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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r 12. 2024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 복복서가








 선명한 기억이 있다. 시골집 큰방에 있던 화장대 거울 앞에서 짙은 갈색의 가죽재킷을 입어보던 아버지는 내게 어떠냐고 물으셨다. 공책 가득 필사연습을 시킨 아버지 덕분에 갯바닥으로 놀러 나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탓에 심통이 나 있던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 그대로  했다.

 "수사반장에 나오는 최불암 아저씨가 맨날 잡으러 댕기는 사람 같은데유."


 잠시 흐르던 정적, 불퉁하게 말을 던져놓고 다시 쓰기 연습을 하던 내 뒤통수에서 번개가 친다.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물리적 압력에 의해 고개가 공책이 놓인 상 앞으로 쏠리며 이마까지 2 연타로 상 위에 세게 부딪혔다. 앞뒤로 동시에 전해오는 통증에 잠시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묻고 있던 나는 내 답에 화가 난 아버지의 응징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땅이 갈라져서 나를 삼켜버리던가, 코에서 코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서 응급실로 실려가 의사로부터 이 아이가 가망이 없으니 데리고 나가란 말을 듣고 잘못했다고 내 앞에서 아버지가 싹싹 빌던가, 아님 그냥 내가 사라지던가 하는 세상에 없는 주문을 말이다. 그런 주문이 있을 리 없기에 찬바람 일으키며 최불암 아저씨가 잡으러 갈만한 가죽 재킷을 입고 외출을 하는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집에서 멀어지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뒤 한 시간 동안 나는 공책 가득 아버지에 대한 저주문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본 엄마께서 공책을 표시 안 나게 뜯어내줬기에 망정이지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팔다리 뼈 어디쯤에 실금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유복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다행히도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교감하고, 자연환경을 그대로 누리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놀이를 하며 지냈던 기억들이 먼저 떠오른다. 동생들과 함께 키웠던 강아지들, 바다에서 건져 올리던 수많은 장난감들, 친구들과 들판에서 손수 지어 올리던 볏짚 군기지 등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들이 없던 소중한 마음의 자산들이기에 중학교 입학 후 시내권의 아이들과 한 반이 되어 생활하기 시작할 때도 주눅 들거나 어려운 걸 별반 느끼지 못했다. 경제적 풍요 대신 마음의 풍요를 먼저 알았던 시간들이 있기에 그날들이 그리워 지금은 없어진 어릴 적 살던 집터에 한 번씩 가보는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공부를 강제한 아버지 말에도 순순히 따를 정도의 지력이 있었고,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엄마 덕분에 어릴 적부터 책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설계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가정형편에 얽매이지 않고 하려고만 하면 길은 열린다란 생각으로 살아왔기에 그 시간들에 대한 원망이 희미해지고, 어느덧 털어낼 수 있을 만큼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짙은 초록의 풀밭 위를 달려가는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 표지 그림 하나가 내 눈길을 붙들었다. 제목도 완벽하다.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을 지칭하며 완벽하다 할 수 있을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제목을 보자 피그말리온 신화가 떠올랐다. 조각가의 손에서 자신의 기호에 의해 태어난 조각상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그의 마음에 감동한 신이 조각상에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신화. 낭만적인 신화라며 그림 속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지만, 나는 깨어난 조각상의 마음이 궁금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사람이 내가 너를 창조했으니 너는 나를 사랑해라 말하는데, 그녀는 그 말을 순순히 따를 수 있었을까? 신화 속 이야기에 그들이 행복한 결론을 맞았다고 하지만 실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생활에 대한 언급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녀의 자의로 만든 삶의 흔적은 어디에도 다.






 완벽한 아이에는 각가의 손에서 태어난 아이 모드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전부 다 나를 위해서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나를 위해, 예외적 존재가 될 운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나를 키워내는 일에, 나의 형체를 빚고 조각 하는 일에 바치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사랑했다고도 한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모드라는 이름의 딸을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Maud'가 아니라 로빈 후드 이야기에 나오는 나오는 윌 스칼렛의 아내, 전사이자 아마조네스이며 죽을 때까지 남편에게 충실했던 경이로운 여인의 이름처럼 뒤에 'e'가 붙은 'Maude'다. 아버지는 젊음 때부터 나를 원했고, 여건이 주어지자마자 나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한 일들을 실천을 옮겼다. 오랜 기간에 과업이었다.

