 하지만 '시詩의 방언'은 충분히 할렐루야!!! 칭송받고도 남을 만하다. 그래서 작가님한테 댓글을 달았다. 매미 작가님과 주고받은 사연을 잠시 소개한다. 




소오생 May 14. 2024

오옷
매미 님이
한층 누각 위로 올라가셨네?


매미 May 14. 2024

덩실덩실 두둥실~폴짝, 폴짝, 개굴개굴 맴맴 ♬


소오생 May 14. 2024

@매미 한층 누각 위에 올라간다... 당나라 왕지환 시구랍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장저민 만나서 한중 국교 수립할 때 장저민이 인용한 말인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라서 개망신당했다는 ㅋㅋ 그래서 그 후로 우리나라 중국한테 계속 개호구 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답니다 ㅎㅎㅎ


매미 May 14. 2024

@소오생 매미가 오생님으로부터 배웁니다. 인터넷 검색을 마쳤습니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이 지은 등관작루라는 시이고, 갱상일층루 라는 싯구는 ‘더 멀리 보기 위하여 누각 한 층을 더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더 좋은 시를 찾기 위해 한 층 더 올라가는 각오를 다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등관작루>는 유튭 검색하여 소리로 들어보려 합니다.




헉! 

유튜브로 검색해서 그 시의 소리를 배우시겠다고? 놀라운 순발력에 이 엄청난 실천력이라니... 


근데 소오생은 걱정이 태산이다. 기왕 배우신다면 제대로 잘 배우셔야 할 텐데... 이긍 내가 몬 산다... 공연히 씰데없는 걱정에 사로잡혀 어뜩하지... 고민하다가, 중당 시대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 백락천)주장을 떠올린다. 



글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써야 하고,

시는 사건에 맞추어 창작해야 한다.

文章合爲時而著詩歌合爲事而作



그래, 기왕지사 이런 '사건'이 발생했으니,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할 얘기였으니 이 얘기부터 먼저 당겨서 하자 싶었다. 그리하여 [중국 시와 중국 문화] 매거진에서 오늘 '발행'할 예정이었던 <굴원, 이소 감상>을 잠시 뒤로 미루고, 부랴부랴 긴급 편성으로 당나라 시인 왕지환 王之渙(688-742)<관작루에 올라 登鸛雀樓>를 먼저 소개, 감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이 '사건'은 비록 매미 작가님 때문에 촉발된 일이긴 하지만, 사실 그 내용은 우리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과감하게 망치를 들어 아프락사스의 알을 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려 하는 @보노 작가님, @이제은 작가님, @오서하 작가님을 위시한 우리 모두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기본 상식이다. (거명한 작가 님들은 '알'에 대해서 댓글을 주고받았던 분들이다.)




다시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가며



白日依山盡黃河入海流 

백일/의산진,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更上一層樓.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


하얀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누런 강은 바다로 들어가 흐른다 

천리 밖에 시선을 다하고자

다시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간다

▷ 黃河 : 많은 서적에서 고유명사 '황하'로 번역하고 있다. 아니다. 황하가 바다와 만나는 하류 지역은 땅이 물러서 건축물을 세울 수가 없다. 지금 현재 관작루라는 누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나라 때 관작루는 장강 하류인 양자강 하구에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황하'는 일반적인 '누런 강'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전당강錢塘江 하구에 있는 항주의 육화탑六和塔. 저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37도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곳을 방문하여 조금 더 멀리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맨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


“얘들아, 이 구절 참 좋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중국 시> 수업 시간에 이 시구를 해석해 주시고는 혼자 감탄하신다. 뭐가요? 감히 여쭤볼 용기가 없는지라 그냥 넘어가 버렸는데, 이상하게도 내내 궁금하다. 용기를 내 볼 걸 그랬나?


대통령이 죽었다며 갑자기 탱크가 학교 정문을 막았다. 학생들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딜 가서 세월을 죽이나… 어쩌다 보니 충청도 화양동계곡의 암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승방 기둥에 대련對聯이 붙어있다. 앗, 그런데 거기에 쓰여 있는 열 글자의 한자가 눈에 확 들어오네? 스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어허, 고연 놈이로세. 중국어과 다닌다는 니 눔이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아느냐? 껄껄 웃으신다. 이게 왜 승방에 걸려있는 거지? 더욱 궁금해졌다.


대만으로 유학을 갔다. 학교 정문 앞 작은 공터에 5층짜리 카페가 생겼다. 작은 테이블 두 개를 간신히 놓을 정도로 면적이 작은지라, 자리가 없으면 꽈배기 모양의 철제 계단으로 위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층층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시 구절이 붙어있네? 여기 쓰인 대로 한 층 더 올라가시오! 


며칠 뒤였다. 석사반 입학시험 기출문제를 구했다. 중국어 작문이 40% 비중이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작년도 작문 시험문제 제목이 또 그 열 글자인 것이었다. 아래의 시구절을 제목으로 작문하시오! 아하, 옛날에 과거 시험을 이렇게 보았겠구나... 헤아릴 수 있었다. 


<아프락사스의 새 > 그림: 군바리 소오생 ^^;;;


1992년 8월, 우리나라는 드디어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보통 사람, 믿어줏, 쎄요! 노태우 대통령이 강력하게 북방외교를 추진하여 드디어 상해上海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보는데, 엥? 이 구절이 또 나왔네? 만찬 자리에서 장저민江澤民 중국 주석이 “위총/치엔/리/무, 껑상/이/청/러우(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덕담을 했다는데, 우리 대통령이 이렇게 화답했다는 것이다. “마, 울나라 속담에도 퍼뜩 일나는 새가, 모이를 마이 뭉는다~ 안그카능교!” 오 마이 갓! 그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의 개호구 국가가 되었다. 


