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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r 26. 2024

인다라의 구슬들

호랑작가&천재작가와 만나다

 



 무리 지어 피어난 수선화에 맺힌 빗방울들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인다. 작고 투명한 물방울들이 노란 잎을 감싸고 바람에 흔들린다. 조그만 움직임에도 잎은 노래하고 빗방울은 줄기를 따라 뿌리를 향해 흘러간다. 빛나는 물방울들을 보고 있으니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인다라망이 떠오른다. 그물의 그물코마다 보배구슬이 달려 구슬들이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반짝인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구슬들이 우리 인간이 맺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연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물을 구성하고 있는 개체인 우리가 서로를 비추며 완성해 가는 세계의 일부라니 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목적에 조금 더 힘이 실린다. 내가 밝게 비추어야 더 밝게 빛날 존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란 생각이 든다. 눈앞의 수선화에 가만히 손을 뻗어본다. 봄의 온기가 실린 물방울이 내게 스며든다. 내리는 비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어쩌면 지금 이 꽃의 개화에도 누군가의 고운 입김이 닿아 있는 건 아닐까?











 봄을 부르는 따뜻한 책을 읽었다. 호랑작가님의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누구나의 계절>과 함께 어린 날의 기억 어디쯤을 함께 걸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다양한 생명들이 하나의 의미가 되어 작가의 삶 속에 그림이 되는 순간들이 좋다.








빈 집은 춥다. (중략)
 
 온기를 잃고, 말을 잃고, 따뜻함을 잊은 집에서 다시 봄이 온다. 추억과 기억을 고스란히 남기고 더 무엇을 담을 기력 없는 집에서 봄이 왔다고 새가 울고 나비와 벌이 찾아든다. 헐거워진 집도 봄맞이하듯 몸을 덥히며 들썩이는 것 같다.

 춥고 외롭고 캄캄했던 긴  겨울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봄날의 풍경을 품어 안으며 빈집은 어깨를 펴고 봄날의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 누구나의 계절, p44-45



 그녀가 살아온 다양한 계절마다 자리하는 사물과 식물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직접 그린 그림들과 함께 자리한 글 속에 빠져든 나는 작은 워터코인이 되어 햇빛바라기를 하는 것처럼 귀를 기울인다. 마른 등걸 같은 만손초의 모습을 보고 '세상사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낸 지혜로운 노인의 삶이 보이기도'한다는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깊이 들여다 보여야 보이는 세상 작고 여린 것들을 품어 안는 눈빛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기를, 그 시선을 닮을 수 있기를 바라던 순간이다. 호랑작가님의 글을 읽는 건 일상의 틈 속에서 나로 떠나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무뎌진 언어를 가만히 체로 걸로 수놓는다면 나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벚꽃 얼룩

저 무한한 공력功力이면 무엇을 못하랴
바람의 침묵 후에 꽃은 왔을 것
가쁜 숨결 가다듬고
온몸 치닫으며

꽃은 왜 뭉텅뭉텅 읽히나
별빛의 숨죽인 심호흡
깊은 밤 뼈저린 어둠의 산맥 더듬으며
색色을 토하는 새벽의 뭉친 근육 떨며
쌀뜨물 가라앉듯
민낯 핥는 햇볕의 이마로 벚꽃은 뿌옇게 진을 친다

벚꽃이 오는 만큼 천지는 하얗게 조각난 눈물
사월의 얼룩 아득하게 번지는 몸
밥물 끓어오르듯 벚꽃은, 숨을 토하네

슬픔도 잊을 준비가 필요한가
나는 느닷없이 내려앉는 벚꽃 무거워,
가슴으로 지는 벚꽃의 얼룩
허망한 속살 어쩌지 못해
내내 꽃을 앓는다   
                                                                 -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p.116- 117








곧 만개할 벚꽃나무 아래서 나도 꽃을 앓는 중이다. 그녀의 마음을 읽는다. 피어나는 꽃 한 송이조차 무거워 앓는다는 마음이 애틋하고 어여뻐 가만히 끌어안아본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감성의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추천하는 글을 올렸다. 천재작가의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호랑작가님의 리뷰가 아니었다면 선뜻 손에 잡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재작가라는 필명으로 올리는 글들을 보면 출판사를 가서 원고를 투고하고 고배를 여러 번 마시지만 드디어 출판에 성공한 집념의 작가라는 걸 알겠지만, 글이 하나도 없으니 결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이런 사람이 있구나 정도였는데, 호랑작가님이 올려주신 리뷰부터, 개울가지성님, 민트별펭귄님, 소오생님까지. 음... 모두 담합을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이렇게 열렬히 지지를 하는 이가 궁금해졌다.







