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지 조, 요로 다케시 - 현익출판
휴대전화 버튼을 몇 개 누르면 쉽게 받을 수 있는 음악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지요. 금방 질리고 말 거예요. 무엇이든 그렇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노력해서 얻어낸 것은 쉽게 버리거나 그만둘 수 없어요. 처음에는 다운로드해서 들어도 좋으니, 그것을 계기로 그 뮤지션의 팬이 되어 CD를 사고, 콘서트가 언제 어디에서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고, 표를 사고, 들으러 가기를 바랍니다. 음악을 가장 감동적으로 듣는 방법은 그렇게 스스로 노력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음악은 잊을 수 없게 되지요.
- 히사이시 p.103
히사이시
'진짜배기'를 추구하는 길을 어느 정도 나아가다 보면, 내가 만들어 내고 내가 소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최고의 해답, 필연적으로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딱 들어맞는 해답이 반드시 있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요.
그건 이 요소를 이곳에 놓으면 반드시 이런 전개로 이어져야 한다는 원리주의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선택하는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무언가 최적의 해답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고 고생하는 것은 역시 다르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보면 작곡가라고 해도 자신의 감성에 의존해서 곡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또 무엇이 달라지고...... 생각하며 탐색하는 작업이지요.
- p. 226
히사이시
서머셋 몸이 쓴 <달과 6펜스>에서 타히티의 선장이 자신을 "내 나름대로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잖아요. '나는 생활 자체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을 표현한다.' 같은 의미의 말이었지요. 지금 그게 생각났어요. '내 일생은 작품이다'라는 사고방식이니까요.
요로
인간은 모두 예술가라는 사고방식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술이 약해진 거예요. 예술이란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그 분야에서 무언가 한 가지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를 보여 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거기에서 가치를 발견하느냐 하면, 자신의 일생과 겹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 일생도 그렇게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 작품에 공명 시킬 수 있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신에게 귀속시키면 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게을러요(웃음). 그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작품이어야 합니다. 각각의 일생이요.
그렇게 생각하며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타인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가 자신과 달라도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라고 서로 이해할 수 있고요.
- p.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