누각은 전망이 좋은 곳에 세운다. 누각에 도착하면 더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망이 좋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더 전망이 좋은 곳,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진리와 학문의 세계가 그곳에서는 보일지 모르므로. 이것이 바로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나그네이자 구도자求道者인 '학생'이 지녀야 할 간절함인 것이다. 

 

누각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알을 깬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다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다시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가고, 늘 알을 깨면서 정진하는 것이다.




사족. 장저민 왈: “위총/치엔/리/무, 껑상/이/청/러우(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자리에서 무슨 뜻으로 말일까? “오늘 양국이 국교를 수립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진정한 우방국이 되기 위해 가일층 노력합시다.” 그 뜻 아니겠는가. 


그럼 어떻게 대답했어야 했을까? 중국어는 통역에게 맡기더라도, 한 나라의 리더라면 이렇게 대응했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말씀이십니다. 양국의 진정한 우정을 위해 제가 건배를 제안하겠습니다.” 최소한 이 정도 반응은 보였어야 나라의 체면이 서는 것 아니었을까. 


참고 삼아 말하자면,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 이 열 글자는 시 구절이라기보다는 중국 지식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격언과 같은 고급중국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의 우리 측  통역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쩔쩔매다가 중국 측 통역이 도와주었다는 후일담이다. 아, 그러게 소오생한테 중국문학을 좀 배우지 그러셨어. 쯧쯧. 


더 큰 문제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응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엉뚱한 대응이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창피한 일이었는지 눈치챈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소오생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다음 날자 조선일보 보고서 알았다. 그런데 그런 수치스러운 일이 독재국가에서 버젓이 신문 기사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통령실, 외교부, 신문 기자... 등등 아무도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며칠 후, 같은 신문에서 당시 주중국 미국대사는 중국과의 만찬장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연설하며 맨 마지막에... 위총/치엔/리/무, 껑상/이/청/러우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글자로 마무리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만큼 소위 기자들이란 사람들도 이 열 글자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 


자, 사연이 이러하니 작가/독자 여러분께서도 차제에 글자를 중국어로 입에 한번 익숙하게 올려보심이 어떠하실지? 장차 어떤 상황에 부딪칠지, 혹시 여러분께서 중국 대사로 나가게 되실지 또 누가 알겠는가? 


왕지환,  <관작루에 올라 登鸛雀樓>. 낭송: 소오생



반고와 싱클레어아프락사스의 세계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axas).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알 속의 세계에서 안주하던 어린 싱클레어는 사춘기 시절 치열한 투쟁으로 알을 깨고 바깥 세계로 탈출한다. 그리고 커다란 새가 되어 아프락사스라는 신비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중국 신화에서 반고盤古는 천지를 창조한다. 알 속에서 혼수상태(그림 1, 2)로 지내던 반고는 어느 순간 도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그림 3) 파괴의 순간은 창조의 시작. 그가 떠받친 알껍데기의 절반은 하늘이 되고 절반은 땅이 된다. 반고는 엄청난 속도로 무럭무럭 키가 큰다. 우주는 그만큼 넓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을 희생하여 삼라만상을 창조한다.(그림 4)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된다. 눈물은 별이, 땀은 호수가, 피는 강물이, 털은 초목이, 호흡은 바람이 된다.(그림 5)


《데미안》의 ‘알 깨기 패러다임’과 ‘파괴가 곧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라는 컨셉은 반고의 천지창조와 동일한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싱클레어가 ‘나’를 찾아 길을 떠나는 성장 과정이라는 것도 유가와 불가의 패러다임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헤르만 헤세는 동아시아적 생각의 틀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은 게 틀림없어 보인다.

  

알을 깬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반고는 도끼로, 싱클레어는 치열한 투쟁으로 알을 깼지만, 유가 사상에서는 성의정심(誠意正心)’이라는 '간절함'으로 알을 깬다. 간절한 정성으로 ‘나’를 성장시켜야만 알을 깰 수 있는 것이다. 


성의(誠意): 의지를 간절히 하다

정심(正心): 마음을 바로 세우다     


알을 깨고 나가면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다시 가장 작은 존재가 된다. 또다시 나를 성장시켜 새로운 알, 더 큰 알을 깨며 더 큰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구도(求道), ‘나’를 찾아가는 길이며 학문의 길인 것이다. 그 과정을 왕지환은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라고 표현한 것이다.

     

작아져야만 성장할 수 있다성장해야만 알을 깨고 다시 작아질 수 있다

한 인간이 탄생하여 알을 깨고 성장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천지창조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요 우주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의 글쓰기란, 

간절함으로 알을 깨고,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이미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이 다 보이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다시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수양의 행위였다.


늘 간절함으로 알을 깨고, 정성을 다하여 또 한 층 누각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브런치 모든 작가님들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추신>

매미 작가님의 기발한 시들을 낭송 연습해보았지만, 헉... 캐안습... 딸피라서 롬곡... 

모르는 단어는 오렌, <신조어 배우기 원데이 클래스> 참조하여 공부하세용 ^^;;

챗Gpt나 기계 음악을 동원해야 가능할 듯요. 공부해서 시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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