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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09. 2024

이주하는 인류

샘 밀러 - 미래의창







 스테판 츠바이크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여권이란 새로운 신분증이 생긴 후 떠난 여행에서 그가 자신의 출신과 여행의 목적지등을 문서로 증명하고 확인받는 과정에 대해 당혹스러움과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인도여행에서 요구받는 문서들에 대한 불편함을 언급하며 인간의 이동이 증명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한다. 후에 결국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가문의 역사와 부가 있던 오스트리아를 그리워하던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며 한 인간에게 본향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치에 쫓겨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브라질로 간 그가 고향에 있었더라면 말년이 행복했을지, 척도가 없기에 가늠할 수 없는 추상명사인 행복에 대해 나에게도 물은 적이 있다. 친구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떠나버린 고향에 혼자 남아있기에 그들의 수구초심, 그 근원에 담겨있는 감정들이 늘 궁금한지도 모르겠다.









 선거운동인 한창인 요즘, 엄마가게로 점심을 먹으러 온 이들이 5살 배기 조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유명세를 얻었다. 태국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인 우리 조카의 이국적 외모와 함께 우연히 펼쳐 든 손가락 모양이 자신들이 밀고 있는 후보자 기호와 같다며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사진을 퍼뜨리는 지지자들 이야기를 들었다. 전송된 사진을 본다. 5살 조카는 그 손가락이 편했을 뿐이고,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와 친하게 사진 찍는 게 다만 어색했을 뿐이고, 내심 그 후보를 지지하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격려에 찍었을 사진일 텐데 손가락 개수의 의미를 확대해석하는 어른들 사이 조카의 어색한 미소가 내 눈에 콕 박힌다. (나와 사진을 찍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던 것도 같은데... 이건 무슨 표정인지... 음...) 아이의 감출 수 없는 독특한 모를 보며 우리는 조카를 미래의 블랙핑크의 제2의 사라 부른다. (이 호칭은 지극히 개인적인 우리 가족들의 호칭이며 그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면 무조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흥!)



 혼혈 특유의 피부색과 이목구비는 또 다른 고유성으로 보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되지 않았을 때 시골 특유의 정서인 옆집 호구조사에 능하고 미래를 점치기 좋아하시는 할머님들의 염려로 '튀기' 소리를 듣고 와 내게 묻던 앤(조카엄마)의 눈빛이 떠오른다. 단어의 의미에 대해 전혀 몰랐던 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생소한 발음의 단어를 유추하다 뒤늦게 어떤 말인지 깨닫고 분개했던 날도 있었다. 우리와 다름을 특정하던 단어. 어원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단어로 인해 상처받은 건 앤보다 그걸 알아들은 우리 남매였다. 한국말이 서툰 앤보다 그녀와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들으라 말하는 소리인가 싶을 때도 있다. 감히 우리 문화권에 새로운 존재를 들여온 이들을 응징하듯 내뱉는 낙인과 같은 단어들. 이것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보수성과 배타성이 강한 시골일수록 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이주민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주이론으로 유명한 19세기의 지리학자 E. G. 라벤슈타인은 이주민 중 남자보다 여자의 비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 가정을 지키며 안정시키는 주된 역할이 여성임을 생각한다면 이외의 주장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정교사, 하녀, 가게 점원 등으로 생계를 위해 이주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성별이 여성임을 생각한다면 라벤슈타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본다. 새롭게 발 붙인 곳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문화를 계승하며 또 다른 일가를 이루는 여성들. 그들이 갖고 있는 이주의 역사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문화가 어떻게 접목되고 변형될지 우리 조카를 보며 매우 궁금해질 때가 많다.










 인류는 이주한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는 한 곳에서 안온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정주주의부터 곳곳을 유랑하는 노매드 사이에서 자신들의 삶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때로는 강제 이주로 고통받던 이들의 삶에 귀 기울이며 인간의 이주의 역사가 갖고 있는 명암에 대해  깊이 숙고해 볼 시간을 주는 책이 있다. 샘 밀러의 <이주하는 인류>이다.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 내려간 역동의 세계사'라는 부재가 붙은 책에서 작가는 아주 오래 전의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한 이주의 역사에 대한 깊고 세밀한 분석을 한다. 호포 사피엔스에 의해 더럽고 미개하고 무지한 종들로 오인받고 존재의 멸종 인으로 내몰린 네안데르탈인을 시작으로 각 문명사에 등장한 이주민들의 특성과 그들로 인해 달라진 세계사의 판도를 해박하게 펼쳐놓는다.



