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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22. 2024

05. 난꽃 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마시리라

굴원, <이소> 감상

오늘 감상할 작품은 굴원의 <이소離騷>다.


이천여 년 전에 장강 중류 초나라 사람들의 유행가인 《초사》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인 굴원과 작품 배경인 《초사》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초혼>, <한식寒食과 단오端午 사이>

<둥따당 비파소리 고조되는 노랫가락>

<03. 모순의 현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소離騷>에 대한 기본 상식



'이소(離騷)'의 뜻 :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시름을 호소하다'라는 뜻으로 공인되고 있다.

▷ 굴원은 중국문학 최초로 이름이 밝혀진 문학 작가다. 그 대표작이 바로 <이소>다.


▷ 한 작품 속에 현실세계와 신화세계가 함께 등장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소>는 중국 민족의 애국정신의 출발이며, 굴원은 위대한 애국 시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신화적인 측면으로는 고대 장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남방의 신화와 전설을 알려주는 중국 낭만주의의 첫출발이다.


▷ 작품 구성: <이소>는 중국 최초의 장편 서정시다. 373 구절 2,490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는 두 단락, 작게는 8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A. 현실의 세계 : 모순과 고민, 절망

1단: 프롤로그 : 가세家世, 출생, 유년 시기의 포부

2단: 정치적 환경과 모순.

3단: 추방 시기의 고민, 우울함.

4단: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절망


B. 초현실/신화의 세계 : 극복

5단: 하늘에 오르는 환상

6단: 천신天神들에게 인도해 줄 것을 기구祈求

* 모순 속의 현실도피 정서 표출

7단: 우국사군憂國思君의 선비정신 회복

8단: 에필로그 : 초현실 속의 극복, 죽음.

*허무의 도피가 아님  



A. 현실 세계 (절록)



나는 고양高陽 황제의 후예로세, 선친의 함자는 백용伯庸이로다.

호랑이 해의 호랑이 달이로세, 호랑이 날에 내가 태어났도다.

선친께서 태어난 시간을 헤아리셨네, 내게 좋은 이름 지어주셨도다.

이름은 정칙正則이로세, 자는 영균靈均이라 하셨도다.

帝高陽之苗裔兮,朕皇考曰伯庸。攝提貞于孟陬兮,惟庚寅吾以降。

皇覽揆余初度兮,肇錫余以嘉名:名余曰正則兮,字余曰靈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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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자기 소개.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나는 늘 그를 놓칠까 부지런했노라.

아침이면 높은 언덕에 올라 목란木蘭을 캐고,

저녁에는 모래섬에서 숙망宿莽을 캐었구나.

汨余若將不及兮, 恐年歲之不吾與。 朝搴阰之木蘭兮, 夕攬洲之宿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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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소오생이 가장 애송하는 시구詩句 중의 하나다.


(우) 蔣兆和, <굴원 상>. 1953. (좌)는 필자의 포토샵




향락만을 훔치는 저 무리들, 길은 아득하고 험하구나!

어찌 내 한 몸의 재앙을 두려워하리,

임금 타신 그 수레, 진흙탕에 빠질까 염려되네.

님 타신 수레 앞뒤 오고 가며 바삐 살펴, 선왕의 발자취를 따르시게 하렸더니.

이 내 마음 모르는 님, 모함꾼의 말만 듣고 진노하시누나.

惟夫黨人之偸樂兮, 路幽昧以險隘! 豈余身之憚殃兮, 恐皇輿之敗績。

忽奔走以先後兮, 及前王之踵武; 荃不察余之中情兮, 反信讒而齋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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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당시 초나라의 정치적 환경.




충직은 재앙의 화근인지 내 어이 모르랴.

재앙이 두렵다고 내 어이 입을 닫고 참을 소냐!

구천九天은 내 뜻 아시리, 이 모두가 님을 위한 뜻인 것을!

余固知謇謇之爲患兮, 忍而不能舍也! 指九天以爲正兮, 夫唯靈脩之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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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추방 시기의 고민과 우울함.



B. 초현실 세계 (절록)



아침나절 순 임금께 시름을 호소했던 창오산蒼梧山을 떠났는데,

황혼 무렵 순식간에 세상의 끝 곤륜산崑崙山에 이르렀네.

신령스런 이곳에서 잠시 잠깐 머물자니, 해님은 창졸간에 서녘 산 뒤 넘어간다.


태양의 신 의화羲和님이시여, 수레 잠깐 멈추소서.

해지는 엄자산崦嵫山에 잠시 가지 마옵소서.

아득 먼 길에서, 오르며 내리며 꼭 찾을 것 있나이다.

