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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23. 2024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히사이지 조, 요로 다케시 - 현익출판






 오늘자 뉴스에 나훈아 콘서트 티켓이 암표로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데도 그걸 구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속출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부모님을 위한 효도가 돈으로 직결되는 소식이 안타깝기도 한데, 무엇 때문에 콘서트에 가는 걸 그렇게 열을 올릴까 생각해 본다.




휴대전화 버튼을 몇 개 누르면 쉽게 받을 수 있는 음악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지요. 금방 질리고 말 거예요. 무엇이든 그렇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노력해서 얻어낸 것은 쉽게 버리거나 그만둘 수 없어요. 처음에는 다운로드해서 들어도 좋으니, 그것을 계기로 그 뮤지션의 팬이 되어 CD를 사고, 콘서트가 언제 어디에서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고, 표를 사고, 들으러 가기를 바랍니다. 음악을 가장 감동적으로 듣는 방법은 그렇게 스스로 노력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음악은 잊을 수 없게 되지요.  
                                    - 히사이시 p.103



  우리는 왜 이토록 음악에 열광할까?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과시, 고양 있음을 보여주는 척도가 필요해서일까? 도처에 존재하는 소리들 중에 화음을 이루는 곡부터 시작해 휴대전화 벨소리까지 인간 삶을 관통하는 음악을 듣는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방면의 논의가 이루어진 책,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를 펼쳐 들었다.








 동물의 몸에는 신체의 내부기능을 조절하는 송과체라고 하는 기관이 있다고 한다. 뇌의 한가운데 솔방울처럼 생긴 이 기관은 빛을 감지하는 세포를 통해 빛을 내부에 가두는 특수한 구조로 인간의 성적 성숙과 일주기 리듬에 관여한다고 한다. 또 귀에는 몸의 운동을 담당하는 평형기관인 달팽이관이 존재한다. 소리를 듣는 기능보다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운동기관의 기능이 더 먼저 발달했다는 증거라는데, 반고리관의 작용으로 우리가 현기증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소리나 음악을 귀로만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몸의 다양한 부분을 통해 진동을 감지하고 있으며 실상 귀는 듣기 이전에 몸의 움직임을 위한 기능이 우선이었다고 한다. 다른 기관에 비해 퇴화하지 않은 반고리관의 작용으로 청각은 뇌의 원초적인 부분에 직접 영향을 주며 인간의 정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 되었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언어는 시각에 담을 수 없는 '시간'과 청각으로 담을 수 없는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필요로 의해 생겨난 소통의 도구이다. 하지만 이질적인 이 두 감각을 통합시켜 버린 언어로 인해 우리는 세계를 똑같이 만들어 버리게 되는 오류를 갖게 되는데, 하나의 사물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어떻게 보이는지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상대방에게 전달을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살아가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인의 감각은 소통이 아닌 단절의 문화로 변모해 가며 단적으로 통화보다 문자가 편한, 상대의 숨소리보다 명확한 기호의 글자가 편한 기계를 통해 입력하고 답을 듣는 인간과 인간과의 감각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현대 문화 속에서 더 둔화되고 퇴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대문명 속 인간의 감성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다리가 바로 음악이다.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정서를 자극하거나 흥을 돋우는 음악은 존재해서는 안 되며, 존재해도 되는 음악은 전쟁에 나갈 때나 다 같이 단결해야 할 때 사람들의 용기를 끌어올리거나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평온한 음악. 이 두 종류만 존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는 인간의 정서를 강하게, 무의미하게 흔드는 음악은 범죄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음악은 꾸준히 존재해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항상 이런 음악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음악은 단절된 현대문명 속 서로의 삶을 노크해 서로의 촉수를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선과 같다.











 고이즈미 후미오의 <사람은 왜 노래를 부르는가>라는 책에 스리랑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원시부족 사회인 이곳 사람들은 노래를 들어보면 전부 똑같이 들린다고 한다. 음이 단 두 개, 높은음과 낮은음밖에 없기 때문인데 녹음을 해보니 함께 노래하지만 서로 다른 노래를 동시에 부르고, 높낮이도 다르고, 타이밍도 맞지 않는 우리가 생각하는 합창이 아닌 매우 생소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상대방이 열심히 노래하니 나도 열심히 노래한다는 식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고이즈미는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 리듬이나 음정을 맞추는 서양식의 '합창'이 아닌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데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음악이 존재하는 근원에 대한 것이 아닐까? 잘하지 못해도 열심히 노래하며 스스로 그 문화에 속해 하나의 구성원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의 마음. 음정이나 리듬이 맞지 않는 시골 할머니의 자장가가 도리어 마음에 스며드는 이유도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놓인 아기의 편안한 잠과 행복한 날들을 위한 기원이 담겨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은,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래는 이렇게 가장 순수한 인간의 마음에 닿아 있기 때문에 언어 이전에 존재해 지금까지도 언어를 넘어 인간들을 감동시키고 연결해 주는 중요한 문화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지브리 음악감독 히사이지 조,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의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톺아보며 인간행동의 근원과 문화사 속 중요한 사건들에서 얻어내는 의미, 여러 가지 흥미로운 책들에 대한 논의, 현대문명의 단절 속에 인간인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흥미롭고 즐겁게 전개되고 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정말 유쾌한 독서의 순간이다.




히사이시

 '진짜배기'를 추구하는 길을 어느 정도 나아가다 보면, 내가 만들어 내고 내가 소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최고의 해답, 필연적으로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딱 들어맞는 해답이 반드시 있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요.

 그건 이 요소를 이곳에 놓으면 반드시 이런 전개로 이어져야 한다는 원리주의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선택하는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무언가 최적의 해답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고 고생하는 것은 역시 다르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보면 작곡가라고 해도 자신의 감성에 의존해서 곡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또 무엇이 달라지고...... 생각하며 탐색하는 작업이지요.        

                                                   - p. 226







히사이시

 서머셋 몸이 쓴 <달과 6펜스>에서 타히티의 선장이 자신을 "내 나름대로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잖아요. '나는 생활 자체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을 표현한다.' 같은 의미의 말이었지요. 지금 그게 생각났어요. '내 일생은 작품이다'라는 사고방식이니까요.



요로

 인간은 모두 예술가라는 사고방식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술이 약해진 거예요. 예술이란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그 분야에서 무언가 한 가지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를 보여 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거기에서 가치를 발견하느냐 하면, 자신의 일생과 겹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 일생도 그렇게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 작품에 공명 시킬 수 있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신에게 귀속시키면 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게을러요(웃음). 그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작품이어야 합니다. 각각의 일생이요.

 그렇게 생각하며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타인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가 자신과 달라도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라고 서로 이해할 수 있고요.              
                                             - p. 237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내가 좋아하며 와닿은 부분들을 발췌했다.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어쩜 이리 맛있는지.



제1장 음악에 감동하는 인간

제2장 감수성이 움트는 감각의 토양

제3장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제4장 인간의 의식과 말

제5장 공감과 창조

제6장 모든 인간의 예술가다



 총 6장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주제의 대화들을 통해 굳어있던 정신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권하고 싶다. 잠시의 멈춤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쉼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히사이시 조 : The name of life


https://youtu.be/WWuIEiDZbg4?si=etl2kkoYp2hkBqlr














#그래서우리는음악을듣는다

#히사이시조

#요로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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