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작가&천재작가와 만나다
빈 집은 춥다. (중략)
온기를 잃고, 말을 잃고, 따뜻함을 잊은 집에서 다시 봄이 온다. 추억과 기억을 고스란히 남기고 더 무엇을 담을 기력 없는 집에서 봄이 왔다고 새가 울고 나비와 벌이 찾아든다. 헐거워진 집도 봄맞이하듯 몸을 덥히며 들썩이는 것 같다.
춥고 외롭고 캄캄했던 긴 겨울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봄날의 풍경을 품어 안으며 빈집은 어깨를 펴고 봄날의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 누구나의 계절, p44-45
벚꽃 얼룩
저 무한한 공력功力이면 무엇을 못하랴
바람의 침묵 후에 꽃은 왔을 것
가쁜 숨결 가다듬고
온몸 치닫으며
꽃은 왜 뭉텅뭉텅 읽히나
별빛의 숨죽인 심호흡
깊은 밤 뼈저린 어둠의 산맥 더듬으며
색色을 토하는 새벽의 뭉친 근육 떨며
쌀뜨물 가라앉듯
민낯 핥는 햇볕의 이마로 벚꽃은 뿌옇게 진을 친다
벚꽃이 오는 만큼 천지는 하얗게 조각난 눈물
사월의 얼룩 아득하게 번지는 몸
밥물 끓어오르듯 벚꽃은, 숨을 토하네
슬픔도 잊을 준비가 필요한가
나는 느닷없이 내려앉는 벚꽃 무거워,
가슴으로 지는 벚꽃의 얼룩
허망한 속살 어쩌지 못해
내내 꽃을 앓는다
-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p.116- 117
요즈음 내게는 건강하고 아픈 시간이 각각 일주일씩 공평하게 주어진다. 아픈 시간을 원망하는 비중이 높은 삶에서 건강한 순간을 감사하는 비중을 높여갈수록 행복의 평균값이 높아진다. 어떻게 보면 반쪽짜리 삶이 허락된 것처럼 보이는 힘겨운 시간이지만 행복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서서히 오르는 전조로 해석하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기쁨과 슬픔은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서 포개질 수밖에 없고,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결코 짧지 않다. 이를 이해하고 힘든 순간마저도 행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언제나 웃을 수 있다.
-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p.62
시간은 '기브 앤 테이크'를 잘한다. 우리에게서 늘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채워준다. 가져가는 순서는 랜덤이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먼저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가장 마지막에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후 그 빈자리를 더 소중한 것으로 채우거나 그대로 비워두는 것, 아니면 가치 없는 것들로 의미 없이 채우기만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 p.137
서퍼들은 흔히 서핑을 인생에 비유한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테이크 오프에 성공해서 파도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라인업까지 열심히 패들링 해서 나아간 후 무릎 높이의 작은 파도를 잡아 올라탄다. 그다음에는 가슴 높이의 파도를 향해 나아가고 결국 서프보드 하나에 의지해 집채만 한 파도에 도전한다. (중략) 인생이라는 파도에 맞서 쉼 없이 패들링 하고, 저마다의 높이에 맞는 파도를 잡아 올라타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두에게 주먹을 쥔 손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서 흔들며 응원한다. "샤카."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