朝發軔蒼梧兮, 夕吾至乎縣圃. 欲少留此靈琑兮, 日忽忽其將暮。

吾令羲和珥節兮, 望崦嵫而勿迫. 路曼曼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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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하늘에 오르는 환상

現代, 范曾(1938~) 作. 하늘에 오르는 굴원.

現代, 刘旦宅(1931~2011), <이소도離騷圖>




삼려대부 굴원은 들으라!

그 옛날 강직했던 곤 임금, 필경은 우산羽山 들판에서 횡사했나니!

박학하고 결백하면 혼자 살 수 있다더냐?

정원에는 납가새풀 온갖 잡초 무성한데, 못마땅해 떠난단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사람이란 함께 얼려 무리 짓는 법이거늘, 너는 혼자 독야청청 어찌 말을 안 듣느냐!

 申申其詈予, 曰:

“鯀婞直以亡身兮, 終然殀乎羽之野! 汝何博謇而好脩兮, 紛獨有此姱節?

薋菉葹以盈室兮, 判獨離而不服。 衆不可戶說兮, 熟云察余之中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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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여수女嬃가 굴원에게 충고하는 말. 《초사》의 편자인 한나라 왕일王逸(89~158)은 여수가 굴원의 누나라고 주장. 후세 많은 학자가 그 설을 따랐다. 동의하지 않는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일 것이다.

現代, 刘旦宅(1931~2011), <이소도離騷圖> 부분.

現代, 刘旦宅(1931~2011), <이소도離騷圖> 부분.




내가 혜초 띠로 허리를 둘러서였을까?

아니면 손에 백지白芷 향초를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 마음속 고운 그 뜻은, 아홉 번 죽어도 한이 없으리.

旣替余以蕙纕兮, 又申之以攬茝,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


곤궁한 때를 나 홀로 지내리라!

차라리 죽을지언정, 쫓겨날지언정 어찌 차마 그런 모습 보이랴!

송골매가 잡새와 어울리지 아니함은 대자연이 정해준 철리 아니더냐.

吾獨困窮乎此時也! 寧溘死以流亡兮, 余不忍爲此態也!

鷙鳥之不羣兮, 自前世而固然。


뜻을 꺾고 마음 꺾고 부지하며 사는 삶은, 치욕이어라!

해맑음을 유지하다 바른 길서 죽는 삶은, 칭송이어라!

 屈心而抑志兮, 忍尤而攘詬! 伏淸白以死直兮, 固前聖之所厚!


아침 되면 난꽃 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마시리라.

노을이 물들 때는 떨어진 국화 꽃잎 먹으리라.

고운 이 내 마음 간직할 수 있다면, 초췌한 몰골인들 무엇이 서러우랴!

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 長顑頷亦何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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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그러나 굴원은 여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관으로 망해가는 초나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굴원은 그 길을 찾아 환상의 세계를 헤맨다. 네 마리 용이 모는 봉황의 수레 타고 구의산九疑山으로, 곤륜산으로 달려가 본다. 무지개 구름 타고 천성天城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낙수洛水의 여신 복비宓妃와 유융씨有娀氏의 미녀 간적簡狄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길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천하는 요원하고 광대하니, 미인이 이 땅에만 있겠는가?

망설임이 필요 없다 멀리멀리 갈지어다!

고운님을 찾는 이가 어찌 너를 버릴 손가?

어딘들 예쁜 방초芳草 없겠는가?

정든 땅만 생각 말고 드넓은 곳 바라보라!

“思九州之博大兮, 豈惟是其有女?”

曰: “勉遠逝而無狐疑兮, 孰求美而釋女? 何所獨無芳草兮, 爾何懷乎故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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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낙담한 굴원은 문득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가치관을 인정해 주고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관념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성현 공자도 뜻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지 않았던가! 어리석은 군주를 위해 헌신하느니, 참된 성군을 섬겨 천하 만민을 복되게 하는 것이 보다 옳은 일인지 모른다. 망설인 굴원은 점술사 영분靈氛에게 찾아가 하늘의 뜻을 물어본다. 그러자 영분은 점괘를 뽑아보고 위와 같이 굴원에게 말하였다.


들을 지언저! 

가서 하늘과 땅 오르내리며 뜻 맞는 이 찾을진저!

젊음이 다하기 전에, 광음光陰이 다하기 전에!

때까치 슬피 울면 들판의 향초들도 향기를 잃을지니!

及年歲之未晏兮, 時亦猶其未央! 恐鵜鴃之先鳴兮, 使夫百草爲之不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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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번에는 대제사장 무함巫咸에게 신의神意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무함 역시 똑같은 점괘를 뽑아서 똑같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홀가분해진 굴원은 고운 님을 찾아 천하를 주유할 준비를 한다.


