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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pr 02. 2024

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 - 황소자리







 어릴 적 풀숲을 헤치고 나올 때면 훈장처럼 붙어있던 도꼬마리들, 노란 꽃잎이 사라지면 남는 작고 동그란 하얀 우주가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퍼져가는 민들레. 그리고 잎이 마르면 안에 있던 씨앗 2개가 회전축이 되어 마치 헬리콥터처럼 날아가는 단풍나무씨앗 등등 나를 둘러싼 자연의 산물들이 나와 교류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어둠이 몰고 온 점령군들이 제대로 진을 칠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개밥바라기별이 반짝이며 귀가를 재촉할 때면 마지못해 일어나던 내 꽁무니에 따라붙는 작은 풀꽃과 씨앗들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털고 들어오라는 엄마의 고주파 축객령과 함께 집 앞 입구에서 낮 동안의 흔적들은 강제 작별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 지난 어느 날이면, 문 앞 토방 아래 피어나는 꽃들을 보게 되는데 발 없는 녀석들의 이주의 역사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늘 궁금했다. 식물에게 어떤 의지가 있어 자신들의 생명을 전달할 전달자를 선택하는 건 아닐까, 이번 세상에서 그 사람이 바로 나로 내가 선택받은 자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아름다운 명성도 얻긴 했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고 희미해져 버린 어린 날의 상상들이 오늘 <욕망하는 식물>을 쓴 마이클 폴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인간과 많은 생물들은 공진화(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일) 과정을 겪으며 성장한다. 주체와 객체를 구분할 수 없고 의식적인 선택이 굳이 있을 필요도 없을 이 과정에서 우리 인간들은 우리들의 필요로 인해 자연이 진화해 왔다는 착각을 하며 사는 것 같다. 문명이란 이름의 거대한 파도가 신성한 땅들을 덮어 침식시켜 버린 뒤 이제는 문명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보호한다며 각종 규제법들이 등장한다. 선택받지 못해 계속 사라져 가는 수많은 종들의 장송곡이 매일 지구를 메우는데도 우리는 개발하는 다른 것들의 소음으로 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난청을 소.리.없.이. 앓고 있는 현대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수천 년 동안의 인위선택으로 인간이 사용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생물들이 다양해진 건 사실이지만, 교배 속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구조를 확충해 가며 또 다른 특색을 보이는 식물들, 그들의 의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생각해 볼 수 없었다.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로 우리의 시야를 넓히더니 좀 더 깊이 진화 과정 속 다른 종의 의지와 생각에 대해 고민해 보게 만드는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들의 네 가지 욕망인 달콤함(사과), 아름다움(튤립), 도취(대마초), 지배력(감자)을 큰 줄거리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온갖 생물 종들이 얽혀있는 생태그물 안에서 이전과 다른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작가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보고 또 더욱 귀하게 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는 우리 인간이 '다른 생물 종이 품고 있는 의도와 욕망의 객체가 될 수도 있고, 다윈의 정원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꿀벌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영리하지만 때로는 부주의하고 또 놀라울 정도로 이타적인 꿀벌들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이 책을 통해 자연의 변천사를 직접 듣고 이해하며 여행을 떠나보기를 권한다.  








 첫 장 '달콤함의 욕망 : 사과'에서는 조니 애플시드라는 인물을 찾아 떠나는 기행문이 등장한다. 조니 애플시드는 미국 초창기 개척시대에 이주민들보다 앞서 도착해 경작지를 만들어 사과나무를 심고 몇 년 뒤 그 나무가 자랄 즈음 도착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이주민들에게 사과묘목을 싼 가격에 팔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일을 했던 미국의 사과에게 디오니소스와 같던 존재이다. 인디언들과 이주민들 사이를 오가며 어떤 불화도 일으키지 않고 치료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등 기이한 행적의 전도자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설탕과 같은 당류의 수입이 이루어지기 전의 이주민들의 빈약한 식탁은 사과와 사과주로 채워지게 된다. 접붙이기를 통해 열매의 당도를 개량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던 조니 애플시드는 자신이 심은 사과나무에 새로운 토양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후로 성장하는 적응력의 기간을 선사한다. 그의 과수원은 '혈통이나 부모의 유산과 전혀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사과의 식물학에서 아메리칸드림을 발견해 낸 작가는 더 나아가 "역사는 어떤 집단이나 타고난 형질이 아니라 영웅적인 개체가 만들어 간다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해 낸다.









 흥미로운 여행기로 포문을 연 뒤 아름다움의 욕망, 튤립 편으로 이어진다. 램브란트가 그린 튤립 그림을 보면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꽃시장의 튤립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양한 무늬들과 색이 존재한다. '셈퍼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튤립은 순백색 바탕의 꽃잎에 불타오를 듯 화려한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꽃잎의 가장자리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무늬는 바라보는 순간 저절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치솟아 오르게 된다. 향기를 뿜지 않는 그만큼 순수하고 순결한 꽃이고, 하나의 뿌리에서 하나의 줄기와 한송이의 꽃으로만 이루어지는 단일성. 그리고 잎을 늘 오므려 생식기관을 감추는 수줍음 등을 갖춘꽃이 막상 피어날 때는 어떤 꽃도 보여주지 않는 다채로운 색과 무늬로 피어나니 절제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청빈을 강요당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이렇게 화려한 색을 지닌 튤립은 일종의 욕망의 분출구가 되어준 셈이다.   

 


 그런데 튤립이 이토록 평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튤립의 색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바이러스, 복숭아혹진딧물을 상품으로 생각하던 튤립에 흠집이 났다 생각해 가차 없이 감염된 구근을 뽑아 없애버리며 튤립이 갖고 있던 이런 화려한 색들이나 무늬를 잃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기막히게 아름다운 튤립의 색깔이 터져 나오는 비법이 비둘기 똥이라며 퇴비로 똥이란 똥을 다 긁어모아 뿌려대기도 했는데 막상 작은 바이러스 하나의 역할을 오판해 이 잡듯 잡아낸 덕에 우리는 그토록 아름다운 색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꽃 한 송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의 핵심, 다시 말해서 창조와 사멸이 경합하는 에너지, 복잡한 형태를 지향하다가도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특성이 그곳에 담겨 있다.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창조와 사멸이라는 자연의 대립적인 두 가지 측면에 그리스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자연의 그 어디에도 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덧없음처럼 이중성의 두 가지 측면이 뚜렷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은 없다. 온갖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자리 잡고, 그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완벽판 예술에 있으며 동시에 자연의 맹목적이고 끊임없는 변화가 있다.


 초월성과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바로 그곳, 꽃 속에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 <욕망하는 식물>, p.190 중






 샤프란만큼이나 귀중한 보석 같은 존재로 추앙받던 튤립의 평범화 과정은 결국 인간들이 자신들의 상품에 난 흠집을 원하지 않아 발생한 선택에 의한 일이었다. 그림 속 튤립과 뒤마의 소설 <검은 튤립> 속 튤립 등을 떠올려 보면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 책은 아직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두 챕터가 더 흥미롭다. 가장 극적인 욕망의 집합체들로 구성된 대마와 감자. 이 둘은 어떻게 우리 생활에 침투했고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자신들을 숭배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시다면 펼쳐보시길 권한다. 꽃을 올려다보고 찬탄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당신은 보이지 않는 식물들의 욕망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중. 춤을 위한 음악까지 준비했으니 마음껏 빠져보시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Por Una Cabeza : 레이어스 클래식


https://youtu.be/HIf19aClyvo?si=263HTtSjZBQVrQ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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