 인간의 이주는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어둡고 숨 막히는 산도를 뚫고 나와 세상의 빛을 보며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숙명이지 않을까? 우연처럼 시작된 이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의 충돌, 소멸, 때로는 정복, 후퇴 등의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한 세기를 특정 짓는 고유한 양식들로 다양한 삶의 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초기 연설 중 기억에 남던 문구가 있다.


 


나는 케냐에서 온 흑인 남성 그리고 캔자스에서 온 백인 여성의 아들입니다. 나는 노예, 또 노예 소유자의 피를 이은 미국 흑인과 결혼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소중한 두 딸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내게는 세 대륙에 걸쳐 흩어져 있는 온갖 피부색을 가진 온갖 인종의 형제, 자매, 조카, 삼촌, 사촌들이 있습니다.


 특정할 수 없던 버락 오바마의 정체성이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누군가는 그를 무슬림, 외국인이라 칭하고 누군가는 적그리스도라고까지 칭했다. 그는 진짜 흑인도 아니고 구식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한 방울의 규정'에 따라 부인할 수 없는 흑인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이에게는 흑인 노예의 후손이 아닌 아프리카 혈통의 이민자이기도 했다. 이로 인한 그의 정체성에 대한 토론은 나중에 북아메리카에 오게 된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전혀 다른 정착 초기 상황에 대한 두 가지 이주 개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바로 미국이 자유의 땅(유럽인)이기도 하며 또한 노예제도(아프리카인)의 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놀라운 이 역설은 그들의 독립선언서 문구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며 또 한 가지 배제된 미국 원주민들에 대한 인권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게 된다. 파고들수록 모순적인 나라 아메리카이다.









 흥미로운 논의가 <이주하는 인류>의 각 장에서 다양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1장 -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비글 호

 2장 - 바빌론, 성경, 아메리카 인디언

 3장 -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아리아인

 4장 - 추방, 로마인과 반달족

 5장 - 아랍인, 바이킹, 영국인의 조상

 6장 - 제노바, 콜럼버스, 타이노

 7장 - 버지니아, 노예, 메이플라워호

 8장 - 황인종, 차이나타운, 푸 만추

 9장 - 시오니스트, 난민, 숙모할머니 폴리

 10장 - 자유, 할렘, 무지개 부족

 11장- 이주 노동자, 미국, 멕시코



 11개의 장을 통해 작가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생한 이주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들여다보는 시간들은 현대 문명사에 기록된 굵직한 사건들로 현실이나 그 이면의 인물들의 선택과 행적,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시선들에 대한 세밀한 기록들이다. 세계사 속 한 줄의 사건들이 갖게 된 시간의 쐐기들은 미세한 간극으로 발생한 틈이 훗날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져 어떻게 세상을 변모시키는지, 작가는 처음의 아주 작은 틈을 찾아 글을 시작한다.




 과거와 현대 인류의 유전자(게놈) 연구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중요한 이주는 사실상 두 차례 이상이었고, 적어도 한 번은 아프리카 대륙으로의 역이주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서로 겹치고 연결된 다방향 이주가 많이 이루어졌다. 유전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에 근거해 역사적 연대표를 그려보면 인류는 다른 동물 종들과는 달리 늘 이동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물론 인류의 이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동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류가 지형과 기후라는 엄청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수 세대에 걸쳐 남극을 제외한 세계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 것은 확실하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테지만 아마 일련의 서로 연관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중에는 경쟁자를 피해, 기후 변화, 먹이를 찾아서 등 오늘날에도 익숙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험심, 호기심,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본능 등도 역시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호기심 유전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약 20퍼센트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유전자 변형이라고 한다.

               - 이주하는 인류, p.17  샘 밀러




 우리가 유인원과 다르다 특정 짓는 요소 중 하나가 목적성 있는 이주라고 한다. 국경과 민족국가가 만들어 낸 각각의 고유한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지향하며 떠나는 인류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통해 이 세상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호기심 때문에, 모험심 때문에, 혹은 가장 실질적인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주하는 인류가 살아가는 이 지구를 바라본다. 종교, 관습, 문화, 혈통, 인종 등등 다양한 구별 조건들의 경계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확고한 자신의 신념과 더불어 나와 다른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관용과 배려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대이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귀 기울일 수 있기에 나와 다른 성조와 음률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다른 언어여도 기본은 언제나 같다. 그걸 잊지 않는다면 창백한 푸른 별에 더 온기가 가득해지지 않을까?




















* 같이 듣고 싶은 곡



심규선 : 창백한 푸른 점


https://youtu.be/tlSGCNqtThI?si=N88yfiVJxhbJRU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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