이윽고 굴원이 장도에 오르는 날. 높은 곳에 오르는 그의 수레 앞길에 휘황찬란 밝은 빛이 비쳐왔다. 2,490자에 달하는 장편시 <이소>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시련과 갈등을 이겨낸 굴원의 앞날에 서광이 비쳐오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독자들은 그의 밝은 앞날에 안도하면서도 어쩐지 가슴이 허전해 옴을 느끼게 된다.


높은 곳에 오른 굴원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그곳이 바로 옥사산 쯤이나 되지 않았을까? 고향 땅 초나라가 굴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아득한 점과 선이 되어 지평선에 걸려있는 그 땅을 보는 순간, 굴원의 심장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새어 나온 한마디는 이러했다.

(사진 상) 동정호(상단 부분)로 흘러 들어가는 멱라강(하단 부분). 좌측 중간은 뇌석산磊石山. 옥사산은 뇌석산의 좌측방향에 있다. (사진 하) 사진 상과 같은 곳을 포토샵 처리한 것임.




아아, 그만두자!

내 님이 없는 천국에 미련 두어 무엇하랴!

어디에 계시나이까?

아름다운 다스림을 펼치실 님이여!

팽함 따라 그대 계신 곳을 찾으오리다!

已矣哉! 國無人莫我知兮, 又何懷乎故都!

旣莫足與爲美政兮, 吾將從彭咸之所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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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소>의 마지막 장면이다. 자신에게 침을 뱉고 자신을 저버린 초나라이건만, 굴원은 차마 새로운 님을 만나기 위해 그 땅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천국보다는 지옥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적지는 사실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아니겠는가? 지옥에 남은 중생을 모두 제도하고 난 후에야 성불하여 극락에 가리라 서원誓願하였다는 지장보살의 자비심! 그것이 바로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한 예수의 사랑이요, 우주의 근본 원리 아니겠는가.


모든 사랑은 하나이리라.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 하면 이성異性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사랑도 궁극적으로 나아가면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사랑과 하나의 원리로 만난다. 나라 사랑, 겨레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관, 민족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그 당시 중국인들은 그런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굴원은 지옥을 선택함으로써 참된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이 무엇인지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저 암울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 우리에게도 오로지 나라 사랑 한 마음으로 굴원처럼 죽음을 선택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굴원과 마찬가지로 칭송을 받는가?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그렇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나라 사랑의 그 마음에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굴원은 <이소>를 남겼고, 그들은 그와 같은 것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표현이다. 모든 사랑은 상대방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정성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서로 좋아하면서도 표현조차 못하고 떠나보낸다면, 그것은 은근하고 풋풋한 그리움일지언정 결코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고상한 삶을 살더라도, 아무리 맑은 사랑을 하더라도, 아무리 뛰어난 학문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말과 글과 행동으로 표현되어 나오지 못하면 남들이 어떻게 그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고 본받고 배울 수 있겠는가? 굴원의 죽음은 <이소>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아마 굴원은 저 멱라강가에 우거진 갈대 사이를 지나 천천히 강심을 향해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그가 몸에 돌을 매달고 투신자살했다는 일설은 오히려 그 죽음을 모독하는 느낌이다. 굴원이 마지막 남긴 말을 상기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가 없는 것, 육체에 연연하지 말지어다.

군자들에게 알리노니, 이제 나는 후세의 본이 되고자 하노라!

知死不可讓, 願勿愛兮。 明告君子, 吾將以爲類兮!

<구장九章․회사懷沙>의 마지막 부분



20여 년 전, 나는 <이소>를 찾아서 옛날 초나라 땅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 시간과 공간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다. 웅장한 스케일의 장강 삼협, 그 산비탈에 자리 잡은 굴원의 고향 자귀, 대낮에도 짙은 비 흩뿌리며 어스름 저녁 같던 무산 십이봉, 바다처럼 드넓은 악양의 동정호, 다도해 한려수도처럼 짙푸른 산을 끼고 돌아앉은 무한의 동호, 그리고 장강 본류보다 오히려 더 넓다 싶던 상강湘江과 원강沅江...


그 초나라의 땅 곳곳을 다니면서 늘 나의 입에 맴돌던 <이소>의 한 구절을 다시 한번 읊어본다.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나는 늘 그를 놓칠까 부지런했노라.

아침이면 높은 언덕에 올라 목란木蘭을 캐고,

저녁에는 모래섬에서 숙망宿莽을 캐었구나...


아침 되면 난꽃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마시리라.

노을이 물들 때는 떨어진 국화 꽃잎 먹으리라.

고운 이 내 마음 간직할 수 있다면, 초췌한 몰골인들 무엇이 서러우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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