 '사회적 경제적인 요소들을 감안하여 방사선 피폭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감소시킨다'는 ALARA원칙에 따라 납 보호복까지 구비해서 환자를 지키고자 하는 직업윤리와 사명감이 투철한 치과 방사선사. 엄마를 모시고 여러 번 간 적이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인상 깊던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는 남들이 보면 부러울 것 없는 한 가정의 아빠이자 사회적으로도 제법 안정적 위치에 다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한 달의 반만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픈 사람의 투병기라 생각하면 오판이다.


 


 요즈음 내게는 건강하고 아픈 시간이 각각 일주일씩 공평하게 주어진다. 아픈 시간을 원망하는 비중이 높은 삶에서 건강한 순간을 감사하는 비중을 높여갈수록 행복의 평균값이 높아진다. 어떻게 보면 반쪽짜리 삶이 허락된 것처럼 보이는 힘겨운 시간이지만 행복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서서히 오르는 전조로 해석하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기쁨과 슬픔은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서 포개질 수밖에 없고,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결코 짧지 않다. 이를 이해하고 힘든 순간마저도 행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언제나 웃을 수 있다.
                                                         
-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p.62



 시간은 '기브 앤 테이크'를 잘한다. 우리에게서 늘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채워준다. 가져가는 순서는 랜덤이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먼저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가장 마지막에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후 그 빈자리를 더 소중한 것으로 채우거나 그대로 비워두는 것, 아니면 가치 없는 것들로 의미 없이 채우기만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 p.137




서퍼들은 흔히 서핑을 인생에 비유한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테이크 오프에 성공해서 파도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라인업까지 열심히 패들링 해서 나아간 후 무릎 높이의 작은 파도를 잡아 올라탄다. 그다음에는 가슴 높이의 파도를 향해 나아가고 결국 서프보드 하나에 의지해 집채만 한 파도에 도전한다. (중략) 인생이라는 파도에 맞서 쉼 없이 패들링 하고, 저마다의 높이에 맞는 파도를 잡아 올라타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두에게 주먹을 쥔 손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서 흔들며 응원한다. "샤카."
                                                                                                           - p.239



 앤드루 포터의 <사라지는 것들>에서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수가 잔향처럼 짙게 남아 앞으로의 시간이 도리어 무겁게 다가왔다면, 류귀복 작가의 글은 익살스럽게 표현하되 때로는 진중하게 울려오는 문장들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긍정과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대가 기분 좋은 응원처럼 와닿는다. 바쁜 일상 속 짬 내서 책을 읽고 기록하고, 때론 타인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 콧물 쏟아내며 울기도 하는 한 사람의 기록이 한없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선한 마음이 따뜻하게 밝히는 공간들이 엿보이는 에세이에서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선의지를 엿보게 된다. 호랑님께서 직접 읽고 리뷰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주파수가 닿는다. 마음이 따뜻한 이들의 호명이 인라망이 되어 인연의 그물로 삶에 자리한 날. 잠시 그물에 걸린 바람이 되어 리를 듣고 마음을 읽는 이 순간이 좋다. 나도 작은 구슬이 되어 이들을 비춘다. 반짝이는 빛들을 알아보는 이들이 더 많이 생겨나 그들의 손안에 이 책들이 담기기를 바다.








    좌: 병원 로비 성모상                                우: 박준상 모자상












* 같이 듣고 싶은 곡


아일랜드의 여인 ㅡ 최나경 연주


https://youtu.be/VDeR0TA8gZ4?si=u5W2kd23SEFdsEkF








#김정희작가

#류귀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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