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 - 교유서가
간과하기 쉬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방법이 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이것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면?
- 레이첼 카슨,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1956)
돌아오는 길에 이경은 걸음을 멈추었다. 선우의 일들이 떠올랐다. 전생처럼 아득했다. 며칠 동안 선우의 메시지나 sns 계정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경은 왜 자신이 그토록 선우와 선우의 삶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원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경은 자신을 나무라는 심정이 되었다. 선우가 쓴 선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경이 쓴 이경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어야 했다고. 그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바라보아야 했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경은 안개라고 여기던 희뿌연 덩어리들이 구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경은 달빛과 뒤섞인 구름 속에 서 있었다.
산을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기댈 데 없이 허술한 상운의 말이 떠올랐다. 이경은 어둠 속에서 혼자 웃었다. 내일은 만년설을 볼 수 있을까. 내일이 아니더라도 포카라를 떠나기 전 언젠가는 보겠지. 이경은 젖은 풀잎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 구름해석전문가, p.59
너와 나는 서로의 옛집에 가보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어느 먼 곳의 정류장에 내려서 길고 구불구불한 어린 시절의 골목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골목을 지나 각자의 옛집을 통과하고 나면 원래의 너와 원래의 나로 돌아가, 우리의 새로운 집으로 함께 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 귀가, p.142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누군가를 뒤따라간다. 아니.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가고 있다. 그래. 나는 누군가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아니. 누군가가 나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그래. 나는 내 얼굴을 보려고 달아나고 있다. 나는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나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아니. 나는 내 얼굴을 보려고 셔터를 내리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가고 있다. 그토록 불빛을 찾아 헤매는 건 내가 누군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유리창에라도 얼굴을 비춰보고 싶다. 얼굴을 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테다. - 귀가,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