                                - <완벽한 아이> p.35





 프랑스 노르 지방의 거대한 저택으로 이사 온 모드는 '인간은 더없이 사악하고, 세상은 더없이 위험하며, 이 땅은 나약함과 비겁함으로 인해 쉽게 배신자가 되는 나약하고 비겁한 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아버지로 인해 외부의 부패한 기운과 단절이 된다. 프리메이슨의 기사라는 아버지는 인류의 재건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위해 늙은 광부의 6살 난 막내딸을 돈을 주고 사와 대학교육까지 마치게 한 뒤 자신의 아내로 삼고, 그 뒤 태어난 모드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한다. 흠 없는 인류의 재건, 자신의 후손인 만들어진 위대한 아이 모드가 지켜 줄 자신의 터전을 위해 어린아이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과 교육, 질병에 대비한 훈련,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한 한밤의 지하실 대피 훈련 등등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커리큘럼 속에서 모드는 자란다.


 비정상적인 일상 속에서 집의 일꾼으로 한 번씩 불려 오는 인간에게 당하는 성추행도 막아주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가 갖고 있는 정상적인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호기심조차 병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는 이들로 인해 말더듬이 증세까지 나타나는 모드를 지켜주는 건 셰퍼드 린다와 당나귀 아르투스, 아버지의 공격으로 날개 한쪽을 잃은 오리 피투이다. 작은 동물들이 모드에게 보여주는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이 아이를 살리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런 신뢰 관계조차도 교육의 일환으로 악용하는 아버지. 그의 자전거를 지키게 린다를 훈련시키는데 이때 자전거에 손대는 모드에게 린다가 달려들어 허벅지를 깨물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반복된 자극과 훈련을 통해 공격적으로 변한 린다가 자신도 모르게 모드를 깨물고 그 발 앞에 배를 내밀고 드러누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모습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순수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숨을 몰아쉬게 된다.



 <완벽한 아이>는 논픽션 소설이다. 실제 있었던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그녀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맞선 어린 날의 어두운 기억들이다.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되고, 안 좋은 기억은 교훈이 된다고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그대로 상처이자 그녀가 살아온 삶의 훈장이다. 실제로 그 저택을 빠져나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그녀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장면들이 그녀의 후기로 서술이 되는데, 어린 날 공중제비 돌기 연습을 하며 맨바닥에 숱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는 휘어있고, 옆구리에 난 상처들은 기억에서도 지워져 이유를 알 수 없으며 치과에 가본 적 없기에 잇몸과 치아는 상해버리고, 어릴 때부터 훈련의 명목으로 아버지가 준 술로 인해 간이 망가져 작은 용량의 진통제로도 간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 병원약을 제대로 쓸 수도 없다고 한다.









 모드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꺼내 읽는다. 발각이 되면 엄청난 벌칙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만 함에도 그녀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에 자신을 투영하며 자신의 삶을 이겨낼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 <완벽한 아이>  p.137


 삶은 두 종류의 나사송곳이다. 한 종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체 없이 땅에 구멍을 판다. 그런 나사송곳은 도중에 자갈이나 벽돌이 나와도 멈추지 않는다. 다른 한 종류는 최대한 빨리 파려는, 그래서 '좋은'땅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나사송곳이다. 얼마 후에 보면 첫 번째 나사송곳은 완전히 깊이 파내려 가는 데 성공했지만, 두 번째는 여전히 저항 없는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인내를 통해 승리하는 첫 번째 나사송곳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 나 자신이 땅속에 박혀 목만 밖으로 내민 나사송곳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난다.  

                                  - <완벽한 아이>, p. 93


 




 모드의 끊임없는 독백.

우리 내면의 목소리와도 닮은 말들에 가만히 끌어안아주고싶은 어린 소녀를 마주한다. 비교의 교리를 신봉하며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자신의 영적 능력이 세상을 구원할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와 그의 계획에 동조하는 어머니. 자신에게 쏟아질 관심을 뺏아가는 딸을 질투하는 또 다른 희생양 아래서 살아내야만 했던 모드가 갇혀있던 병든 유토피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가 내게 달려온다. 무엇도 자신할 수 없는 길고 긴 어둠의 통로를 손끝으로 더듬어 걸어야만 했던 소녀는 세상과 단절된 유리의 방을 벗어나 작은 생명들에게서 얻는 위로와 애정을 통해 마음만은 무너지지 않고 지켜 낸 작은 영웅으로 자란다.











 녀가 덤덤하게 건네는 자신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희망과 살아야 하는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게 만든다. 물리적으로 동시에 정신적으로 나를 가두고 속박하는 생의 존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이념, 교리, 어떤 집단, 상황이라 생각한다면 그녀가 벗어난 시간들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내면의 선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아름다움은 무너지지 않는 마음, 굴복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온다. 나를 얽매는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때론 공황장애 혹은 번아웃, 심한 우울감등이 과거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스스로를 잠식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작은 나의 전사 모드에게서 배운 날. 그녀의 용기를 당신 앞에 펼쳐둔다. 자신 안의 어둠과 맞선 소녀를 마주하고, 나의 어둠도 걷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가만히 꿈꾸며...











* 같이 듣고 싶은 곡

심규선 : 소로


https://youtu.be/0QIM3r9q80g?si=2oMZh7W67631Rb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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